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지를 혼자 여행한다는 건 - 헤이트래블 - hey!Travel


  • written by AROMISEEN
  • ILLUSTRATION BY JOE SUNGHEUM

신혼여행지를 혼자 여행한다는 건

Traveling Alone to a Honeymoon Destination

누가 신혼여행지를 아껴둬야 한다고 했을까? 결혼 계획은 없지만 멕시코 칸쿤은 가고 싶은 당신에게 바치는, 나 홀로 허니문 생존기.
  • written by AROMISEEN
  • ILLUSTRATION BY JOE SUNGHEUM
2026년 03월 05일

한 달 넘게 머물던 미국을 떠나 다음 여행지를 고르던 중이었다. 지도를 훑는 동안 칸쿤이란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멕시코 메리다를 갈 거라면, 칸쿤을 들러야 하지 않을까?’ 생각에 잠겼다. 뭐든 겁 없이 내달리는 평소 성격과 달리 칸쿤이란 단어 앞에 잠시 망설였던 이유는 이렇다. 카리브해의 청량한 바다와 럭셔리 올인클루시브 호텔이 곧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칸쿤은 우리나라에선 신혼여행지로 대변되는 도시이기 때문이었다. 마우스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골몰하던 중 갑자기 5년 전 혼자 다녀온 몰디브가 생각났다. 그때도 역시 여행을 계획하고 몰디브에 간 건 아니었다. 당시 스리랑카에 있었는데, 테러가 발생한 탓에 급히 몰디브로 도망쳤던 것이다. 그때 몰디브를 여행하며 누군가와 함께 오려고 아껴두기엔 세상은 너무 넓고 아름답다고 생각했는데. 특히나 결혼을 할지 말지 모르는 불확실한 미래에 나를 가두고 가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스스로를 한심하다고 여기던 일까지 기억났다.
“미국인 혹은 멕시코인에게 칸쿤은 어떤 도시야?” 칸쿤을 여행지 후보로 정한 후, 미국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물었다. 그들은 예상 밖의 답을 내놓았다. “아무 이유 없이 아무 때나 가는 곳이야. 미국과 가깝고 따뜻하니까.” 또 다른 친구는 “혼자 칸쿤을 간다고? 파티를 즐기기에 아주 좋은 도시지!”라며 부러워했다. ‘그동안 내가 생각하던 칸쿤이 맞는 거야? 대체 어떤 도시인 거지?’ 호기심은 엉덩이를 들썩거리게 만드는 아주 강력한 동력이다. 그렇게 나는 칸쿤으로 갈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칸쿤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공항 직원이 자동출입국심사대로 안내했다. 한국인은 자동출입국심사 대상이라 여기에 온 의도나 여행 계획을 묻는 질문 없이 바로 입국할 수 있다. 멕시코에서 두 번째로 혼잡한 공항이라는 명성처럼 공항 앞은 꽤나 붐볐다. 눈앞에 보이는 사람 80%는 서양인. 대부분 친구, 연인, 가족과 함께였다. 인터넷에서 칸쿤 택시 기사들의 호객 행위가 심하다는 글을 봤는데,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마치 이곳에 동양인은 나뿐이고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시내로 가기 위해 도착한 버스 터미널 앞, 타코 익스프레스(Taco Express)에서 방금 구운 고기를 얹은 타코 두 개를 입안에 밀어 넣었다. 타코의 본고장에서 첫입을 떼는 순간 확신했다. 비싼 호텔 따위 예약하지 않길 정말 잘했다고. 그리고 깨달았다. 내 여행에는 길거리의 소박함과 소란함이 더 잘 어울린다고. 여행자에게 칸쿤은 크게 현지인의 삶이 녹아 있는 시내와 휴양객을 위한 호텔 존으로 나뉜다. 허니문이나 휴양을 목적으로 온 이들은 시내에서 차로 30분 정도 더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호텔 존에 머문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에 둘러싸인 채 올인클루시브 호텔과 초대형 리조트가 성벽처럼 줄지어 서 있는 동네다. 멕시코 친구는 “거긴 멕시코가 아니라 미국 마이애미야”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의외로 호텔 존에는 1박당 10만원대에 머물 수 있는 호텔도 여럿 있다. 하지만 비행기로 수십 시간 날아와 한국 근처에서도 즐길 수 있는 흔한 호캉스에 매몰되고 싶지 않았다. 멕시코의 민낯을 만나기 위해 화려한 호텔 대신, 시내 에어비앤비로 향했다.
칸쿤에 있는 4박 5일 동안은 말 그대로 발 닿는 대로 시내 구석구석을 훑었다. 주로 타코, 세비체 맛집을 찾아다니며 배가 찢어지도록 먹었다. 아저씨들이 줄 서서 먹는 타코 맛집 엘 폴리야(El Polilla)에서 맛본 타코를 떠올리면 지금도 입맛을 다시게 된다. 돼지고기 살코기와 비계를 섞어 가득 올려주는데, 가격은 한화로 2500원 정도. 타코스 이 콘소메 데 레스(Tacos y consomé de res)는 시내 사거리에 있는 체드라우이 마트(Chedraui Mart) 앞, 늘 현지인들로 붐비는 노점 타코 가게로, 소고기를 푹 삶아 잘게 찢어 올린 타코와 진한 소고기 육수 콘소메가 대표 메뉴다. 타코 세 개를 시키면 콘소메 국물을 함께 준다. 타코를 한입 베어 물고 따뜻한 국물을 곁들이자 기름진 맛이 한층 부드럽게 정리된다. 기념품 가게와 노점이 미로처럼 이어진 시장 메르카도28(Mercado 28) 근처 식당 페스카디토스(Pescaditos)에서는 해산물을 원 없이 즐겼다. 할라페뇨 튀김 칠레 레예노(Chile Relleno)와 유카탄 지역에서 즐겨 마시는 허브 음료 차야 콘 피냐 이 리몬(Chaya con piña y limón)을 맛볼 수 있다.
호텔 존은 단 하루면 충분하다. 시내와 호텔 존을 잇는 R1, R2 버스는 시간표를 몰라도 될 만큼 쉼 없이 오갔고, 900원(10.25페소) 남짓한 요금은 가벼운 외출을 도왔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1월 말의 칸쿤 해변은 이곳이 인생에 단 한 번뿐일지도 모르는 여행자의 사정 따위 봐주지 않는다. 1년 중 바다가 가장 예쁘지 않다는 시기에, 투숙객 사유지 사이로 겨우 찾아 들어간 공용 해변 플라야 델피네스(Playa Delfines)에는 우리가 으레 기대하는, 화려하게 반짝이는, 숨이 멎을 듯한 바다 풍경은 없었다. 하지만 적당한 인파가 머무는 해변에서 마주한 칸쿤의 바다는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다웠다. 현지인들은 해변에 앉아 노트북으로 일을 하거나, 친구들과 피크닉을 즐기고 있었다. 마야 문명 박물관에서 보낸 시간은 무채색 해변 풍경의 공허함을 채워줬다. 유카탄반도(Yucatán Peninsula) 전역에서 출토된 마야 유물을 지나 야외로 나서면 시간이 멈춘 듯한 실제 마야 유적과 마주하게 된다. 이곳에서 내 시선을 압도한 건 다름 아닌 거대한 고목이었다.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세월을 버티며 뿌리내린 그 자태. 마야의 흥망성쇠를 묵묵히 지켜보았을 그 웅장한 생명력 앞에 있자니, 비로소 멕시코에 왔다는 것이 실감 났다.
날이 조금 개자마자 ‘여인들의 섬’이라는 뜻의 이슬라 무헤레스(Isla Mujeres)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푸에르토 후아레스 항구에서 페리로 약 20분 거리에 위치한 섬이다. 본토의 해변보다 예쁘다는 소문이 자자해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이곳이 여인들의 섬이라 불리기 시작한 건 스페인 정복자들이 멕시코에 도착했을 때부터다. 마야인들에게 성스러운 장소였던 이 섬에 풍요로운 삶을 창조하는 여신 ‘익스첼’을 기리기 위한 제단과 동상이 마련돼 있었고, 이를 본 정복자들은 단순히 섬 이름에 ‘여성’이란 단어를 붙인 것이다. 낮에는 골프 카트에 몸을 싣고 섬을 한 바퀴 돌거나 멕시코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해변에서 스노클링을 즐길 수 있고, 밤이 되면 길가에 길게 늘어선 노점에서 타코나 마르케시타 같은 길거리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나는 해변에서 비치 타월을 깔고 낮잠을 청했다. 2~3시간 정도 지났을까. 발밑까지 차오른 바닷물이 발바닥을 간지럽혀 잠에서 깼다. 혼자 하는 여행의 장점은 뭐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고, 단점 역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칸쿤을 단지 허니문 성지로 인식하고 있었다면 이제 그 고정관념을 정중히 거두어주길 바란다. 이 도시는 누군가의 인생 2막을 축하하기 위해 존재하는 배경이 아니라, 혼자서도 충분히 뜨겁고 자유롭게 만끽할 수 있는 마야의 땅 그 자체니까. 그러니, 어떤 이유에서건 다음을 기약하며 여행지를 아끼지 말자. 완벽한 동행이나 특별한 계기를 기다리느라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질 수도 있는 찬란한 순간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어떤 방식으로든 그곳에 발을 들이는 순간, 여행은 이미 그 자체로 완성된다.

여자 혼자 여행하기 좋은 칸쿤 근교 여행지

플라야 델 카르멘(Playa del Carmen)
칸쿤에서 약 1시간 20분 거리에 있는 도시로, 혼자라면 칸쿤보다 더 좋은 선택지일 수도 있다. 특히 도냐 파울라 레스토랑(Doña Paula Restaurant)은 꼭 방문하길 추천한다. 멕시코 가정식을 선보이는 곳으로, 포졸레, 칼도데레스, 판시타 등의 전통 요리를 맛볼 수 있다.

툴룸(Tulum)
플라야 델 카르멘에서 약 60km 떨어진 도시. 요가와 명상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장기 체류하기 좋은 곳이다. 교통이 다소 불편하지만 조용히 머물며 영적인 이벤트를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이슬라 홀복스(Isla Holbox)
칸쿤에서 약 150km 거리에 있는 섬. ‘차가 없는 섬’이라는 별명처럼 아스팔트 대신 모래길이 이어지고, 파티와 리조트의 에너지로 가득한 칸쿤과는 전혀 다른 호흡으로 시간이 흐른다. 해먹에 누워 바람 소리를 듣거나, 바쁜 일정 없이 조용히 숨을 고르고 싶을 때 홀복스는 그저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느린 쉼표 같은 섬이다.

메리다(Mérida)
유카탄반도의 중심 도시로, 칸쿤에서 버스나 기차로 약 3~4시간 걸린다. 멕시코에서도 치안이 안정적인 도시로 자주 언급될 만큼 안전하며 식민지 시대 건축물, 파스텔 톤 건물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메리다 근교에는 크고 작은 세노테(cenote, 천연 우물)가 곳곳에 있어 하루 일정으로 자연 속에서 수영을 즐기거나 더위를 식히기 좋다.

글을 쓴 신아로미는 여행 크리에이터이자 작가, 요기니다. 에세이 <혼자서도 잘 사는 걸 어떡합니까>를 썼다. 겨울이 오면 계절성 우울증을 피해 따뜻한 나라로 떠난다. 주로 낯선 나라에서 혼자 사는 감정과 요가를 하며 생긴 몸의 변화를 기록하며 오래 머물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