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랑 N번째 여행 - 헤이트래블 - hey!Travel


  • written by LEE HYUNSOO
  • ILLUSTRATION BY JOE SUNGHEUM

아빠랑 N번째 여행

Journeys with Dad

부모와 함께 하는 여행의 형태에 효도 관광만 있는 건 아니다. 작가 이현수가 때론 친구처럼, 때론 내 친구들도 같이, 가끔은 아빠의 짐이 되며 함께 유럽을 떠돈 이야기를, 그 여정의 웃기고 애틋하고 뭉클한 순간들을 보내왔다.
  • written by LEE HYUNSOO
  • ILLUSTRATION BY JOE SUNGHEUM
2025년 09월 11일

아빠와 꽤 긴 여행을 했다. 보통 딸이 하는 엄마와의 여행도, 효도를 위한 부모님 모두와의 여행도 아니다. 그 불가능한 일을 해냈다. 심지어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커뮤니티를 잘 뒤져보면 부모와의 여행에 대한 사연이 심심치 않게 올라오는데, 그 사연 너머 어딘가에서 고구마 먹고 가슴 치는 소리나 곡소리가 함께 들린다. 기껏 어렵게 모시고 간 여행지에서 ‘이걸 보려고 힘들게 여기까지 왔냐’는 불만을 접수하고, 리뷰 4.8 이상 밥집에서 ‘이 돈 주고 이걸 사 먹냐’는 핀잔을 들어먹고, 당신들의 몸이 힘들다 비명을 지르는데도 그놈의 ‘본전’을 찾기 위해 한두 군데 더 발을 내딛고는 앓아눕는 부모의 병 수발러가 되는 것이 효도를 빙자한 ‘부모와 함께 하는 여행’의 흔한 모습이다. 나라고 왜 이런 두려움이 없었을까. 어릴 때 멋모르고 엄마 아빠 따라다니기만 한 여행도 쉽지 않았는데. 엄마 아빠가 싸우거나 동생과 내가 혼나거나 누군가 병이 나거나로 마무리되는 성인 이전의 가족여행을 졸업한 이후, 바쁘다는 이유로 엄마 아빠와 어딜 간 적은 거의 없었고, 그다지 내키지도 않았다. “두 분이서 즐겁게 다녀오세요. 저는 제 갈 길 가렵니다.” 이렇게 몇십 년이 흘렀다.
참 아이러니한 것이, 다시 부모님과 여행을 시작한 게 한 분을 잃고서이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엄마가 워낙 아프시기는 했지만 여행을 못 다닐 정도는 아니었는데, 칠순 때 일본 온천 2박, 팔순 때 간신히 부산 2박으로 엄마의 여행은 끝을 맺었다. 이건 아빠의 여행도 덩달아 불가능하단 뜻이었다. 4년 전 엄마를 떠나보내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아빠가 제일 먼저 꺼낸 말은 ‘건조기를 사야겠다’(무슨 이유에서인지 엄마가 격렬하게 반대해서 집에 세탁 건조기를 들일 수 없었다), 그리고 ‘긴 여행을 가고 싶다’였다.
여행으로 따지면 아빠가 훨씬 전문가였다. 무역회사에 다니신 덕에 아주 젊을 때부터 세상 안 다녀본 곳이 없는 아빠였다. 하지만 엄마를 돌보는, 그러니까 멀리 떠나는 일은 불가능했던 거의 20년 동안 아빠의 여행은 멈췄고, 그동안 세상은 너무나 바뀌었으며, 어느 날부터 ‘예약하려면 무슨 무슨 앱을 다운받으라’는 외계어 같은 주문에 가로막혔다. 그보다 더한 장애물도 있었다. 엄마를 보내고 아빠는 자식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성지를 돌아다니며 엄마를 위한 기도를 바칠 계획을 세웠다. 마침 성당에서 유럽 몇몇 성지를 묶어 신부님과 떠나는 순례 여행 프로그램이 있다고 해 신청했는데, 한마디로 ‘까’였다. 70세 이상은 보호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얘기를 숨겨두었다가 어느 명절에 지나가는 말처럼 툭 던졌고, 그게 내 가슴에 와서 푹 박혔다. 내가… 내가! 아빠를 모시고 가겠어!
물론 호기로운 결심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내가 무슨 여행 전문가도 아니고, 아빠와 단둘이 어디 가본 적도 없고, 솔직히 아빠가 뭘 좋아하는지 불효자스럽게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그나마 자신 있는 곳에 가자’였다. 84세 부친을 모시고 낯선 곳에서 우왕좌왕하느니 그냥 집에 있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그렇게 2023년 5월, 아빠와 2주간의 스페인 여행이 시작됐다. 아니, 그렇게 수월하게 시작된 것은 사실 아니고… 이전에 스페인에 미쳐 스페인을 여러 차례 갔고, 안달루시아만 해도 세 번 정도 갔으므로 일정과 동선을 짜는 건 문제없었는데(마드리드 in-코르도바-세비야-론다-말라가-그라나다-바르셀로나 out), 팔십몇 아빠의 체력이 아무리 좋다 한들 도시 간 이동이 많으면 금세 지칠 것이 뻔했다. 기차보다는 렌터카가 답이지만 과연 혼자 운전을 다 소화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고등학교 동창이자 부모님 최애인 오랜 친구에게 걱정을 털어놓자 “내가 같이 갈까?”라며 미끼를 덥석 물었다. 또 팟캐스트 ‘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의 방학을 맞아 여행을 생각하던(생각만 하고 아무 계획을 세우지 않던) 진행자이자 MBTI가 P인 후배가 “계획 짜는 거 힘든데, 나 선배 여행 따라가면 안 돼?”라며 붙었다. 이렇게 ‘아버지와 내 친구 둘’이라는 특이한 조합의 여행팀이 조직됐다. 한 사람이 운전하면 한 사람은 길을 찾거나 다음 일정을 검색하고 한 사람은 나이 든 아버지를 돌보고, 각각 역할을 분담했다가 셋이 뭉치면 아빠로부터 술값을 뜯는 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굵직굵직하게 세운 계획에 따라 움직였지만 마음에 드는 하몽 가게를 발견하고는 치즈와 크래커와 와인을 잔뜩 사 들고 숙소로 돌아와 저녁 수다를 떤다거나, 그냥 풍경이 좋다는 이유로 주저앉아 커피를 마신다거나, 예정에 없던 미하스에 들른다거나 하는 즉흥성이 끼어드는 완벽한 여행이었다.
아빠는 좋은 여행 파트너였다. 거의 모든 부모님과의 여행에 빠지지 않는 ‘밥 타박’(외국 음식을 못 먹는 부모를 위해 밥솥을 싸갖고 다니는 사람도 있더라)이 없고, 호기심이 많아 어느 곳에 가도 즐거워하며(이해불가 작품이 가득한 컨템퍼러리 뮤지엄도 좋아함), 역사 척척박사라 어딜 가든 그곳에 대한 이야깃거리가 가득했다. 무엇보다 내가 짠 코스를 소화해내는 몸의 강인함과 마음의 유연성이 있었다. 그래서 그다음 해, 첫 여행에서 얻은 자신감으로 두 번째 여행을 계획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오스트리아 빈, 잘츠부르크‐체코 체스키크룸로프, 프라하의 여정으로, 아빠와 엄마가 마지막으로 길게 떠났던 여행 루트이기도 했지만 백번을 가도 좋다는 아버지의 최애 도시 빈을 나도 한번 가보고 싶다는 이기심이 발동했다. 조금은 사악한 이 마음 탓인지 여행 가기 이틀 전 미끄러지면서 주저앉은 나는 발가락 골절로 깁스를 한 채 절뚝거리며 아빠의 짐 아닌 짐이 됐지만, 아빠는 되레 이러셨다. “네 발 덕에 입국 심사대도 빨리 통과하고 좋다.” 그 말에 힘입어 더 이기심을 발휘한 나는 빈에서 가고 싶었던 모든 뮤지엄을 섭렵하며 빈 전문가 아빠에게 새로운 장소를 전파했다.
그리고 올해 5월, 다시 아빠와 포르투갈과 스페인에 다녀왔다. 이번 목적은 어느 때보다 명확했다.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시작해 신트라, 오비두스를 거쳐 바티칸에서 인정한 3대 성모 발현지 중 하나인 파티마에 들렀다가 성지순례 포르투갈 코스의 시작점인 포르투에 가는 것, 그리고 마드리드와 성지를 중심으로 근교 여행(기적의 사라고사 대성당, 대테레사 성녀의 고향 아빌라 등)을 다니는 것, 그러니까 몇 년 전 아빠가 포기했던 ‘성지 여행’의 꿈을 실현시켜드리는 것이었다. ‘뭐 까짓것 남들 다 하는 운전 나도 하면 되지’ 하는 심정으로(고속도로에서 시속 120km으로 달리는 차도 덜덜 떨고 내 손도 덜덜 떨며) 포르투갈 여기저기 들르며 며칠 종단하다 파티마에 도착하고 너른 광장에 들어섰을 때 아빠의 그 표정을 잊지 못한다.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하는 포르투갈어 저녁 미사를 마치고 성모 발현지에서 열리는 촛불 기도회에 참석해 다 같이 광장을 한 바퀴 돌고 숙소로 돌아온 아빠가 말씀하셨다. “평생 이곳에 올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당연히 포기하고 있었는데… 너는 평생 할 효도 다 했다.” 갑자기 눈물이 와락 쏟아질 것 같았다. 음, 됐다. 이거면 된 거지. 엄마를 보내고 아쉬워하고 후회했던 모든 것이 아빠와의 여행으로 상쇄되는 느낌이었다. 감사하죠, 내가….
지난 주말 아빠의 건조기에 이불을 넣고 돌리는데 아빠가 얼른 거실로 오라신다. “지금 <걸어서 세계 속으로>에 토스카나 나온다!” “아빠, 내년에 토스카나 갈까?” “좋지! 저 막시무스의 집 쪽으로 드라이브하면 너무 좋을 것 같네. 아, 가는 김에 루르드 성지도 가면 어떨까?” 이탈리아 이쪽과 프랑스 저쪽을 넘나드는 여행이 일단 아버지 입 밖에 나왔으니 소녀 한번 루트를 짜보겠습니다만… 언뜻 동선이 지나치게 무리인 듯 보입니다. 하지만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안다. 그곳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얼마나 굳건히 삶을 지탱하는지. 그럼 다음 여행까지 아빠는 체력 관리에만 신경 쓰십시오. 저는 또다시 무리한 여행 계획, 들어갑니다.

아빠의 호기심을 채워줄 여행지

스페인
팔십 넘은 아빠가 말씀하셨다. “스페인, 포르투갈은 몇 번을 가도 좋을 것 같아.” 소도시 중심으로 구성된 안달루시아는 하루 한 도시, 반나절 단위로 즐기는 여정에 적합하다.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개봉 시기에 감명 깊게 본 세대라면 안달루시아 안의 론다를 두고두고 추억할 것이다.

포르투갈
리스본, 포르투 같은 핵심 도시를 짧은 이동 거리 안에서 즐길 수 있다. 땅끝 마을 호카곶의 대서양을 마주한 거친 절벽, 탁 트인 수평선, 붉은 등대가 만들어내는 장엄한 풍경을 은근 신기해하실 것이다. 오비두스도 귀엽다. 파에야와 해물밥 덕에 식사도 끄떡없다.

글을 쓴 이현수는 책을 만들고 글을 쓰고 디자인도 한다. 방송작가, 잡지 기자, 출판인, 마케터, 칼럼니스트 등
글 쓰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거의 모든 직업을 섭렵했다. 가장 최근엔 에세이 <마시는 사이> <몸의 말들>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