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줍은 땅, 묘한 설렘들
부탄으로 가는 관문, 히말라야 기슭에 숨은 듯 박힌 작디작은 파로(Paro) 국제공항을 나서면 젊은 여신의 모습을 한 불상이 우리를 맞는다. 관능과 화사함을 감추지 않는다.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곧장 찾아간 키추 라캉(Kyichu Lhakhang)의 앵두꽃과 복사꽃 또한 화사했다. 새파란 하늘과 대비되는 흰색 건물 안은 다양한 색감의 붓다(Buddha), 마니차(Manicha), 램프로 가득하다. 공항에서부터 강렬한 컬러가 따라다닌다. 사람들은 고요해 보이는데, 그 기운은 다르다. 7세기 티베트 황제 송첸 감포(Songtsen Gampo)가 세운 108개 사원 중 하나로 부탄 불교의 출발점이라 할 키추 라캉에서는 나들이 온 주민들이 마당 벤치에 앉아 무심히 해를 쬐거나, 마니차를 돌리고 불상에 절을 하고 버터 램프에 불을 밝히며 저마다 속으로 소망을 외고 있다. 가끔이 아니라 일상이라고 통역사인 세랍이 알려주었다.
공항에서도 보이던 성벽 같은 건물인 파로 종(Paro Dzong)으로 향한다. 원형 탑의 망루는 국립박물관으로 5층 전체가 3000점이 넘는 유물로 빼곡하다. 불교와 관련된 유물이 대다수고 생활 도구도 많은데, 농기구와 대나무 바구니는 우리 것과 너무 흡사하여 아시아 문화권의 동질성이 넓은 지역에 걸쳐 있음을 알게 해준다. 한편 밖을 내다보는 창에 배치된 대포의 총신에서 오랜 세월 외부의 침략에 맞서온 산악 부족국가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정방형 형태의 파로 종은 겉에서 보기와 달리 안이 상당히 넓다. 종(dzong)은 지역마다 있는 요새이자 사원이자 관청으로, 부탄 특유의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역사의 축적이자 현장이다. 5층 높이의 목재 건물이 바깥을 에워싸고 그 안쪽 여기저기에 큰 건물이 들어앉아 있다. 마침 광장에서는 짙은 적색 장삼을 걸친 승려들이 크게 원을 그리며 춤을 춘다. 곧 있을 부탄 최대의 축제인 ‘체추(Tshechu)’에 참가하기 위한 연습이란다.

파로 부티크 호텔에서 부탄에서의 첫 밤을 묵는다. 왕실이 관리한다고 하여 궁금했는데, 객실이 30개 정도 되는 4층짜리 목조건물이다. 부탄의 호텔 규모는 대체로 비슷하다. 스위스 크기의 땅에 인구는 그 10분의 1도 안 되는 약 80만 명인 나라여서, 호텔이나 리조트가 클 이유가 없다. 그래도 영어를 잘하는 직원들이 친절하고 세심하게 우리를 맞아주었다. 이 정도면 특급 호텔이라고, 세랍이 귀띔해주었다. 지내보니 모든 게 정갈했다.
아침 일찍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30분 정도 날아가 겔레푸(Gelephu)에 닿았다. 가는 동안 국왕이 우리 일행을 만날 거라는 사실을 알았고, 엉겁결에 5대 국왕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추크(Jigme Khesar Namgyel Wangchuck)를 맞이한 우리는 GMC(Gelephu Mindfulness City)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왜 부탄이 불교 국가이며 왜 여행은 순례가 될 수밖에 없는지 알게 되었다.
GMC는 부탄 왕실이 주도하는 대규모 도시 개발 및 특별행정구역 프로젝트이자 새로운 형태의 특별구역이다. GMC의 성격을 규정하는 중요한 상징이 108개의 장춥 초르텐(Jangchub Chorten, 깨달음의 탑)이다. 7세기 송첸 감포가 108 사원을 하루에 건립했다는 전설을 토대로, 11km 구간의 트레일에 하루에 108개의 초르텐을 세우는 프로젝트를 국왕이 시작했고, 우리는 국왕과 함께 그 트레일을 두 시간 넘게 걸었으며 점심을 같이 했다. 다음 날에도 국왕은 차담을 나누는 동안 GMC에 대한 절실한 마음을 우리에게 전했다.
“GMC는 싱가포르와 같은 자유무역 구역이지만, 동시에 현대인이 힐링하고 휴식하며 영성을 돌아보는 마인드풀니스 공간이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영성은 변함이 없다. 부탄의 불교를 바탕으로 영성을 나누고, 어느 나라 누구든 와서 자신의 불토를 구현하면 된다. 현실적으로는 부탄 국민을 위한 프로젝트이다. 부탄 자본으로 공항을 짓고 전체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외국 자본이 들어오면 국민들에게 돌아갈 혜택이 없다. 발생하는 이익은 모든 국민에게 골고루 나누어줄 것이다. 큰 비행기가 다니면 한국에서도 직항으로 오리라 기대한다. 젊은이들이 많이 와서 마라톤이나 히말라야를 가로지르는 스노맨 트레킹에도 도전하면 좋겠다.”
다음 날부터 히말라야 산골을 달리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부탄에서는 ‘도시라 쓰고 마을이라 읽으면’ 될 몇몇 곳 말고는 사람 보기가 쉽지 않다. 마을을 벗어나면 이내 첩첩산중을 끼고 도는 자락길로 들어서게 되고, 비포장 외길이 많아 차가 콩콩거리며 달린다. 때론 흙더미가 쓸려 내려 막힌 길이 뚫리기를 수차례 기다렸고 고사리, 버섯, 꿀, 과자, 음료수가 놓인 가판대를 만나기도 했다. 그렇게 3000m급 고개를 네댓 번 넘고서야 마침내 닿은 산꼭대기 마을 납지(Nabji)는 부탄왕국의 시조인 구루 린포체(Guru Rinpoche, 귀중한 스승)가 8세기에 들렀다가 축복을 내렸다는, 작지만 부탄인들에게는 아주 소중한 성지이다.

마을을 최초로 찾아온 외국인이라 하여, 주민들이 곳곳에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우릴 구경한다. 문화유산으로 보호받고 있는 좁디좁은 사원에는 린포체가 남긴 불상 몇 점이 유리 상자에 보존되어 있다. 오래전 지역 주민들 사이의 평화를 이끈 화합의 상징이라고 한다. 따끈한 버터티를 마시며 빛바랜 불상과 고즈넉함이 물씬 밴 불화들을 찬찬히 응시한다. 먼 길을 애써 달려와 할머니 냄새가 은은히 밴 시골집에서 아득한 옛이야기를 듣는 기분이랄까. 그냥 밥 먹고 스르르 눕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오래된 마룻바닥이 따스해 보였다.
골목길을 그저 거닐어본다. 사람 냄새 켜켜이 쌓인 집들이 이어진다. 한 꼬마가 이층 발코니로 얼굴만 빼꼼 내밀고 있다. 내가 보면 살짝 고개를 돌리고 안 보면 나를 쳐다본다. 계곡 건너에는 계단식 논이 층층이 이어져 있고 그 가운데에 집들이 가지런히 담겨 있다. 우리가 묵을 마을인 코르푸(Korphu)이다. 풍경만으로도 풍요롭다. 해 떨어져 어둑해지는 길을 따라 마을에 닿았고, 관문이라 할 납지 라캉(Nabji Lhakhang)으로 들어섰다.
입구를 지키는 커다란 마니차들을 지나 법당으로 들어가니 우뚝 솟은 돌기둥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 안쪽에는 보물급 불상 불화들이 묵직하고도 화려한 기운을 품고 방을 가득 메우고 있다. 붐탕(Bumthang) 지방의 두 왕이 8세기에 구루 린포체 앞에서 더 이상 싸우지 않기로 맹세하며 오른손을 올렸다는 돌기둥의 윗부분이 반질반질하다. 수많은 현생의 싸움꾼들이 손을 댄 흔적일 테다. ‘나는 누구랑 싸우고 있나? 돌기둥에 손을 대야 하나?’ 고민이 스친다.
문화유산 마을인 코르푸를 체험할 수 있는 저녁이 시작되었다. 마당의 장작불 둘레로 자리를 잡고 앉으니 이내 아낙 댓 명이 등장하여 노래를 부른다. 한쪽에선 전통주를 한 잔씩 따라준다. 마을 집집에서 담근 술을 번갈아 내오는데 저마다 맛이 조금씩 다르다. 어느 술이 제일 맛있는지 물었고, 우리는 나름대로 품평을 거쳐 베스트를 골랐다. 상을 받은 아낙이 부어주는 술로 잔들은 넘쳐났고, 드높은 노랫소리는 어느새 춤과 함께 창창히 울려 퍼졌다. 갈수록 몸짓에 흥이 더하고 우리들 뺨은 검붉은 장작불과 함께 자꾸 짙어진다. 마침내 우리는 아낙들 사이사이에 끼여 빙글빙글 덩실덩실 마당을 돌고 있다. 문득 호랑이도 있다던 가이드의 말이 생각났다. 믿지 않았지만, ‘이러다 진짜 호랑이가 어흥 하며 나타나고 내가 제물로 바쳐지는’ 잔혹 동화가 왜 떠오르던지! 멀리 개 짖는 소리만 허공을 쳐대던 히말라야의 한 손톱만 한 골짜기에서 벌어진, 묘하게 설렌 댄스파티였다.


못생긴 붓다도 있을까?
지난밤 뛰었던 가슴을 가라앉히려는지, 아침에 붐탕으로 이동한 우리는 중요한 성지인 쿠르제이 라캉(Kurjey Lhakhang)의 예불로 인도되었다. 세월의 때가 반질반질한 마룻바닥은 그 자체로 기도가 떠오르게 하고, 우리 모두 저절로 거룩한 자세가 되어 벽을 둘러 앉는다. 이내 법당 가운데 두 줄로 자리 잡은 승려들의 독경이 시작되었다. 느리고 장중한 라르고! 낭랑한 울림은 이내 합창이 되었다, 때론 빠르게 때론 부드러운 물결처럼. 순간 귓불이 뜨거워지면서 울컥 한 방울, 눈에 물이 맺힌다. 저 먼 유럽 산골의 이름 모를 작은 성당에서 이름 모를 성가가 메아리치던 때가 겹친다. 아! 기독교식으로 말하자면, 은혜스럽다. 부처의 자비로움이려니…. 순간순간 불자가 된다.
뇌를 깨우는 듯했던 예불이 끝나고 승려들이 조용히 방을 나선다. 뒤따르는 어린 승려들은 수업이 끝났다는 표정이다. 옆 주머니에는 얼핏 콜라병이 보이고, 한 동자승은 어른에게 받은 지폐를 꺼내어 슬쩍 구경한다, 얼마짜리일까 하는 아이의 표정으로! 내 마음이 웃는다. 많이 웃는다. 붓다의 미소를 훔친 기분이다.
모처럼 정갈한 기운을 받고 나서 가까운 잠베이 라캉(Jambay Lhakhang)에도 들렀다. 7세기 당시 마을 전체를 휩쓸던 좋지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왕 송첸 감포가 하루 만에 108개의 사원을 세워 그 거대한 존재를 제압했는데, 각각의 사원은 여신의 신체 부위를 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했고 잠베이 라캉도 그중 하나다. 우리가 방문한 건, 앞서 겔레푸라는 마을에서 국왕이 하루에 108개의 초르텐을 세우기 위해 그 길을 걸었던 트레킹과 뜻을 같이함이다. 역사적으로 이어지는 불력(佛力)에 동참함이다.
오는 길에는 메바르 초(불타는 호수)에도 들렀다. 위대한 성자 페마 링파가 등불을 들고 강물로 뛰어들었지만 몸이 젖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은 채 물 밖으로 나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좁은 천이 세차게 흐르는 가운데 고요한 작은 호수가 있었고 많은 참배객이 오갔다. 하루에 중요한 성지 세 곳을 방문하다 보니 이래저래 붓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가끔 불교 관련 책에서 주워들었던, 뻔한 소리지만 이해가 될 듯도 한 구절이 떠오른다. “비우면 된다”, 나아가 “비운다는 마음조차 없어야 한다.”
국내선 공항이 있는 붐탕에서 이틀을 묵으며 쉬었다. 스위스 남자가 부탄 여자와 결혼해 살면서 조금씩 가꾼 ‘스위스 게스트하우스’는 어딘가 스위스다우면서도 또 부탄다웠다. 따져보면 두 나라는 큰 산들의 자락에 안긴 건 같은데, 물가가 세계 최고로 비싼 나라와 세계 최고로 싼 나라라는 차이가 있다. 하나는 열려 있고 하나는 숨은 듯 있다. 저마다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데, 스위스식 행복은 무엇이고 부탄식 행복은 무엇일까. “삶의 목적이 돈이 아니라 행복이 되어야 하며, 그 바탕은 부모·형제·친구·동료·이웃·나라와 나라 간의 신뢰”라고 한 국왕의 말이 떠올랐다.
8시간 산길이 얼마나 길었는지는 다 생략하고, 마침내 수도인 팀푸(Thimphu)의 불빛 그득한 광경이 다가왔다. 무엇보다 산마루의 금빛 불상이 지그시 내려다보며 히말라야를 넘어온 우리를 반기는 듯했다. 아침이 궁금했고 그래서 얼른 잤고 날이 밝았고, 그 불상으로 들어갔다. 그렇다, 5층 높이의 불상이라 들어갈 수 있다. 이리저리 다니며 12만 불상들을 만났고, 그 다양한 얼굴과 표정과 몸가짐과 분위기에 압도되었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과 닮은 수많은 불상, 나도 그 하나이려니 싶었다. 밖으로 나와서는 고개를 한참이나 뒤로 꺾어 높이 52m 되는 ‘붓다 도르덴마(Buddha Dordenma)’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오래 둘러보았다. 문득 하나가 떠올랐다. ‘왜 잘생겼지, 못생긴 붓다도 있었던가….’ 되짚어보면 내가 본 모든 붓다는 저마다 다 잘생겼다. ‘잘생긴 사람이 붓다가 되는 건지, 붓다가 되면 잘생겨지는 건지!’



진하디진한 사람들
팀푸에서 한 시간쯤 달려 다시 파로에 왔다. 곧장 축제마당으로 향했고 무대는 이미 절정으로 가고 있었다. 화려하고 진하기 짝이 없는 색깔의 의상에 다양한 모양의 탈을 쓴 놀이꾼들이 마당을 빙빙 돌면서 일렁이듯 춤추고 뛴다. 광장은 전통복인 고(Gho)와 키라(Kira)로 한껏 치장한 남녀노소로 가득하다. 손오공을 떠올리게 하는 광대 셋이 아기 인형과 이불보와 남근을 소품 삼아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관중들은 크게 웃다가 뭐라고 말을 던지기도 하면서 장단을 맞춘다. 꽤나 걸쭉한 만담이 한 시간 남짓 이어진다. 말을 알아듣지는 못하나 한국 탈춤이나 마당놀이와 별로 다르지 않은 분위기에 함께 젖어든다. 닷새 동안 이어지는 체추 축제의 한 풍경이었다.
해 질 녘이 되어서야 사람들은 흩어졌고, 나중에 보니 축제에 맞추어 열리는 노천 시장이 그들의 놀이터였다. 간이 수영장 미니 보트에 탄 아이들의 웃음소리, 빙빙 돌아가는 목마를 탄 아이들의 비명 소리까지, 파로의 밤은 모처럼 시끌벅적했다. 그 한 모퉁이에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가 들려왔다. 아이들이 재잘대며 놀고 있다. 아, <오징어 게임>이 여기까지….
축제의 장면과 장터 사람들이 뒤섞인 꿈을 한 자락 짧게 꾸고 나니 아침이다. 마침내 피날레를 장식할 탁상 라캉(Taktsang Lhakhang)으로 향하는 산행의 채비를 단단히 하고 버스에 올랐다. 다행인 건 그나마 2500m 정도까지는 차가 닿았다. 나머지 600m쯤이야 하면서 오르막을 올랐으나, 그것이 곧 고행길임을 이내 알아챘다. 왜 3150m 산꼭대기 한쪽 900m나 되는 깎아지른 벼랑 위에 절을 올려놓았는지는, 호랑이를 타고 날아와 둥지를 틀고 수행했다는 구루 린포체의 이야기를 듣긴 했어도, 내 마음이 쉬이 따르지는 못한다. 숨차고 벅찼다.
겉보기보다 훨씬 넓은 실내에는 대웅전을 비롯한 여러 방이 미로를 따라 여기저기 박혀 있다. 어쩌면 그다지도 험한 고행과 깨달음의 이야기가 방마다 숨어 있는지, 놀라기도 벅차 그저 옆 사람을 따라 절하는 시늉만 했다. 108배까지는 아니지만 많이 했다. 전설인지 실화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왜 그런 이야기에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쯤은 눈치채기 시작했다.
다들 올라가니까, 심지어 아기들도 가이드의 목에 올라앉아 가니까, 나도 간다는 심정으로 꾸역꾸역 발뒤꿈치에 힘을 주고 올랐다. 스스로가 대견했다. 꾸역꾸역 살아내면 마침내 살아지는 삶처럼 그렇게 오르고 내려오니 다섯 시간이 훌쩍 지나 있다. 후련하다. 여러 나라에서 온 여행객들도 ‘해냈다’는 표정이다. 불자가 아니어도 ‘불심’이란 걸 알아차리게 되었음에 벅차하는 표정들이다. 이로써 부탄 여행도 마무리되었다. 길었는데 후딱 지나갔다. 삶도 그런가 싶다.
삶이라는 장터로 다시 돌아왔다. 눈을 감으니 많은 컷이 스친다. 긴 염주를 손으로 굴리며 비행기를 기다리던 사람들, 산골 외딴길에서 과자와 음료수를 팔고선 큐알 코드 결제를 해주던 투박한 손의 촌부, 국왕이 지나는 길에 21일 된 아기를 보여주며 축복을 받고선 눈물을 글썽이던 산골 부부, 화사한 봄 차림으로 사원을 찾아 마니차를 돌리다 예쁘게 포즈를 취해준 꼬마 아가씨, 마니차 앞에 느긋하게 자리를 잡고 불경을 읽던 아저씨, 장터에서 저들끼리 손을 잡고 이 가게 저 가게를 기웃거리던 동자승들, 한국에서 왔다니까 얼마나 있었니, 무슨 비행기 타고 왔니, 언제 가니 영어로 묻던 10대 학생들, 혼자 여행하는 서양 아가씨를 가이드하며 유창한 영어로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던 눈이 반짝반짝했던 젊은 남자, 카페에서 블랙핑크의 노래를 부르던 여자 가수…. 어쩐지 그들을 다시 만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 눈빛은 한결같이 수줍었고 따듯했고 맑았다. 한낱 욕망 덩어리일 뿐인 나에게 어째서 그런 눈빛들을 보냈을까… 왜?
부탄 여행 준비
• 1일 여행 비용으로 100달러는 준비하는 것이 좋다.
• 국내 출발 패키지 팀에 낄 수도 있지만, 영어가 가능하면 방콕, 싱가포르, 두바이의 여행사를 통해 개인 여행을 신청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 여행 루트는 가이드와 의논해서 결정한다. 주로 파로, 팀푸, 붐탕 등지를 차로 다니며 겔레푸, 붐탕에는 국내선 공항이 있어 이용 가능하다.
• 부탄 내에는 장거리 노선의 버스가 없다. 항상 가이드와 함께 차로 이동해야 한다.
• 식사는 쌀밥과 카레가 기본이다. 채소에 소, 돼지, 닭고기 중 선택해 넣을 수 있다. 호텔 식당은 여행객에 맞추어 매운 요리가 적지만, 로컬 식당에서는 매운 고추와 버터기름을 주로 사용하니 적응이 필요하다.
• 산지가 많아 밤에 추울 수 있으니, 방한복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 2029년 12월 겔레푸 공항이 개장하면 비자 프리가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