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디브 속 고요의 섬으로
몰디브 벨레나 국제공항에 착륙해 스피드 보트에 오른 지 20분. 직원들의 환대와 따뜻한 공기를 가로질러 타지 엑조티카 리조트 & 스파 몰디브(Taj Exotica Resort & Spa Maldives, 이하 타지)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다로 뛰어드는 것이었다. 디럭스 라군 빌라 위드 풀과 이어진 눈부신 에메랄드빛 바다를 목격한 순간 뛰어들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비행과 환승이 준 여정의 고단함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몰디브의 1천200여 개 섬 중 리조트가 자리한 170여 개의 산호섬이 저마다 다른 도시인 양 인도양을 마주하고 들어서 있다. 그중 타지는 남말레환초(South Male Atoll)에서도 고요하고 수심이 얕기로 유명한 엠부두피놀루(Emboodhu Finolhu)섬에 자리했다. 검색창에 ‘몰디브 여행’과 ‘가성비’, ‘미식’을 섞어 찾아본 여행자라면 한번쯤 봤을 법한 리조트다. 게다가 ‘라군 vs 수중환경’으로 사실상 리조트 선택이 갈리는 몰디브에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목적지이기도 하다.
바다가 선사한 경외로운 순간들
“몰디브에서 라군은 단어의 뜻처럼 단순히 석호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넓게 펼쳐진 얕은 바다에 산호가 하얀 가루를 이루고 있는 것이죠. 이는 곧 수심이 얕고 파도가 잔잔해 초보자가 스노클링하기 좋다는 의미예요.”
첫날 저녁, 우리를 환영해준 제너럴 매니저 코리나(Corinna)가 달뜬 목소리로 말했다. “빌라들은 날카로운 타원형을 이루며 동그랗게 자리했는데, 한가운데 바다는 썰물 때면 물이 발목에 찰 정도로 얕아요. 당연히 파도도 잔잔하죠. 멀리 나가지 않아도 스노클링을 즐기기에 더없이 완벽해요. 수중환경에도 신경을 썼습니다. 곳곳에 산호 프레임을 만들어 관리해요. 이는 알록달록하고 제법 몸집이 큰 물고기들을 불러 모으죠.” 아니나 다를까. 리조트 안에 위치한 이 동그란 바다에는 크고 작은 물고기와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이 쉴 새 없이 북적거렸다.
타지에 머무르는 내내 몰디브 바다를 새로운 방식으로 탐미했다. 예를 들어 이런 것. 먹이를 찾아 우글거리는 너스샤크와 유영하고,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만타(쥐가오리) 무리를 긴장 속에 기다렸다. 백사장과 바다의 경계선에 누워 흔들리는 물살에 몸을 맡기다 낮잠에 빠져버렸다. 어느 낮에는 바다 한가운데 세워진 그네로 걸어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사진을 찍다가 바닷물이 허리까지 차오르자 그제야 배영으로 빠져나오는 호기를 부리기도 했다. 그러다 훌쩍 배를 타고 온 세상을 물들이는 노을을 완벽한 침묵 속에 감상한다. 손에 쥔 모든 상념이 바닷바람에 씻겨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기분을 느꼈다. 어스름히 새어오는 달빛 끝에서 서서히 뱃머리를 돌렸다. 돌아오는 길엔 돌고래가 파도의 리듬에 맞춰 뛰어올랐다. 외딴섬처럼 떨어진 아늑한 다이닝 공간에선 샴페인을 마셨다. 사방에서 일렁이는 파도에 어지러움이 몰려왔다. 술기운 때문일까? 마치 목적 없는 행로를 가는 선장이 된 기분이었다.
타지마할의 우아함에 더해진 환대
타지 엑조티카 리조트 & 스파 몰디브는 인도 타타 그룹의 호텔 체인 브랜드, 타지 그룹이 운영하는 전 세계 200여 개의 호텔과 리조트 중 하나다. 1903년 타타의 설립자 잠셋지 타타(Jamsetji Tata)가 타지마할에서 모티브를 따와 창립한 뒤, 120여 년간 꾸준히 성장해온 타지 그룹의 초기 정신을 담은 곳이다. 타지마할의 건축적 우아함과 따스함이 담긴 하스피탤러티,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현지 문화를 존중하고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것. 이것이 여행자를 진정한 평화로 이끌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리조트에는 총 7개 타입의 빌라 64채가 있다. 인도 계열의 리조트답게 모든 객실에는 인도 문화가 짙게 밴 나무 인테리어와 액자로 채워졌다. 여기에 오리엔탈 스타일의 가구가 색감을 더한다. 지붕은 야자 잎을 활용해 몰디브 전통과 예술성도 고스란히 살렸다. 객실 선베드에 누워 일몰로 인해 살굿빛으로 변하는 라군을 바라보다 보면, <포브스 트래블 가이드>가 이곳을 두고 “목가적인 열대 휴양지의 판타지를 충족시켜 주는 곳”이란 찬사를 보낸 이유를 절절히 깨닫는다. <포브스 트래블 가이드>는 2021년, 이곳에 별 네 개를 수여했다.
“얼마 전 인도 최고의 기업가이자 신화로 불리는 라탄 타타 회장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의 정신을 다시 기리고 있어요. 살아생전 저소득층을 위한 자동차를 만들고, 작은 아파트에 살며 검소한 생활을 해 높은 신망을 얻은 분이었어요. 호텔 브랜드에도 마찬가지였어요. 화려한 외관 못지않게 내실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셨죠. 타지는 몰디브 리조트의 1세대 격으로 평가될 만큼 오래됐지만, 덕분에 변하지 않는 철학을 중심으로 견고한 내실을 다질 수 있었습니다.”
김치찌개에 진심인 몰디브 리조트
셋째 날 저녁, 세일즈 마케팅 매니저 발비르(Balveer)의 이야기를 들으며 리조트가 강조하는 내실이 무엇인지 되짚어봤다. 라군, 객실, 스파, 인도 사람 특유의 여유로움과 거기서 나오는 따뜻한 환대. 이 모든 것에 고개가 끄덕여졌지만, 무엇보다 타지가 추구하는 내실의 정점에는 미식이 있었다. 그리고 미식에서 큰 존재감을 발휘하는 것이 바로 한식이었다. 도착 전 “몰디브에서 유일하게 한식이 있는 리조트”, “웬만한 한식당보다 한식이 많은 곳”이란 말에 반신반의한 것도 잠시, 오징어볶음, 김치찌개, 짬뽕, 돌솥비빔밥, 닭갈비, 된장찌개 등 끝도 없이 나오는 한식에 첫날 저녁부터 감탄이 튀어나왔다. 이곳은 이 메뉴를 무려 20년간이나 제공해왔다.
“2004년 한국인 숙박객에게 어떻게 하면 좀 더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까 고민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마침 한국 마케팅 담당자가 한식조리사 자격증이 있는 호텔 셰프 출신이었어요. 그와 협력해 한식 메뉴를 만들어 제공했더니 한국분들이 꽤 좋아하셨죠. 이후부터 레시피를 지키기 위해 한국 요리사를 초빙하거나 한국인 관계자들에게 꾸준히 음식 맛을 점검받고 있습니다. 덕분에 한국인 숙박객의 재방문율도 높아요.”
설명과 함께 “맛이 어떠냐”고 물어보는 한식 셰프 바하두르(Bahadur)에게 우리 일행은 요즘 유행하는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이라도 된 양 한마디씩 거들었다. 3일 뒤 “닭갈비는 닭가슴살이 아니라 닭다릿살로”라든가 “된장찌개에서 레몬그라스는 빼는 게 좋겠다” 같은 조언이 그대로 반영된 음식을 맛본 나는 “여기가 몰디브인지 한국인지 모르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정통을 탐미하는 미식 정신
“타지의 가장 큰 프라이드는 미식”이라는 발비르의 말처럼, 이곳의 미식은 여러 면으로 놀라웠다. 알루 티키 차트(감자 패티에 요구르트를 얹은 인도 국민 간식)나 무르그 마카니(버터 치킨 커리)는 10여 년이 훌쩍 지난 인도 여행의 기억을 마치 어제처럼 되살려줬다. 뷔페식 식사가 없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한 접시마다 정성을 쏟는다는 뜻이죠.” 마리오(Mario) 셰프는 둘째 날 밤, 메디테라니오 바이 제프리 벨라(Mediterraneo by Jeffrey Vella) 레스토랑에서 코스 요리를 즐기고 있는 나에게 그 의미를 명료하게 설명했다. “우리의 음식은 화려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어설픈 퓨전 스타일도 아닙니다. 정통을 그대로 구현하고 한결같은 맛을 이어나가는 데 진심을 다하거든요.” 마침 식사 장소 덕분에 마리오의 말은 더 크게 와닿았다.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유명한 스타 셰프 제프리 벨라의 미식 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그는 이곳에서 사프란을 곁들인 수제 리코타 뇨키나 구운 오렌지 향을 입힌 랍스터, 훈제 오이와 가지 미소 등을 곁들인 참치 스테이크 등을 포함한 새로운 차원의 코스 요리를 완성했다. “현지의 식재료로 크로아티아의 맛을 구현했습니다.” 제프리 벨라 밑에서 4년간 손끝을 다진 수제자이자 레스토랑의 대표 셰프인 마리오의 말투에는 자부심이 뚝뚝 묻어났다.
면면이 충만한 타지 엑조티카
리조트가 제공하는 체험 프로그램은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몰디브 여행을 풍성하게 해준다. 타지의 체험 프로그램은 미식만큼이나 매력적이다. 스파와 웰니스 시설은 잊을 수 없는 경험으로 인도했다. “아유르베다 치료를 여기만큼 정통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곳은 몰디브 어디에도 없을 거예요.” 제너럴 매니저 코리나의 말이 과장이 아니었다. 상주 의사가 체질에 맞게 전인적 치유를 도울 뿐만 아니라 발의 지압점을 따라 세게 주무른 뒤 따뜻한 수건으로 혈액순환을 촉진하는 파다브얀가(Padabhyanga)나 콧구멍에 약물을 떨어트린 뒤 얼굴, 목, 어깨를 마사지하는 나스얌(Nasyam) 같은 진귀한 스파 경험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해변이나 바다, 나무와 새 같은 몰디브의 풍경을 그림으로 남길 수 있는 원데이 클래스도 흥미롭다. 로컬 아티스트이자 인플루언서인 샤민(Shameen)의 지도대로 손을 움직이다 보니 어느새 ‘내가 이렇게 그림을 잘 그린다고?’ 싶은 완성작이 눈앞에 있었다. 붓질을 하며 몰디브를 한 번 더 눈에 되새기고, 돌아가서도 이곳을 기억할 수 있는 멋진 작품을 가질 수 있다.
타지에 머무는 내내 거친 야자수 군락 아래에서는 얕은 파도가 쳤다. 고개를 들면 몸통만 한 새가 날아다니다 빌라 앞을 서성거렸다. <포브스 트래블 가이드>의 평가처럼 세상과 동떨어진 듯한 목가적 휴식이 실현되는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한 시간 이른 ‘리조트 타임’이 없을 정도로 공항과 가까운 접근성은 비현실적으로 다가오기까지 했다. 지금도 등에는 태양이 남긴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휴식과 미식을 정신없이 탐닉했던 기억은 아득해지지만, 방에 걸린 야자수 그림을 보며 여전히 생각한다. 언젠가 꼭 다시 가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