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하면 역시 매년 5월 전 세계 영화인의 이목이 쏠리는 칸국제영화제를 가장 먼저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 산업과 크게 관계없는 이들이라도 이 영화제의 최고상, 그러니까 ‘황금종려상’이라는 이름은 익숙하게 느낄 정도니까. 나 역시 실제로 출장을 가보기 전에는 칸의 모든 것을 동경의 대상으로 삼는 사람이었다. 출장 순번을 기다리던 막내 기자 시절에는 영화 기자로 사는 이상 칸은 한번 가보고 일을 때려치우든지 해야겠다는 오기 비슷한 것마저 생겨났을 정도다. 뤼미에르 대극장(Grand Théâtre Lumière) 계단에 깔린 레드카펫, 프랑스 남부 해변의 끝내주는 날씨, 무엇보다 그해 내내 세계 영화계에서 가장 화제가 될 일련의 작품을 관람하는 최초의 관객이 된다는 즐거움을 상상하는 건 완벽에 가까운 삼박자였다. 혹시 칸영화제의 레드카펫을 보고 단 한 번도 설렘을 느껴본 적이 없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영화와 다소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일 거라 확신한다.
칸에 가서 피부로 느낀 건, 예상보다 훨씬 산업 관계자 중심의 축제라는 사실이었다. 이 영화제를 제대로 누릴 수 있는 이들은 딱 네 부류다. 영화를 만든 사람, 파는 사람, 사려는 사람, 취재하려는 사람. 영화제가 제공하는 모든 장소의 입장 여부는 이들의 목에 걸린 배지에 달려 있다. 그중 뤼미에르 대극장을 포함한 공식 상영 극장, 영화를 사고파는 마켓 부스와 프레스센터 및 기자회견장까지 갖춘 건물인 ‘팔레 데 페스티벌(Palais des Festival)’을 제집 누비듯 할 수 있는 유일한 직군은 기자다. 말하자면 최적의 취재 환경을 제공하는 매체 친화적 영화제라는 뜻이기도 하다.
취재진이면 모든 게 수월하냐, 그건 또 아니다. 칸영화제에는 일종의 계급이 존재한다. 배지 색에 따라 등급이 나뉘는 것이다. 사진작가에게 주어지는 회색과 주황색, 영화 및 음향 스태프에게 주어지는 녹색, 업계 관계자를 위한 검은색 배지를 제외하면 취재진에게는 총 네 가지 색이 존재한다. 가장 높은 등급부터 흰색, 분홍색, 파란색, 노란색 순이다. 이는 기자가 사전에 제출한 문서를 바탕으로 파악한 매체의 중요성과 규모, 그간 칸영화제에 참여한 이력 등이 종합적으로 포함된 결과로 추정된다. 추정이라고 애매하게 말하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배지 등급과 관련한 영화제의 공식 입장은 ‘내부 기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등급은 영화제 현장에 도착한 당일에나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남다른 긴장감을 선사한다.
몇 년 전부터는 온라인 예약 방식이 도입되면서 한결 민주적(?) 형태가 됐지만, 2020년 무렵만 해도 상영부터 기자회견까지 무한정 줄을 서야 하는 선착순 방식이었다. 배지 등급이 노란색이라면 그날 다른 기자들이 다 앓아눕거나 하는 극단적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 이상 원하는 자리의 선착순 입장은 포기하는 편이 낫다. 그뿐인가. 스타 감독이나 배우들의 라운드 테이블 인터뷰에서 서로 먼저 질문하려 발동을 거는 전 세계 기자들 사이에서 강제 영어 듣기와 말하기 평가를 견뎌내는 것은 퍽 힘에 부치는 일이다. 한국과 정반대의 시차를 견디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체력전이다.
그럼에도 칸영화제는 늘 마음이 벅차오르는 곳이다. 팔은 안으로 굽을 수밖에 없는 터라 한국영화의 국제적 위상을 실감하는 순간은 더욱 그렇다. 2019년 <기생충>이 황금종려상 트로피를 들어 올렸던 순간, 2022년 <헤어질 결심>과 <브로커>가 수상하는 기쁨을 현장에서 느꼈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그러나 영화의 국적과는 별개로 뤼미에르 대극장 공식 상영에 참석할 때면 해당 영화에 얼마나 동의하고 감화했는지와는 상관없이 늘 마음에 감동이 차오른다. 2300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이 함께 스크린을 바라보며 호흡하고 영화를 만든 이들에게 예우와 사랑을 담아 박수를 보내는 것. 그 풍경의 일원으로 서 있자면 또렷하게 이름 붙이기 어려운 감각이 회복되는 것을 느낀다. 어떤 세계의 구성원이라는 옅은 소속감이라 해도 좋고, 부정할 수 없는 애정이라 해도 좋다. 그건 아침부터 밤늦은 시각까지 빼곡하게 이어지는 상영과 취재 스케줄, 언어 스트레스, 어딜 가나 너무 많은 사람들이 북적대는 데서 오는 극강의 피로를 기어이 견디게 만든다.
유럽 영화제가 모두 비슷한 형태인 건 아니다.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기차로 3시간쯤 가면 나오는 항구도시 예테보리(Göteborg)에서 열리는 예테보리국제영화제는 매년 1월 말에서 2월 초에 만날 수 있다. 2월의 추위라면 베를린국제영화제의 강도 높은 으슬으슬함도 있지만, 역시 북유럽이어서일까. 예테보리 쪽이 훨씬 더한 느낌이다. 인본주의적 관점과 비전을 중시하는 영화제이기에 매년 의제가 선명한 편이다. 내가 취재를 갔던 2020년은 ‘젠더 평등 비율 50대 50’을 이룬다는 기조하에 영화제가 열렸다. 단순히 성별의 기계적 중립을 맞추는 게 아니라 젠더 평등을 위한 노력은 장애인, LGBTQ+, 흑인 및 아시아 소수민족에 대한 관점까지 나아갈 수 있기에 진보적 시선을 견지하겠다는 주최 측의 설명이 인상 깊었다. 북유럽 바이킹 문화의 기상이 물씬한 메인 극장 드라켄을 중심으로 한 관객 친화적인 지역 축제 분위기도 강하게 풍겼다.
국내 영화제 역시 지역의 특색에 맞게 각각의 재미를 누리는 재미가 적지 않다. 한국을 넘어 아시아 중심의 영화제로 자리 잡은 부산국제영화제의 경우 매년 센텀시티 부근 영화의전당을 중심으로 상영하는 공식 프로그램 외에 관객들이 프로그래머가 되어 상영작을 선정하는 ‘커뮤니티 비프’를 운영 중이다. 영화의전당 완공 이후 해운대에서 센텀시티로 본무대를 옮기며 바닷가 영화제 특유의 낭만이 사라진 건 아쉽지만, 원래 부산국제영화제의 정체성이었던 남포동을 중심으로 활력을 부활시킨 커뮤니티 비프 프로그램은 색다른 재미다.
공식 상영작인 신작 외에 관객들이 요청한 구작들을 함께 보고 관계자를 초청해 이야기 나누는 풍경의 일부가 되고 나면, 영화는 세상에 공개된 직후가 전부가 아니라 긴 시간의 생명을 부여받는 존재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씨앗 호떡을 포함해 먹자골목의 간식거리도 남포동을 찾는 재미다. 참고로 영화 보는 것만큼이나 음식이 중요한 관객이라면 무조건 봄의 전주로 향해야 한다. 매년 밥 먹다가 상영 시간을 놓쳤다는 관객들의 하소연 혹은 의도된 게으름이 기분 좋게 공유되는 지역이니까.
초여름의 분위기는 무주산골영화제가 책임진다. 지역의 주요 공간인 등나무운동장을 중심으로 매년 6월 펼쳐지는 이 영화제는 캠핑과 음악 페스티벌 성격까지 결합한 축제다. 등나무운동장 일일 입장권을 구매하면 잔디밭이든 운동장 스탠드든 어디든 둘러앉아서 그날의 야외 상영과 무성영화 라이브 연주, 초대 가수의 무대 등을 종일 즐길 수 있다. 풀벌레 소리가 들리고 산바람이 불어오는 야외 상영의 분위기는 낭만 초과 수준이다. 매년 영화제가 열릴 즈음 무주를 찾는다면 무주 안성 두문마을에서 열리는 무형유산 낙화놀이를 함께 경험해보는 것도 좋다. 밤의 아름다운 즐거움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조선식 불꽃놀이’다. 모두가 파편화되는 시대에도 사람들이 모인다는 것,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감탄하며 즐거워한다는 공동체의 감각은 여전한 설렘과 낭만을 선사한다. 축제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결국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은선 작가가 언젠가 경험하고 싶은 영화제 3
선댄스영화제(Sundance Film Festival)
미국 유타(Utah)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독립영화 축제로, 고(故) 로버트 레드퍼드(Robert Redford)가 주축이 되어 창립했다. 유타까지 가는 길은 멀고 험하지만, 매년 반짝이는 영화를 발견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예컨대 <미나리> 같은.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Annecy International Animation Film Festival)
매년 6월 프랑스 안시에서 개최되는 애니메이션 전문 영화제. 실사 영화보다 직관적으로 감성을 자극하는 애니메이션에 온종일 파묻히는 시간이 꽤 행복할 것 같다.
정동진독립영화제
강릉시 정동초등학교에서 열리는 야외 독립영화제. 강원도 여름의 낭만은 이 영화제가 책임진다고들 한다.
매년 일정이 맞지 않아 (놀랍게도)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독립영화인들이 사랑하는 축제로도 유명하다.
글을 쓴 이은선은 영화 저널리스트로, 영화 전문지 <스크린>, <무비위크>, 종합 일간지 <중앙일보>에서 취재기자로 일했다. 영화 인터뷰와 GV 진행, 방송과 비평 활동을 겸한다. 에세이집 <착해지는 기분이 들어>, 영화 아카이빙 북 <소울메이트: 메이킹 다이어리>, 리뷰집 <깊은 밤의 영화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