여름 동안, 긴 여행을 했다. 북이탈리아를 시작으로 베를린에 이르는 50일 가까운 여정이었다. 벨기에와 파리를 거쳐 코펜하겐에 도착했다. 남쪽과는 사뭇 다른 서늘한 기운, 그 안에서 항구도시 특유의 쾌활하고 건강한 일상이 유지되고 있었다. 왕궁 근처 구도심을 따라 걷다 보면, 디자인의 도시답게 덴마크 태생의 가구와 리빙 브랜드들이 전시된 하우스와 쇼룸이 코펜하겐에 걸맞은 감각적인 무드로 펼쳐진다. 팬시하면서도 기능적인, 그러면서도 디자인적 요소를 두루 갖춘 덴마크 디자인은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장중한 장식과는 다른 일상적인 아름다움을 그려낸다.
모처럼 호텔이 아닌 친구 집에서 머물기로 했다. 고등학교 동창의 코펜하겐 시내 외곽에 위치한 집은 지은 지 50년이 지난 단층짜리 주택이었는데, 목제 패널, 사각 통창, 현관에서 주방으로 이어지는 복도식 구조가 전형적인 스칸디나비안 하우스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집 안을 온기로 감싸주는 펜던트 조명, 여름인데도 불을 지피고 있던 벽난로, 둥그런 빈티지 식탁 옆에는 아르네 야콥센의 앤트 체어 4개가 놓여 있었다. 의자 다리가 3개인, 앤트 체어의 초기 버전이었다. “시어머니가 쓰시던 건데 우리가 이 집으로 이사 올 때 선물로 주셨어. 오래전부터 1950~1970년대 디자인에 관심이 많으셨는데, 그 무렵에 구입하셨다고 하더라고.”
2 SAS 로얄 호텔의 바. ©Fritz Hansen
50년 이상의 세월을 누군가의 삶과 함께하며 에이징된 의자의 면모, 게다가 지금은 단종된 티크목으로 제작된 의자가 갖는 희귀함의 덕목까지 지니고 있어 더욱 근사하게 느껴졌다.
프리츠한센이 전 세계적인 고객을 거느리게 된 데에는,
무엇보다 디자이너 아르네 야콥센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덴마크 사람들은 디자이너나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꽤 높은 편이야. 내가 써보고 좋은 건 내 아들도 써야 하고, 나중에는 손주도 사용해야한다고 생각해. 그래서 프리츠한센 같은 브랜드가 지금까지 사랑을 받는 것 같아. 아들이 결혼할 때 세븐 체어를 사주고, 손주가 학교에 들어가면 또 세븐 체어를 선물해주는 식으로 브랜드에 대한 애정을 유지하는 거지.”
덴마크를 대표하는 리빙 브랜드 프리츠한센은 그렇게 덴마크 사람들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전설적인 브랜드가 되었다. 1872년 캐비닛 제작자 프리츠한센에 의해 설립된 회사는 이 시기 덴마크의 비약적인 가구 제작 기술과 북유럽의 풍부한 목재를 활용해 명성을 쌓아나가기 시작했다. 1905년의 코펜하겐 시청사, 1918년 국회의사당, 대법원 등의 공공기관 의자 제작 역사가 이를 방증한다. 특히 20세기 초반, 유럽 본토에서 벌어진 두 번의 세계대전은 오히려 북유럽 디자인의 면모를 꽃피울 수 있는 기회로 작용했다. 지리적으로 전쟁의 피해가 적었던 덴마크와 주변국들은 전통적인 장인 기술과 풍부한 목재, 카레 클린트를 중심으로 한 탁월한 가구디자인 교육 덕분에 ‘모두를 위한 디자인’이라는 자신들의 신념을 다양한 가구 프로덕션을 통해 드러낼 수 있었다.
2 뢰도브레 도서관. 보다 편안한 분위기로 디자인한 라운지 공간.
©Fritz Hansen
이런 흐름 속에서,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을 선도하던 프리츠한센은 1930~1940년대부터 아르네 야콥센, 폴 키에르홀름, 한스 베그너 등 기능주의를 따르는 디자이너들과의 협업을 통해 전성기를 구가하며, 현재까지 전 세계에 북유럽 디자인의 아이코닉한 매력을 알리고 있다. 프리츠한센이 전 세계적인 고객을 거느리게 된 데에는, 무엇보다 디자이너 아르네 야콥센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덴마크왕립예술아카데미에서 건축을 전공한 아르네 야콥센은 1930년대 코펜하겐 북부 외곽에 벨라비스타(Bellavista) 주택단지와 벨뷰 시어터(Bellevue Theater) 등을 설계하며 프리츠한센과 협업을 시작한다. 그러나 프리츠한센에서 아르네 야콥센의 진가가 발휘된 건 1952년, 그의 걸작 앤트 체어가 출시되면서부터였다. 허리가 잘록한 개미를 닮았다고 해서 앤트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 의자는 슬림한 철제 다리에 9겹으로 이뤄진 압축 몰드 베니어로 우아함과 견고함을 동시에 갖추며 출시 당시부터 현재까지 최고의 스테디셀러로 손꼽히고 있다. 1955년에는 숫자 7을 형상화한 세븐 체어를 디자인했는데, 간결한 디자인과 특유의 내구성으로 현재까지 단일 디자인으로는 가장 많이 팔린 제품으로 디자인사에 기록되었다. 이는 아르네 야콥센이라는 디자이너의 출중한 재능뿐 아니라 그의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있도록 제작에 필요한 탁월한 기술력과 공정을 뒷받침해준 프리츠한센이라는 제조사가 함께 만들어낸 결과다.
2 아르네 야콥센의 에그체어와 스완 체어가 있는 SAS 로열 호텔의 로비.
©Fritz Hansen
건축을 하면서도 가구디자인에 헌신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진정한 건축가는 건물 안을 채우고 있는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는 그의 철학 때문이었다. 1960년에는 SAS 로열 호텔이라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완성시켰는데, ‘제트 시대의 랜드마크’라 불린 호텔의 내외부 설계는 물론 가구와 조명, 식기, 텍스타일까지 모두 디자인함으로써 총체적 예술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그는 또한, SAS 로열 호텔의 로비와 라운지를 위해 만든 에그 체어와 스완 체어를 통해 프리츠한센의 또 다른 전설을 만들어갔다. 유기적 형태의 곡선 디자인에 이음매 없이 완벽하게 가죽과 패브릭으로 커버링해낸 기술의 결합이 바로 그것이다. 앤트 체어와 세븐 체어가 실용의 범주라면 스완 체어와 에그 체어는 유려함과 개별적 존재감을 발하는 라인인 셈이다. 코펜하겐에 머무는 동안 아르네 야콥센이 설계한 뢰도브레(Rødovre) 도서관을 방문했다. 1969년 뢰도브레 시청사와 함께 지은 건축으로 단층의 검박해 보이는 건물 내부로 들어서자 예상치 못한 환한 채광과 푸르른 조경의 조화가 펼쳐졌다. 이곳 역시 총체적 예술을 강조한 아르네 야콥센의 디자인적 디테일이 엿보이는데, 도서관 의자는 물론 테이블, 북 트롤리, 조명과 문손잡이 그리고 세븐 체어의 하이 스툴 버전부터 어린이들을 위한 릴리 체어까지 장소의 특수성을 고려한 세심한 디자인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이러한 건축적, 디자인적 신념을 실현하기 위해서 그가 감당해야 했을 수고로운 시간들을 떠올려본다. 자신만의 고집과 완벽주의적 성향이 하나의 아이덴티티를 이뤄낸다는 건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아르네 야콥센이라는 개인에게서 덴마크가 고수해온 장인정신과 한 자아의 비범한 재능을 동시에 본다. 결국 이 현대적 신화는 프리츠한센과 아르네 야콥센이 서로를 견인하며 만들어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글을 쓴 박선영은 아트, 디자인, 건축 등 매혹적인 모든 것에 대해 지속적으로 글을 쓰고 있는 칼럼니스트다. 독일의 모던 미학과 예술에 대한 취향을 담은 <독일 미감>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