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타에서 보낸 일주일 - 헤이트래블 - hey!Travel


  • written & photograph by Joanne jeongwon sin

몰타에서 보낸 일주일

Seven Days in Malta

유럽과 이슬람 문화가 혼재한 지중해 위 작은 섬, 몰타. 가까이에 위치한 영국과 닮은 듯 닮지 않은 면면을 찾으며 보낸 몰타에서의 기록.
  • written & photograph by Joanne jeongwon sin
2026년 07월 02일

모처럼 유럽에 온 친구가 며칠이든 자신의 숙소에 머물러도 좋다는 관대한 제안을 하지 않았더라면 언제 몰타를 방문했을지 모를 일이었다. 지난 1월, 친구는 초등학생 아들과 겨울방학 동안 몰타 한 달살이 중이었다. 학부모인 친구에게 몰타는 영국보다 수업료나 체류비가 저렴하면서 분위기가 한결 여유롭고 유럽 문화권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런던에 산 지 꽤 오래되었는데도, ‘몰타’라는 지명을 들었을 때 뾰족하게 떠오르는 이미지도 단어도 없다. 런던에서 비행기로 약 3시간 걸리는 가까운 섬이지만, 런던 시내에서 간간이 보던 특가 광고 속 여행지였을 뿐이다. 영국인들이 선호하는 은퇴 주거지 중 한 곳이며 가성비 좋은 어학 연수지라는 수식어와 함께 말이다.
몰타 국제공항에 내려 숙소로 향하는 택시를 탔다. 차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거슬리지 않아 쓰고 있던 헤드폰을 벗었더니 택시 기사가 말을 걸어왔다. 전 세계 호텔을 돌며 매니저로 일하던 동유럽 출신의 그는 몰타에 자리를 잡으면서 택시 회사를 차렸다고 했다. 왜 더 큰 섬인 시칠리아가 아니고 여기였냐고 묻자 명료한 답이 돌아왔다. 관광 산업 인프라가 훨씬 발달했고 영어가 공용어이기 때문이라고. 시칠리아는 여기서 배로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다며 프라이빗 투어도 저렴하게 제공하고 있으니 연락하라고 명함을 건넨다. 숙소 근처에 있는 프리미엄 슈퍼마켓 그린스(Greens)에 들러보라는 팁도 잊지 않았다. 친구는 기다렸다는 듯 저녁 장을 보러 그 슈퍼마켓으로 나를 안내했다. 티 섹션에서 나는 기함을 토하고 말았다. 런던 프리미엄 슈퍼마켓보다 훨씬 더 신선하고 풍성한 라인업의 티백이 빼곡히 진열돼 있던 것이다. 친구의 선물로 잎차를 사 와서 다행이라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발레타 골목에서는 종종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그 뷰포인트를 놓치지 않고 카페나 바들은 테이블을 펴고 손님을 끌어들인다.
임디나와 라바트를 걷다 마주친 몰타의 전통 디저트 가게.

몰타의 현재와 과거를 좇다
친구 아들이 다니는 학원은 글로벌 어학원 체인과 대형 호텔의 밀집 지역인 세인트 줄리언스(St. Julian’s)의 파처빌(Paceville)에 있다. 번화가 골목마다 종종 나이트 라이프의 흔적이 엿보이는데, 학생들의 수업이 끝난 후 해가 지면 클럽이나 바가 불을 밝히며 유흥 거리로 바뀐단다. 학원의 수업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 이동 시간을 제외하면 학부모인 친구의 자유 시간은 두세 시간 남짓이었다. 그 시간에 한국에서 밀려든 일을 처리하거나 가족, 동료, 지인과 의사소통을 하고, 아들의 수업 이후 일정을 계획하고 정리했다. 아무리 여행이라도 장기 체류자일 경우 청소, 빨래, 요리와 설거지 같은 집안일도 일상이 된다. 친구는 힐튼 호텔을 지나며 아들을 기다리는 동안 이곳 라운지에서 커피를 마시며 일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상업 지구인 슬리에마(Sliema)에서 배를 타고 올드 타운인 발레타(Valletta)에 닿았다. 최근에 문을 연 몰타 국제 현대미술 공간(Malta International Contemporary Art Space, MICAS)에서 전시를 30분쯤 관람했을까. 친구가 아들을 픽업하러 가야 한다고 했다. 나에게 혼자라도 충분히 시간을 보내다 오라고 했지만, 그날 하루는 이들 모자의 스케줄에 따르고 싶어 함께 미술관을 나섰다. “네가 와서 나도 새삼 몰타를 여행하는 기분”이라는 친구의 말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이튿날에는 혼자 발레타로 향했다. 우연히 들어간 16세기 몰타의 명문 귀족 데 피로(de Piro) 가문의 저택이자 뮤지엄으로도 운영되고 있는 카사 로카 피콜라(Casa Rocca Piccola)에서 마침 영어 가이드 투어가 시작할 참이라기에 번쩍 손을 들었다. 덕분에 몰타 역사에 대한 족집게식 과외를 받을 수 있었다. 몰타는 9세기 말부터 220년간 이슬람 왕조, 250년간 스페인 아라곤 왕국의 지배 이후 군사 종교 집단인 성 요한 기사단이 시칠리아 왕국 시스템을 들여와 통치하며 문화 전성기를 이뤘다. 이탈리아어를 쓰면 문화 엘리트로 분류되던 사회적 인식이 여기에서 비롯됐다고. 1798년 이집트로 향하던 나폴레옹이 몰타를 침공했고 그 탄압에 분노한 주민들은 영국령 해군에 도움을 요청했는데, 프랑스 군이 물러난 뒤 영국은 몰타를 성 요한 기사단에 돌려주려 했으나 주민들이 영국의 보호 아래 남길 원하면서 1814년부터 150년간 영국의 직할 식민지(Crown Colony)로 자진 귀속됐다는 강의가 이어졌다.
몰타의 공용어는 몰타어와 영어다. 몰타어의 뿌리는 구어체 아랍어지만, 11세기부터 관료직과 상류층이 이탈리아어(시칠리아어), 프랑스어를 접목시켜 라틴 문자로 표기하기 시작했다. 이를 경계한 영국이 20세기에 들어 몰타어의 표준화를 지원하는 동시에 몰타어와 영어를 공동 공용어로 지정하면서 수백 년에 걸친 언어 분쟁이 끝났다. 몰타의 면적은 우리나라 거제도와 비슷한 수준으로 작지만 지중해 한복판이라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유럽의 강대국이 탐내거나 거쳐갔고 여전히 그 흔적이 곳곳에 현존한다. 대표적으로 몰타 건축을 상징하는 박스 형태의 발코니 갈라리야(gallarija)가 있다. 토대는 이슬람 건축 양식인 마슈라비야(Mashrabiya)에서 왔고 18세기 이탈리아 바로크 양식과 결합, 지중해 기후에 적합한 컬러 팔레트가 더해진 결과다. 발레타 이전에 수도였던 임디나(Mdina)에서는 스페인 고딕 양식과 이탈리아 바로크 양식이 혼합된 건축물을 볼 수 있다. 몰타 법률의 초석을 다진 것은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오거나 그 영향을 받은 엘리트들이었고, 현재까지 통용되는 제도·사회·문화적 체계를 남긴 것은 영국이다. 교육, 도로교통(오른쪽 운전석), 우편 제도에 영국 시스템이 진하게 배어 있으며 전압마저 영국과 같은 230V다. 그러니까 몰타는 이슬람과 유럽의 컬래버레이션으로 완성된 독특한 하이브리드 국가인 셈이다.

슬리에마에서 발레타로 향하는 길. 페리가 난데없이 결항이라 통통배인 다이사(Dgħajsa)를 탔다.
발레타의 상징인 카르멜산의 성모대성당. 높이 42m에 달하는 거대한 타원형 돔과 바로 옆 뽀족한 첨탑이 시각적 대비를 이룬다. ©몰타관광청

눈과 마음으로 담은 지중해 섬, 고조
일주일을 계획하고 간 몰타 여행의 후반부는 남편과 함께였다. 대학 시절 동기들과 시칠리아에서 건축 여행을 했지만, 몰타에는 가본 적이 없다며 이번 일정에 관심을 표했다. “공항부터 시내까지 오는 동안 몰타 곳곳에는 영국 향기가 진동해. 편안한 마음으로 호텔에서 만나”라고 곧 런던에서 출발한다는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사실이었다. 몰타 공항 출구를 나오자마자 내가 마주친 것은 영국의 커피 체인인 코스타(Costa) 커피, 영국 잡화점 WH 스미스(WH Smiths)였다. 여기가 런던 히드로 공항인지, 몰타 공항인지 헷갈렸다. 슬리에마와 발레타를 걷다가 막스앤스펜서(M&S)의 대형 매장도 봤다. 우리는 가성비 호텔 밀집 지역인 슬리에마에 묵었는데, 조식당에는 잉글리시 브렉퍼스트의 화룡점정인 해시브라운과 베이크드 빈이 주를 이뤘고 호텔 수영장에서는 영국 남부나 북부에서 왔다는 투숙객들과 몰타 여행기를 나눴다. 문득 공항 입국심사대에 선 수많은 머리 희끗한 노부부들이, 출구에 수북이 쌓여 있던 별장 전문 부동산 잡지가 떠올랐다. 몰타는 영국인들의 은퇴 주거지로 여전히 유효한 모양이다.

일몰 무렵 도착한 고조섬의 슬렌디 베이. 옹기종기 모여 앉은 청춘들의 뒷모습이 풍경에 따뜻함을 더한다.
믹스타 동굴(Mixta Cave)은 고조섬을 대표하는 전망대로 꼽힌다. 동굴을 파고 살던 인류의 흔적이 남아 있는 마지막 원시 동굴 주거지 중 하나. 그 너머로 붉은 사해로 이름난 람라 베이(Ramla Bay)가 보인다. ©Evy van Kan / Unsplash

아침 일찍 우리는 베니스의 낭만적인 해안 풍경을 꼭 닮은 어퍼 바카라(Upper Barrakka) 정원에 닿았다. 그 아래 항구에서 페리를 타고 고조섬(Gozo Island)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슬리에마와 발레타 어디든 고조섬으로 떠나는 개인, 그룹 투어 안내소가 즐비하고 차를 렌트할 수도 있지만 벼락치기로 주요 어트랙션만 보고 싶을 땐 투어 버스만 한 게 없다. 인당 20유로를 받는 버스는 주말이라 그런지 1~2층 좌석을 꽉 채운 채 항구를 떠났다. 버스는 섬 내 10곳 이상을 들르지만 버스 간격과 막차 시간을 계산해보니 많아야 네 곳 정도를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탁 트인 평원에 우뚝 선 네오 로마네스크 양식의 타피누 성모마리아 대성당(The Basilica of the National Shrine of the Blessed Virgin of Ta’ Pinu), 장인들의 워크숍이 모여 있는 타디비에기 수공예 마을(Ta’ Dbiegi Crafts Village)을 버스 시간에 맞춰 빠듯하게 돌아보고 남편이 가장 기대했던 섬의 서쪽 끝, 산라우렌츠(San Lawrenz)의 드웨이라 베이(Dwejra Bay)에 위치한 블루홀로 이동했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버스가 내려갈 때 빛이 산란하는 바다 풍경에 미소를 지으면서. 여기엔 로컬이 운영하는 인당 5유로(현금)짜리 모터 보트 투어가 있다. 다음 버스는 40분 후에 오고, 보트 투어는 20분 남짓 진행된다. 천연 암석 아치를 통과해 바다 쪽에서 고조섬의 석회암 지층을 감상할 수 있는, 약간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기회였다. 이미 보트에 올라탄 6명의 승객과 주인이 우리를 빤히 바라보며 결정을 재촉했기에 여행자 보험보다는 내 수영 실력을 믿은 채 비좁은 보트에 끼어 앉았다. 영국 남부를 여행하면서 석회암 지질로 형성된 화이트 클리프를 몇 번이고 봤지만 지중해의 것은 그만의 깊고 웅장한 매력이 있었다. 보트 주인은 오른쪽 아래를 가리키며 “오렌지 코럴, 베리 뷰리풀”, 왼쪽을 가리키며 “어메이징 화이트 클리프! 베리 굿 다이빙 스폿”이라고, 간단 명료하면서 한 번 들으면 결코 잊히지 않을 강한 이탈리아 억양의 영어로 설명했다. 조금이라도 큰 배를 탔다면 이렇게 가까이서 아름다운 오렌지빛 산호와 화이트 클리프의 단면층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을 것이다. 모두가 박수를 치며 해피엔딩으로 보트 투어가 끝났고 아이스크림을 손에 쥐고 나니 10분 정도가 남았다. 잠깐 망설이던 남편은 커다란 석회암 웅덩이를 깡총깡총 넘어 해변 끝까지 뛰어갔다. 투어 버스 정류장에 몰려드는 인파를 보며 애가 타기 시작했지만 내버려뒀다. 일종의 대리만족이랄까.
다음 장소인 슬렌디 베이(Xlendi Bay)에 내렸을 때 남편이 말했다. “여기서부터는 더 이상 버스 시간에 구애받지 말고 지루할 때까지 시간을 보내자.” 나는 우버 앱을 켜서 운행 여부, 슬리에마로 돌아가는 페리의 막차 시간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 제안에 동의할 수 있었다. 전망대 근처의 벤치에 앉을 무렵 해가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었다. 언제 쓸지도 모르지만, 나는 카메라를 들어 사진이고 영상이고 무작정 찍어댔다. 영국 콘월(Cornwall) 반도의 서남쪽 끝자락 해안 도시 펜잔스(Penzance)와 비슷한 것 같다는 내 말에 남편은 렌즈 말고 눈으로 보라고 답했다. 휴대폰 배터리가 방전된 후에야 비로소 지중해의 일몰이 눈에 들어왔다. 여행을 많이 다녔지만 10분 이상 지긋이 자연을 감상한 적은 별로 없었다. 좋은 여행, 멋진 여행이란 무엇일까. 어떤 여행은 일정이 끝나고 한참 지난 뒤에야 좋았다는 결론에 이르기도 한다. 가성비 좋고 트렌디한 맛집을 만날 확률보다 시간과 기록의 강박에서 벗어나 천천히 걷고, 자연을 오래 바라볼 기회는 훨씬 드물다. 돌이켜보면 몰타 여행은 그 드문 확률이야말로 무엇보다 귀하다는 걸 조금씩 깨닫는 시간이었다.

몰타의 역사가 축적된 건축물을 감상하며 보내는 한가로운 시간. ©Stefano Zaccaria / Shutterstock.com
웨이라 베이에서 식은땀 흘리며 시작해 해피엔딩으로 끝난 보트 투어. 고조섬의 아름다움을 한층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Houng Ngui / Unsplash

몰타로 가는 방법
이탈리아 남쪽에 자리한 지중해 위 섬, 몰타에 가려면 인천국제공항에서 최소 1회 이상 경유해야 한다. 평균 비행 시간은 21~23시간 정도 걸린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몰타의 수도 발레타, 4000년 역사의 옛 수도 임다나, 숨은 낙원으로 꼽히는 블루 라군과 코미노섬,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은 소박한 매력의 고조섬은 꼭 들러야 할 핵심 명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