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다운 홍콩 - 헤이트래블 - hey!Travel

  • written by RYU JIN
  • PHOTOGRAPHY BY Jeon jaeho
  • Supported by Hong Kong Tourism Board

홍콩다운 홍콩

SUPER LOCAL Hong Kong

홍콩에서 만난 이들에게 물었다. “홍콩답다는 것은 뭘까?” 다른 나라 혹은 도시들이 수세기에 걸쳐 경험하는 변화를 아주 짧은 시간에 겪은 홍콩 사람들은 이 질문 앞에서 유독 시간을 끌었다. 긴 고민을 마친 그들에게 건네받은 답을 들고 홍콩의 구석구석을 누볐다.
  • written by RYU JIN
  • PHOTOGRAPHY BY Jeon jaeho
  • Supported by Hong Kong Tourism Board
2024년 06월 28일

언제부터인가 홍콩의 낡은 건축물이 SNS의 피드를 채우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익청빌딩이다. 1960년대에 지어진 이 주상복합건물은 통라우(Tong Lau, 唐樓)라고 불리는 건축양식에 속한다. 1층은 상점, 그 위층부터는 주거 공간으로 쓰는 ‘숍하우스’로 이해하면 쉽다. 모눈종이 같은 파사드를 가진 익청빌딩은 홍콩의 근대를 집약한 총체다. 3~4층 높이로 세운 초창기 통라우는 중국 남부, 대만, 화교들이 모여 살던 동남아 등지에서도 볼 수 있지만 홍콩의 통라우는 정치·사회·경제적 요인을 흡수하면서 독특한 양식으로 진화했다. 식민지를 거치며 유럽의 신고전주의, 아르데코 양식과 혼재된 통라우로 알려진 청우이맨션(Chung Wui Mansion), 뤼셍춘(Lui Seng Chun)이 그 예. 층이 많은 익청빌딩은 후기 통라우로 통한다. 1950년대부터 빠른 경제 성장을 보인 홍콩은 인구 급증으로 인한 주거 문제 해결책으로 고도 제한을 완화하고 엘리베이터 설치를 허가했다. 홍콩 영화에 등장해 유명해진 청킹맨션, 미라도맨션이 바로 1970년대 아파트 도입으로 사라진 통라우 세계의 마지막 세대다.

사람들이 요즘 좋아하는 홍콩의 면면을 뒤지다가 난데없이 건축사까지 파고든 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지금, 젊은 세대는 만난 적도, 경험도 없는 옛 홍콩에 열광할까? 뉴트로라는 유행 때문에? 예쁘고 특이해서? 그런 이유로 관심을 갖다가 홍콩 그 자체인 것들의 매력에 눈을 뜬 건 아닐까? 코스모폴리스, 하이엔드, 슈퍼 모던 같은 단어로 치장한 모습이 아니라 이것저것 다 걷어낸 맨 얼굴 말이다. 휘황찬란한 마천루를 가진 센트럴과 서구룡도 물론 홍콩의 일부지만 나는 좀 더 원형의 홍콩, 그러니까 홍콩 사람들이 “이게 바로 홍콩이야”라고 인정하는 장면을 포착하고 싶었다. 운 좋게도 이 기획을 시작하기 두 달 전 홍콩 출장이 잡혀 예습할 기회를 가졌다. 페이지를 넘기면 그때 만난 홍콩 사람들과의 대화,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고르고 고른 책과 콘텐츠 속에서 건져 올린 이름, 지명, 단어, 이미지가 펼쳐진다.

‘로컬’이라는 단어에 꽂혀 집착하다가 알게 된 것은 하나다. “내가 홍콩을 이렇게 몰랐단 말이야?” 홍콩이 초행이라면 가당하지만 수년 전 취재로 여러 번 들락였기 때문에 이 무지를 고백하는 일이 사실 창피하다. 삼수이포·타이항·사이잉푼·청차우·사이쿵 같은 지명, 홍콩에 모래가 아주 곱고 물빛이 진짜 맑은 해수욕장이 많으며, 홍콩 사람들이 거기에서 서핑·스탠드업 패들보딩·카야킹 같은 걸 즐긴다는 사실, 바다엔 250여 개의 섬이 있고 국토의 70%가 녹지이며 그중 40%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접근 가능하다는 것, 그 안에 500종 이상의 조류가 살고 그중 35종이 독수리·매·따오기 같은 맹금류라는 것, 날개 달린 동물 말고도 약 1천 200마리의 야생 들소·원숭이·천산갑·분홍돌고래 등이 인간보다 더 넓은 면적의 터전에서 강력한 환경법의 보호를 받으며 살고 있다는 것 따위의 정보를 발견할 때마다 홍콩이 점점 더 낯설어졌다.
머무는 내내 홍콩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여기엔 없을 거라고 짐작했던 것들이 뒤집히는 순간을 경험하며 방직공장을 개조한 복합문화예술공간 더 밀스의 마케터 엘리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홍콩답다’는 것이 무엇인 것 같냐고 묻는 질문에 그는 한참을 생각한 후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응축. 홍콩은 한정된 공간에 많은 것이 밀집돼 있어요. 그래서 정수만 살아남았죠. 과거와 현재와 미래, 트렌드와 구식, 도시와 자연, 글로벌과 로컬… 당신이 원하는 게 뭐든 홍콩엔 다 있습니다. 홍콩은 ‘모든 것’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