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지앵이 사랑하는 파리 - 헤이트래블 - hey!Travel

  • EDITED BY RYU JIN
  • WRITING & PHOTOGRAPHY BY RHEE JIEUN

파리지앵이 사랑하는 파리

The Paris of the Parisians

지금 파리에서 가장 뜨거운 동네가 궁금하다면 ‘75011’과 ‘75020’을 기억하자. 누군가의 현관 비밀번호 같은 이 숫자 조합은 각각 파리 동쪽에 자리한 11구와 20구를 뜻한다. 파리에 사는 콘텐츠 기획자 이지은이 두 지구에서 로컬의 아지트를 샅샅이 뒤졌다.
  • EDITED BY RYU JIN
  • WRITING & PHOTOGRAPHY BY RHEE JIEUN
2024년 07월 08일

‘힙’과 ‘일상’ 사이

11구

11구가 여전히 파리에서 가장 트렌디한 지역이라는 사실에 많은 사람이 동의할 것이다. 마레(Marais)와 리퍼블리크(République)부터 시작되는 이 동네는 ‘힙’을 온몸에 두른 젊은이부터 예술가, 디자이너, 회사원, 아이를 대동한 가족까지 각양각색 파리지앵이 자유분방하게 어우러지는 곳이다. 대로변엔 근사한 호텔 간판 같은 건 잘 보이지 않아도 손님으로 북적이는 레스토랑과 독특한 숍이 넘쳐나고, 뒷골목엔 새로 문을 연 카페와 상점들이 지금도 속속 들어서고 있다.
여행자들에게 잘 알려진 마레를 빼도 11구엔 갈 만한 곳이 꽤 많다. 특히 11구 주변에 사는 파리지앵이 즐겨 찾는 장소에서 이곳의 진짜 매력을 엿볼 수 있다. 여담을 붙이자면 파리 동쪽에 사는 로컬들은 서쪽에 자리한 16구나 강 건너의 뜨는 동네 리브 고슈(Rive Gauche)로 굳이 시간을 내서 놀러 나가지 않는다. 나 역시 이 동네들이나 혹은 남쪽의 15구를 서울보다 먼 곳으로 간주한다.

특히 바스티유 근처에서 시작하는 루 드 샤론(Rue de Charonne)은 파리지앵이 사랑하는 쇼핑 거리다. 이자벨 마랑, 아메리칸 빈티지, 코스 등의 브랜드 매장부터 독립 브랜드 숍까지 즐비해 주말, 특히 토요일엔 인산인해를 이룬다. 쇼핑을 즐기다 출출해지면 루 드 샤론의 윗길로 향하자. 킴 카다시안도 줄 서서 먹었다는 레스토랑 셉팀(Septime)은 11구의 화룡점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몇 달 전에 예약하는 것이 필수인 셉팀 입성에 실패해도 좌절할 필요 없다. 바로 옆에 위치한 와인 바 셉팀 라 카브(Septime La Cave)에서 식전주를 즐긴 후 해산물 레스토랑 클라마토(Clamato)에서 배를 채우면 된다. 예약을 따로 받지 않는 클라마토는 문 여는 시간을 공략해 찾으면 마음껏 즐길 수 있다. 빵에 자부심을 가진 도시에서 베이커리도 놓칠 수 없다. 타피세리(Tapisserie)는 셉팀과 클라마토의 디저트를 책임지는 빵집. 이곳의 메이플 시럽 타르트는 배가 불러도 꼭 먹어야 할 맛이므로 놓치지 말 것. 12구의 인기 레스토랑 모코넛(Mokonuts)에서 새롭게 문을 연 레스토랑 모코로코(Mokoloco)는 객원 셰프들이 선보이는 다채로운 메뉴를 맛볼 수 있는 곳으로 인기가 높다. 커피 애호가라면 빈티지 레코드 가게처럼 생긴 카페 코멧츠(Comets)를 찾아보자.

파리지앵의 평범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만나고 싶은 이들은 모리스 가르데트 스퀘어(Square Maurice Gardette)로 향해야 한다. 학교 수업이 끝나는 늦은 오후나 주말이면 아이들, 반려동물과 산책을 나온 이들이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든다. 스퀘어 바로 옆에 자리한 카페 빈스 온 파이어(The Beans on Fire)는 게으른 일요일 아침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 햇빛이 드는 날엔 노천 테이블에 앉아 거리를 오가는 귀여운 강아지들, 근사한 차림의 파리지앵을 관찰해도 좋겠다. 주말에 이 광장을 찾은 이들을 위한 팁. 바비큐 전문 레스토랑 부루토스(Brutos)에서 주말 낮에만 먹을 수 있는 로스트 바비큐 치킨을 시도해보자. 내추럴 와인과 감칠맛 나는 안주를 페어링해 즐길 수 있는 라 부벳(La Buvette)은 한 번도 안 간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간 사람은 없을 정도로 매력적인 곳이다. 가까이에 위치한 카페 두 코앙(Café du Coin)도 빼놓을 수 없다. 부라타 치즈, 해산물, 피자의 환상적인 맛을 즐기다 보면 파리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11구 산책자를 위한 이정표

  • 오 듀 자미(Aux Deux Amis)

밖에서 보면 특별한 것 없는 평범한 브라세리지만 주중 저녁에는 약속이라도 한 듯 파리의 모든 힙스터들이 모여든다. 발 디딜 틈 없이 꽉 차 있어도 그 인파를 기어이 비집고 들어가게 만드는 매력적인 곳. 포미카 테이블, 낡은 네온과 타일로 꾸며진 오 듀 자미는 향 좋은 내추럴 와인과 타파스, 매일매일 달라지는 음식으로 눈과 입을 동시에 만족시킨다.
주소 45 Rue Oberkampf 75011

  • 폴데롤(Folderol)

다양한 내추럴 와인과 수제 아이스크림이라는 독특한 조합을 파리에서 처음 시작한 바. 특히 여기에서만 맛볼 수 있는 올리브오일, 바닐라 퍼지 아이스크림은 계절, 날씨에 관계없이 파리지앵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아이스크림, 와인 외에도 최상의 퀄리티를 자랑하는 수제 햄과 치즈 그리고 다채로운 타파스 스낵 메뉴를 갖추고 있어 가볍게 한잔 즐기기 딱 좋다.
주소 10 Rue du Grand Prieuré 75011

  • 파우나(Fauna)

오버캄프(Oberkampf) 거리에 위치한 카페 파우나는 레지던스 칸(Residence Kann)의 전 매니저인 필립과 야콥이 지난해 말에 문 연 카페다. 스웨덴 스타일의 에그 샌드위치와 치즈 샌드위치는 굉장히 심플하지만 그래서 계속 생각난다. 그 밖에 아보카도 토스트, 북유럽 특유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시나몬 롤, 날마다 달라지는 디저트 메뉴를 맛볼 수 있다. 커피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완벽한 맛을 자랑한다.
주소 12 Rue Oberkampf 75011

  • 풀구렁스 엉 파스(Fulgurances en Face)

반년마다 전 세계 유명 셰프들을 초대해 주방을 맡기는 콘셉트로 유명한 레스토랑 ‘풀구렁스’에서 문 연 와인 바. 레스토랑 바로 앞에 위치해 ‘바로 앞’이라는 뜻을 가진 ‘엉 파스’를 붙여 이름 지었다. 파리지앵의 사적인 거실에 들어온 듯한 아담하고 편안한 공간에서 맛 좋은 와인, ‘매일 바뀌는 작은 접시들’로 불리는 타파스를 즐겨보자.
주소 5 Rue Alexandre Dumas 75011

  • 바 프린시펄(Bar Principal)

바 프린시펄은 강아지와 아이들의 천국으로 불리는 모리스 가르데트 스퀘어가 내다보이는 테라스를 갖춘 곳. 벽돌과 흰색 젤리 타일로 꾸민 독특한 인테리어, 완벽한 내추럴 와인 리스트와 주방에서 만들어져 나오는 따뜻한 음식들이 매력적이다. 불 향을 입힌 닭꼬치와 미트볼꼬치는 놓치면 아쉬울 술안주다.
주소 5 Rue du Général Renault 75011


파리식 자유분방함이 살아 있는 동네

20구

‘힙’한 지역의 양적·질적 팽창은 옆 동네까지 확장된다. 주거지역에 가까웠던 20구가 ‘뜨는 동네’가 된 까닭이다. 차이나 타운이 있는 벨빌(Belleville), 좁은 골목과 내리막길로 아랍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던 메닐몽탕(Menilmontant), 11구와 20구를 잇는 루 드 샤론을 품은 20구는 1860년 이후 파리로 편입된 지역이다. 그전엔 노동자 계급이 모여 살던 동네였으며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 온 이민자들이 자리 잡아 다채로운 풍경을 만든다. 이민자들의 지구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다양한 나라의 ‘맛집’을 순회하는 일. 메닐몽탕에서 단돈 3~5유로로 따뜻한 아랍식 크레페를 즐기거나 파리에서 가장 큰 차이나타운에서 저렴하고 양 많고 맛 좋은 아시아 음식으로 배를 채우자. 중국식 손두부와 고기가 잔뜩 든 번을 맛볼 수 있는 베스트 토푸(Best Tofu), 만두 전문점 라비올리 노드 이스트(Ravioli Nord Est)가 바로 그런 곳이다. 좀 더 근사한 정찬을 즐기고 싶은 이들은 파인다이닝 딜리아(Dilia)로 향할 것.

벨빌의 또 다른 매력은 예술가들이 만들고 있다. 예전부터 아티스트의 작업실이 몰려 있는 동네였던 까닭에 개성 넘치고 색이 분명한 독립 갤러리를 쉽게 만난다. 일 년에 두 번, 아티스트의 작업실과 갤러리의 문을 활짝 여는 오픈 하우스 주간엔 좀 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뜰 기미가 있는’ 동네의 낌새를 기가 막히게 잘 알아채는 디자이너 필립 스탁의 마마 셸터(Mama Shelter) 호텔은 20구의 랜드마크. 호텔 앞, 오래된 기차역을 개조한 콘서트홀 라 플레시 도(La Flèche d’Or)도 최근 새 단장을 마치고 문을 열었다. ‘나만 알고 싶은’ 와인 바, 레스토랑, 타파스 바들도 20구의 새로운 풍경. 올림픽이 열리는 올여름 파리를 방문할 계획이라면 이 도시에서 가장 큰 공원인 뷔트쇼몽 공원(Parc de Buttes-Chaumont)과 벨빌 공원(Parc de Belleville)의 짙푸른 녹음 안에서 파리지앵식 피크닉을 즐겨보자.

20구 산책자를 위한 이정표

  • 데 테레스(Des Terres)

‘피에르 가니에르’에서 수년간 일했던 셰프가 운영하는 경쾌한 분위기의 비스트로로 나만 알고 싶은 보석 같은 장소다. 흥겨운 음악과 선반 가득 진열된 내추럴 와인에 둘러싸여 그날그날 공수한 신선한 재료로 만든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합리적인 가격, 세련된 플레이팅에 맛 좋은 음식을 즐길 수 있어 인기. 점심부터 새벽 2시까지 브레이크 타임이 없어 간단한 스낵이나 아페리티프를 즐기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주소 82 Rue Alexandre Dumas 75020 Paris

  • 페페 피체리아(Peppe Pizzeria)

2019년과 2020년엔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피자, 2021년엔 유럽에서 가장 맛있는 피자로 선정된 피자를 만드는 장인, 주세페 쿠트라로가 파리 20구에 문 연 피자집. 피자의 본고장 나폴리에서 실력을 쌓고 파리 ‘빅 마마’에서 일한 경력을 가진 그의 피자는 그야말로 완벽에 가깝다. 얇고 바삭한 피자 도우의 고소함과 군더더기 없는 원재료의 고유한 맛이 완벽한 밸런스를 이룬다. 나폴리에서 유명한 튀긴 피자 역시 별미니 꼭 맛보길 권한다.
주소 2 Pl. Saint-Blaise, 75020 Paris

  • 딜리아(Dilia)

트라토리아 분위기에서 제대로 된 이탈리아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 계단과 교회가 있는 광장 안에 자리한 이 작은 레스토랑은 로맨틱이라는 단어와 잘 어울리는 분위기를 갖췄다. 기묘한 지중해풍 회벽으로 마감된 외관, 낮은 샹들리에와 단단한 쪽모이 세공 마룻바닥, 테라스에 몇 개의 테이블만 둔 따뜻하면서도 기발한 공간이다. 조부모인 디노와 일리아의 이름을 따 레스토랑 이름으로 지은 토스카나 출신 셰프가 이탈리아 정통 요리 방식과 신선한 식재료로 정확하고 생동감 넘치는 음식을 선보인다.
주소 1 Rue d’Eupatoria 75020 Paris

  • 아마가트(Amagat)

빌라 리베롤레(Villa Riberolle)의 미로 같은 좁은 골목을 굽이굽이 들어가면 나오는 숨겨진 길. 그곳에 자리한 아마가트는 카탈루냐어로 ‘숨겨진’이라는 뜻을 가진 레스토랑이다. 아름다운 대리석으로 꾸민 바, 시원한 그늘을 가진 중정이 있는 안뜰에 자리를 잡고 감칠맛 나는 타파스와 와인을 즐겨보자. 스페인 휴양지가 부럽지 않은 완벽한 저녁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아마가트에서 배가 다 안 찼다면 그 옆에 자리한 레스토랑 카셰(Caché)의 신선한 생선 요리를 즐겨보자.
주소 29 Villa Riberolle 75020 Paris

  • 더 댄싱 고트(The Dancing Goat)

아르데코 스타일의 더 댄싱 고트는 1920년대에 유행했던 뉴욕의 카페에서 영감을 받은 인테리어가 특징이다. 정치를 전공했지만 요리에 대한 열정으로 셰프로 일한 경력을 가진 영국 출신 오너가 카페와 프렌치 정통 음식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오픈한 카페다.
주소 117 Avenue Gambetta 75020 Par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