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한 바퀴, 레인 한 바퀴 - 헤이트래블 - hey!Travel


  • written by WOO JIKYUNG
  • ILLUSTRATION BY JOE SUNGHEUM

지구 한 바퀴, 레인 한 바퀴

A Lap Around the World

세상은 넓고, 수영장은 많다. 글만 쓰지 않고 몸을 쓰려다 수영에 푹 빠진 여행 작가의 수영장을 찾아가는 모험.
  • written by WOO JIKYUNG
  • ILLUSTRATION BY JOE SUNGHEUM
2026년 05월 07일

시도를 좋아한다. “올해는 글만 쓰지 않고 몸을 쓸 거야”라는 새해 다짐 덕에 난생처음 클라이밍을 배우게 되었고, 클라이밍에 도움이 되는 운동을 찾다 보니 수영장 물에 몸을 담그게 되었다. 시도를 좋아할 뿐 끈기가 있는 편은 아닌데 어차피 할 샤워, 수영장에서 하자는 마음으로 갔더니 주 5일 수영을 하게 되었다. 매일 탈의실 로커에 옷가지와 스마트폰을 넣고 문을 닫을 때마다 비행기에 탑승한 듯 홀가분했다. 수영을 하는 동안 스마트폰은 비행기 모드이므로. 물속으로 첨벙 뛰어든 순간 온갖 알림에서 해방된 채 ‘몸’을 쓰는 수영인으로 모드를 전환할 수 있었다. 그저 오른팔로 물을 밀 때와 왼팔로 물을 밀 때의 차이, 발로 물을 차는 감각을 느끼며 한 팔 한 팔 앞으로 나아가는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매일 수영을 하다 보니 여행이나 출장지에서도 수영이 하고 싶어졌다. 때마침 부산에서 여행 강연을 하게 되었고, 이때다 싶어 롯데호텔을 예약했다. 다른 투숙객들이 조식을 즐길 시간에 채광 좋은 호텔 수영장에서 유유히 자유형과 배영을 연습했다. 비록 공복이긴 했지만, 아침 햇살에 비친 수영장 바닥을 바라보는 시간이 얼마나 행복하던지! 이왕이면 자주 행복하고 싶어서 출장 갈 일만 생기면 수영장이 있는 호텔을 예약했다.
늘 완벽한 수영 여행을 꿈꾸며 떠났지만, 뜻밖의 장면이 펼쳐지기도 했다. 초여름 대구 여행을 떠났을 때다. 수성호텔에 체크인하자마자 수영복을 갈아입고 수성못이 내려다보이는 루프톱 수영장으로 돌진하다 멈칫했다. 아뿔싸. 풀 메이크업을 하고 화려한 비키니를 입은 여행자들 사이에서 나이키 원피스 수영복에 아레나 수모를 쓴 나는 드레스 코드를 잘못 알고 온 불청객 같았다. 어서 수영장에 뛰어들어 몸, 아니 수영복을 숨기는 수밖에. 지금은 일명 호텔 수영이라 불리는 헤드업 평영에 능숙하지만, 그때만 해도 물속에 얼굴을 담근 채 자유형과 평영을 하려니 수경을 벗을 수도 없어 울적했다.
대구 여행 이후 지방으로 여행이나 출장을 갈 일이 생기면 지역 내 수영장을 찾아보게 되었다. 여행지에서도 매일 수영하는 일상의 루틴을 유지하려면 호텔보다 일반 수영장에서 자유수영을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전주로 워케이션을 떠날 땐, 완산수영장에 전화를 걸어 자유수영 시간부터 확인했다. 그러자 “자유수영은 자유롭게 와서 하면 되는 건데 시간을 뭘 물어요”라는 통 큰 답이 돌아왔다.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서울은 수영장마다 자유수영 시간이 정해져 있는데 지방의 경우 원하는 시간에 입장해서 최대 3시간까지 자유수영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그것도 단돈 3000원이라니. 로또에 당첨된 기분이 이럴까. 들뜬 마음으로 완산수영장에 들어섰는데 수영을 하기도 전에 심박수가 빨라졌다. 완산수영장의 길이는 50m. 인생은 짧고 25m 수영장은 길다고 느끼는 내가 중간에 서지 않고 레인 끝까지 수영할 수 있을까? 심호흡을 하고 중급 레인에서 물속 출발을 했다. 시작은 자유형. 25m 풀에서처럼 벽에 다다르면 턴을 할 필요가 없으니 미끄러지듯 앞으로 쭉 나아가는 기분이 어색하면서도 설레었다. 숨을 고르고 다시 한번 자유형 50m를 하니 금방 100m가 되었다. 그다음은 평영으로 50m를 갔다가 배영으로 출발점까지 돌아왔다. 평소 25m 풀의 천장을 보고 배영을 할 때와 달리 스트로크(팔로 물을 젓는 동작)를 해도 해도 천장의 끝을 알 수 없어 얼마나 남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별 무리 없이 50m를 완주했다. 막상 해보니 50m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다. 해보기까지 마음의 거리가 멀었을 뿐. 내 인생 첫 50m 수영장에서 헤엄치고 나와 서학 예술인 마을 도서관 창가에 앉아 노트북을 켜다가 문득 벼룩 이야기가 떠올랐다. 벼룩은 가만히 두면 키의 20배까지 뛸 수 있는 ‘능력충’인데, 낮은 상자에 가두면 처음엔 천장에 부딪히다가 이내 박스 높이에 순응해버린다. 심지어 벼룩을 박스에서 꺼내주어도 딱 박스 높이만큼 뛴다고. 나 역시 내 수영의 한계를 25m라고 생각해버렸던 게 아닐까. 이제라도 50m 풀에서 수영을 시도해본 게 다행이었다. 유럽의 서쪽 끝에서 망망대해를 넘어 신대륙을 발견한 포르투갈 탐험가의 심정을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매일 아침 동네 해협을 횡단하던 나에게는 50m 풀이 신대륙이었으므로.
그러자 몇 해 전 런던을 여행하며 갈까 말까 고민하다 가지 못한 런던 올림픽 수영장, 런던 아쿼틱스 센터가 떠올랐다. 그곳의 50m 레인은 깊이가 3m라는 말에 지레 겁을 먹었는데, 이제는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어떻게 런던까지 원정 수영을 떠나느냐였다. 호시탐탐 런던에 다시 갈 기회를 노리던 중 가이드북 <리얼 포르투갈> 개정판 취재를 위한 출장을 떠나게 됐다. 때는 이때다 싶어 포르투갈 출장 후 런던에 사는 동생네에 들러 로망을 실현해보기로 했다. 그 전에 먼저 가볼 곳은 포르투의 야외 수영장 피시나 다스 마레스였다. 이곳은 1966년 건축가 알바루 시자가 자신의 고향 바닷가에 만든 야외 수영장. 대서양 바닷물을 그대로 이용해 바다를 바라보며 수영할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야외 수영장이다 보니 6~9월에만 개장하는데, 이번엔 꼭 가보리라 하는 마음으로 9월에 피시나 다스 마레스를 찾았다. 9월 말 피시나 다스 마레스를 채운 해수는 차가웠지만 인적이 드문 수영장에서 배영을 하며 바라보는 하늘은 맑디맑았다. 포르투갈 여행에 수친(수영장에서 만난 수영 친구) 계화가 합류한 덕에 우리는 서로 대서양 바다를 배경으로 IM(Indivisual Medley, 접영·배영·평영·자유형 순으로 수영하는 개인 혼영)을 하는 모습을 영상에 담기도 했다.
그토록 궁금했던 런던 아쿼틱스 센터에는 런던 여행의 마지막 날 혼자 다녀왔다. 금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고래 뱃속 같은 수영장 안은 한산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3m 풀에 입수하려고 보니 좌측통행 레인과 우측통행 레인이 있는 게 아닌가. 일단 익숙한 우측통행 레인으로 풍덩 뛰어들어 자유형으로 출발했다. 3m 깊이 풀이라 그런지 더 잘 나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발이 닿지 않는다는 걱정은 잊고 어깨 롤링에 신경 쓰며 자유형을 했더니 어느새 50m 레인 끝에 도착했다. 양쪽 끝에는 발을 디딜 수 있는 틈이 있어 잠시 매달려 쉴 수 있었다. 그럼 이번엔 배영 도전! 배영과 자유형을 번갈아 하다 보니 끝 레인에서 아이들의 함성이 들려왔다. 무슨 일이 있나 했더니 아이들이 우렁차게 수영 강습을 받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깊이 3m 풀에서 수영하는 아이는 바다도 호수도 두렵지 않겠지. 나 역시 50m를 왕복하다 보니 3m라는 깊이가 전혀 무섭게 느껴지지 않았다. 역시 두려움은 막연함에서 비롯되는 것. 뭐든 직접 해보면 뛰어넘을 확률이 더 크다. 그날 저녁 동생 집에 돌아와 3m 풀장의 한계를 뛰어넘은 나를 칭찬하며 피시앤칩스에 맥주로 축배를 들었다.
이후로도 50m 풀장 탐험은 계속되고 있다. 창원에서 여행 강연을 할 땐 전날 밤 창원실내수영장 50m 풀에서, 강릉 여행 중엔 아레나 수영장 50m 풀에서 자유수영을 즐겼다. 강릉 아레나 수영장에서 모닝 수영을 하고 수영장 맞은편 보헤미안 커피 경포점에 앉아 토스트와 해시 브라운, 삶은 달걀 그리고 진한 커피 한 잔으로 아침을 먹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수영을 하고 난 후 여행지의 아침은 참 상쾌하구나. 오래오래 이 상쾌함을 느끼기 위해 수영복 챙겨 여행을 떠나야지. 세상은 넓고 아직 헤엄쳐보지 않은 수영장은 많으니까.

여행하며 들르기 좋은 국내외 수영장

롯데호텔 부산 수영장
돔형 유리 천장이 있어 자연광이 은은하게 스며드는 채광 좋은 수영장이다. 레인이 25m보다 짧지만 어떤 영법이든 연습하기 부족함이 없다. 쾌적한 라커 룸과 부대시설은 덤이다. 6월 30일까지 내부 공사를 한다니 업그레이드될 시설이 기대된다.

전주완산수영장·덕진수영장
전주 완산구에 있는 실내 수영장으로, 50m 풀 10레인과 다이빙 풀을 갖추고 있다. 회원이 아니어도 단돈 3000원만 내면 자유수영을 3시간까지 즐길 수 있다. 완산수영장과 더불어 기와지붕이 예쁜 덕진수영장에서 자유수영도 경험해보시길. 역시 3000원으로 50m 풀 자유수영을 즐길수 있다.

강릉 아레나 수영장
2018 동계올림픽 빙상경기장의 유산을 재탄생시킨 공간으로, 50m 길이의 경영 풀과 8개 레인으로 구성돼 있다. 자유수영 시간에는 중앙 레인을 중심으로 50m 장거리 수영이 가능하며, 가장자리 레인은 분할 운영해 초급의 경우 25m 레인에서도 수영을 할 수 있다.

포르투 피시나 다스 마레스
1966년 레사 다 팔메이라 해변에 개장한 피시나 다스 마레스는 건축가 알바루 시자가 설계했다. 해수를 활용한 수영장으로 바다를 바라보며 안전하게 수영을 즐길 수 있다. 메인 수영장은 왼쪽으로 갈수록 깊어지는 구조이며, 옆에 유아용 수영장과 카페테리아도 있다.

런던 아쿼틱스 센터
박태환 선수가 은메달을 딴 수영장이자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아름다운 수영장으로 유명하다. 깊이가 3m라 올림픽 선수가 된 기분으로 자유수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매력 포인트. 우측통행과 좌측통행 레인이 나란히 있어 모두가 한 방향으로 수영하는 점도 흥비롭다. 그 덕에 서로 물을 튀기지 않고 경기하듯 수영을 할 수 있다.


글을 쓴 우지경은 여행이 좋아서 여행책을 쓰다가 작가가 되었다. 글만 쓰지 않고 몸을 쓰려다 수영에 푹 빠졌고, 오래오래 작가로 살고 싶어서 매일 수영하고 글을 쓴다. 수영 에세이 <앞으로 안 나아가는 기분>, 여행 에세이 <쓰기 위해 또 떠납니다> <떠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