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가토는 하카타역에서 약 2시간 거리의 근교 여행지다. 벚꽃이 한창인 4월 초, 야마구치현 나가토 온천 마을로 향했다. 수백 년 전 온천 문화가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유서 깊은 온천 마을은 그림 같은 산기슭에 자리해, 마을 중심을 흐르는 강을 따라 아름드리 벚꽃나무가 드리워져 있다.
온천이 흐르는 오토즈레강 가에 자리한 호시노 리조트 카이 나가토는 번주가 산킨코타이(영주가 에도와 영지를 번갈아 오가던 제도) 때 휴식 장소로 사용하던 ‘본진’ 오차야야시키(귀빈용 저택)를 모티프로 지은 온천 여관이다. 로비에 들어서자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도코노마(족자와 꽃꽂이 등을 장식하는 공간)가 펼쳐졌다. 전통 무가 문화의 격식과 현대적 디자인이 어우러지며 숙소 전체에 은은한 역사적 분위기가 흐른다.
시그너처 객실 ‘오채의 방’은 다섯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야마구치현의 전통 공예인 오우치 인형, 일반적인 유리보다 단단한 하기 유리, 이 지역의 도예인 하기야키 중에서도 나가토시 후카와 마을에서만 만들어지는 후카와 하기 도자기, 일본 전통 기법으로 만든 도쿠지 화지,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사계절에 따라 다른 표정을 보여주는 창밖의 풍경이다. “침대 헤드에 장식된 도쿠지 화지는 무로마치 시대부터 800년 이상 이어져온 전통 종이로, 야마구치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에도 시대에는 번(영지)의 중요한 수출품 중 하나였고, 현재는 몇 가구만이 제작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도쿠지 화지는 무형문화재 장인이 카이 나가토를 위해 맞춤 제작한 것입니다. 후카와 하기 도자기는 사카쿠라 마사히로, 다하라 다카오, 사카쿠라 젠에몬 등 지역 장인들의 작품입니다. 장인들과 카이 나가토의 지배인이 함께 조명 각도를 연구해 배치했죠.” 한국어가 가능한 매니저 야마자키의 설명이 이어졌다. 공예품도 인상적이지만, 가장 강렬하게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창밖을 가득 채운 벚꽃이다. 아름다운 벚꽃을 보니 객실의 한 요소로 풍경이 포함된다는 설정이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객실에서 녹차 한 잔을 마신 뒤 대욕장으로 향했다. 나가토 유모토 온천은 예로부터 번주들이 치료를 위해 찾던 온천지로, 강알칼리성 원천수는 신경통과 근육통 완화, 피로 해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탕에 몸을 담그는 순간, 여정으로 쌓인 피로가 조용히 풀린다.


저녁은 반개인실에서 가이세키 코스로 제공된다. 야마구치현은 오징어 소비량이 높은 지역으로, 단맛이 도는 두툼한 오징어가 전채와 사시미로 오른다. 계절 모둠 요리는 하기야키 그릇과 나무 통에 담겨 시각적 완성도까지 놓치지 않는다. 메인은 향토 음식 가와라 소바에서 착안한 ‘가와라구’다. 뜨겁게 달군 도판 위에서 복어와 닭고기, 제철 채소를 구워 먹는다. 마지막에 감귤류인 야마구치산 유즈키치를 더하면 입안에 산뜻한 여운이 길게 남는다.
전통 공예 체험도 마련되어 있다. 아카마 벼루에 먹을 갈아 향을 느끼고 부채 모양 종이에 글을 남기는 시간이다. 아카마 벼루는 에도 시대에는 진상품으로 올리던 물건이다. 은은한 먹 향기에 마음이 차분해진다.
이곳의 또 다른 매력은 숙소 밖으로 이어지는 온천 거리다. 호시노 리조트 카이 나가토는 ‘나가토 유모토 온천 관광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의 일부로 조성된 시설로 온천 마을과 연결되어 있다. 숙소에는 온천 거리로 바로 나갈 수 있는 아케보노 문이 마련되어 있다. 이 문을 지나면 바로 산책로가 이어진다. 강을 따라 나무 덱 산책로가 이어지고, 작은 다리와 광장, 카페와 상점들이 온천 마을의 풍경을 완성한다. 2014년부터 시작된 나가토 유모토 온천 마을 프로젝트는 개별 숙소가 아닌 마을 전체를 통합 설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공공, 민간, 지역 협력 프로젝트다. 강을 중심으로 공간을 재배치하고, 외탕과 산책, 상점을 연결하여 숙소를 단순 숙박만 하는 곳이 아닌, 마을을 경험할 수 있는 곳으로 확장한 것이다. 카이 나가토 안의 아케보노 카페에서는 지역 특산품인 유즈키츠로 만든 잼을 사용한 도라야키를 맛볼 수 있으며 숙박객이 아니어도 이용 가능하다. 밤이 되면 강변에 조명이 켜지고, 온천 마을은 또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물소리와 바람이 어우러진 고요한 시간 속에서 온천 마을에서의 하루가 저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