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or
강동완
Q 디벨로펀을 통해 창원 의창구 중동을 근거지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벌였다. 주로 어떤 것들이었나? 로컬 크리에이터를 육성하는 것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열정이 있는 참가자를 모아 다수의 브랜딩 성과를 이룬 대표, 백화점 바이어 등 분야별 전문가가 컨설팅을 해준다. 1박 2일간 진행하는 해커톤을 통해 피칭 발표를 하고 그중 경쟁력 있는 팀을 선별해 일본 연수나 컨설팅 등 창업 지원을 하는 식이다. 또 주목받고 있는 길거리 축제인 세모로 페스타를 기획·운영하면서 세모로드에 젊은 창업가가 많이 들어오는데 힘쓰고 있다. 곧 인근에 복합 문화단지가 들어설 예정인데, 이곳을 채울 로컬 브랜드를 찾는 것도 우리의 일이다. 중동에만 국한하지 않고 마산이나 진해 등의 유휴 공간에서도 이벤트를 기획하고 진행한다.
Q 보통 로컬 크리에이터 회사들이 여행객을 위해 기획하는 것과는 형태가 조금 다르다. 로컬이 머무는 자리에 여행객이 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처음부터 여행사보다는 로컬 크리에이터를 양성하는 기획사가 되고자 했다. 이름처럼 디벨로퍼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디벨로퍼라 하면 땅을 사서 건물을 짓고 분양하고 팔면 끝나는 시행사를 떠올린다. 하지만 해외의 디벨로퍼들은 지역의 가치를 활용해 그 지역을 ‘더 머물고 싶은 동네’로 변화시킨다. 창원은 특례시로 변한 뒤 14년 만인 지난해, 인구 100만 이하의 위기를 겪었다. 이곳을 떠나는 시민이 점점 늘어간다는 것이다. 그들을 잡아둘 수 있는 공간을 만들면 여행객도 늘어난다고 생각한다.
Q 실제로 창원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나? 두 번의 ‘세모로 페스타’를 기획했다. 첫 회에 5천여 명이 참가했는데, 대부분 창원 시민이었다. 두 번째 세모로 페스타 때는 참가자의 절반 정도가 여행객으로 추산됐다.
Q 여행지로서 창원은 어떤 매력을 가진 곳인가? 특례시로 통합한 후 다양한 성격을 가진 여행지가 됐다. 역사가 깊은 마산에선 원도심의 고즈넉함을 바다를 끼고 즐길 수 있다. 어시장은 위치나 규모 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코스인 데다가 아귀찜, 미더덕 등 바다 먹거리도 풍부하다. 최근엔 화이트래빗이나 마사나이 같은 로컬성 짙은 브랜드도 생겨나고 있다. 창원은 계획도시답게 깨끗하고 정갈하다. 중심에 위치해 숙박하기 좋은 호텔도 많다. 전국에서 강남구 다음으로 카페와 베이커리가 많은 곳도 창원이다. 개성 있는 카페와 베이커리를 찾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여행이 될 것. 진해는 또 다른 매력을 가졌다. 군사도시이면서 옛 식민지 시대의 건물이나 흔적이 많이 남아있어 근대사를 구경할 수 있는 새로운 여행지로 주목받는 중이다.
Project
디벨로펀
창원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움직임을 들여다보면, 디벨로펀이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것이 많다. 대표적으로 창원에서 가장 재미있는 축제로 손꼽히는 세모로 페스타가 디벨로펀의 기획에서 탄생했다. 기존에 진행하던 지역 골목 투어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지역의 아티스트를 발굴하는 경연이나 인근 맛집을 모아 플리마켓을 열기도 한다. 지난가을 진행한 ‘테이스티 로드’에선 줄 서서 먹는 맛집 10곳의 푸드 트럭을 모아 판매했다. 9천900원에 10곳의 음식을 모두 맛볼 수 있는 티켓은 사전에 모두 판매될 정도로 호황이었다. 이날 하루 동안 6천여 명의 시민과 여행객이 다녀갔다고.
이처럼 디벨로펀은 ‘로컬 아티스트를 위한 페스티벌’이라는 큰 주제하에 매년 다양한 콘셉트로 이벤트를 기획 중이다. ‘다시 한번 더 놀러 오고 싶은 곳’을 만드는 것이 목표. 디벨로펀의 손길이 간 곳의 재방문율이 55%에 달하는 것도 이를 방증한다. 이 외에 다양한 지역 브랜드와의 협업도 이어가는데, 직접 보고 싶다면 중동에 자리한 본거지 겸 카페 오우가를 찾으면 된다. 이곳에선 그동안 디벨로펀이 전개했던 재미있는 굿즈를 확인할 수 있다. 창원 지역 기업인 몽고식품과 협업한 간장 병에 든 콜드 브루, NC다이노스와 협업해 만든 디저트, 춘천의 로컬 맥주 양조장인 감자아일랜드와 함께 출시한 맥주 등이 그것이다. 삼각김밥 모양의 피낭시에나 메주 모양의 스콘 역시 하나라도 평범하고 싶지 않은 디벨로펀의 성격을 잘 담고 있다.
Street
세모로드
2 윤가한약방 창원시 의창구 의안로17번길 9-2 1층
3 푸투베이커리 창원시 의창구 의안로27번길
4 에드썸 창원시 의창구 의안로16
5 박말순 창원시 의창구 읍성로34번길 17-8
세모로드는 원조 ‘노잼 도시’로 불리던 창원을 ‘유잼 도시’로 변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곳. 이 일대는 신도시 개발이 이뤄지며 원도심의 기능을 상실하고 쇠퇴했지만, 청년 사업가들이 도시재생 프로젝트로 하나둘씩 모여들면서 지금의 길을 만들었다. 세모로드는 ‘소리단길’이라는 이름으로도 잘 알려져 있지만, 어느 도시에나 하나쯤 있는 ‘~리단길’로 불리기 싫은 이곳 상인들이 고심해 붙인 이름이다.
길 곳곳에 세련된 감성의 카페와 레트로한 매력의 식당, 베이커리 등이 포진돼 있다. 할머니 이름에서 따온 ‘박말순’은 이곳으로 시집와 평생을 살았던 박말순 할머니의 한옥을 리모델링한 이탤리언 레스토랑이다. 남도의 전통 식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면서 이국적인 맛을 만들어낸다. 사계절과 자연을 조화롭게 살린 인테리어가 편안함을 전하는 유기농 카페 ‘오우가’도 놓치기 아깝다. 하루 50그릇의 한정식을 판매하는 ‘윤가한약방’이나 정성 가득한 반찬 가게 ‘호랑이보부상’은 세모로드의 트렌드를 이끄는 곳이다. 이 가게들이 있는 골목은 레트로한 매력이 넘치는데, 밤에는 은은한 조명이 들어와 고즈넉하고 운치 있는 분위기를 더한다. 소시지부터 커피 로스팅까지 대부분의 원재료를 직접 만드는 베이커리 카페 ‘푸투베이커리’도 지나쳐서는 안 되는 곳. 세모로드에선 주기적으로 맥주 파티나 플리마켓, 콘서트, 투어, 전시회 등 다양한 이벤트도 열려 지역민과 여행객을 부른다.
Community
화이트래빗
원도심의 느긋한 바이브를 만끽하고 싶은 여행자에게 마산합포구의 화이트래빗은 적절한 목적지가 되어준다. 무역을 전공한 뒤 10여 년간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했던 김병철 대표가 고향 마산에 내려와 차린 술집이자 책방, 커뮤니티 공간이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까지 살던 마산의 집 터를 개조해 이 공간을 만들었다. 2021년 오픈한 화이트래빗은 김병철 대표의 추억 속 집이자 젊은 창작자들의 참새 방앗간, 여행객의 필수 코스가 됐다. 작지만 잘 큐레이션된 책과 수준 높은 칵테일 메뉴가 짧게만 머무르기 아쉬운 안락함을 선사한다. ‘추산공원’ ‘합포 웨이브’ ‘오동동 사워’ ‘밤 리큐르’ ‘모텔 라벤다’ 등 마산을 표현한 창작 칵테일 5종을 판매한다. 책장에는 시집, 인문학, 글쓰기, 퀴어 분야의 책이 대다수다. 단골손님들이 읽고 싶은 책을 직접 가져오거나 요청하는 식이다. 이곳은 커뮤니티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한다. 각자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감상회부터 한 해를 시작하며 부적을 그리는 이벤트, 미국의 금주법이 끝난 리필 데이를 기념하는 포트락 파티 등을 연다. 손님으로 왔다가 토크쇼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는데 재즈, 클래식, 대중과학 등 장르의 구분도 없다. 그야말로 재미있는 상상이 이뤄지는 곳.
Platform
장옥아트플레이스
화려한 벚꽃 축제로 잘 알려진 진해. 하지만 진해를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곳곳에서 근대 역사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일제강점기 서민주택이 모인 장옥거리도 그중 한 곳이다. 거리엔 1910~12년에 지어진 2층짜리 일본식 건물 여섯 채가 길게 이어져 있다. 당시 1층은 상가, 2층은 살림집으로 쓰였는데, 100년이 지난 지금은 도장집, 인쇄집, 카페 등 상점이 들어서 있다. 장옥아트플레이스는 장옥거리의 가운데 자리한 전시장 겸 아트 스페이스다. 지키는 이는 진해 마을을 그림으로 그리는 화가이자 로컬 문화 기획자인 정지윤 시티앤로컬 이사장. 진해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문화예술 이벤트는 장옥아트플레이스와 정지윤 이사장을 거친다고 봐도 무방하다. 장옥거리 초입의 70년 된 도장집 ‘황해당’의 레트로한 간판도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장옥아트플레이스는 진해 원도심에 남아 있는 근대의 흔적과 현대의 모습이 공존하는 공간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그리는 프로젝트 ‘진해 그리다’의 작업실이기도 하다. 이곳에선 감각적인 그림을 감상하거나 굿즈를 살 수 있고 주기적으로 지역 예술가들과의 협업이 이뤄지기도 한다.
Art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창원에서 예술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장소인 문신미술관은 마산 사람이라면 어릴 때부터 소풍이나 견학으로 오던 익숙한 곳. 반면 여행객에겐 “이 유명한 작가의 미술관이 왜 이런 곳에?”라고 의아해할 만큼 생경한 곳이기도 하다. 분명한 건 예술을 사랑하는 이라면 이곳을 오기 위해 창원 여행을 계획할 만큼 의미 깊은 장소라는 것. ‘인생 대부분을 이방인으로 살았던’, ‘잠재적 유랑자’ 같은 수식어가 붙는 예술가 문신이 유일하게 적을 두었던 곳이 바로 아버지의 고향인 마산이다. 그는 일본과 프랑스 유학 끝에 1981년, 바다가 굽어보이는 추산동 언덕에 터를 잡고 직접 미술관을 위한 첫 삽을 떴다. 1천여 점에 이르는 작품을 집대성해 1994년 드디어 문신미술관을 건립했지만, 이듬해 지병으로 타계했다.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과 창원시의 공동 주최로 조각가 문신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 «문신(文信): 우주를 향하여»가 개최된 후 문신을 아는 사람이 더 많아졌습니다. 이전엔 없던 기획 전시 문의가 증가했고, 미술관을 찾는 여행객도 늘어났죠.” 20여 년간 문신미술관에 몸담은 박효진 학예사의 말이다. 문신미술관은 수년 동안 젊은 창작자들과 지역 예술 활동도 활발하게 펼쳤다. 지난가을엔 창원조각비엔날레가 열리는 네 곳의 전시관 중 하나로서, 지역의 헤리티지가 보이는 작품을 전시했다. 최근엔 지역 대학교 의류학과 학생들이 문신의 예술을 창의적으로 해석한 작품을 디지털 패션쇼로 선보였고, 현재까지 작품을 전시 중이다. 박효진 학예사는 이어 말했다. “지난해는 개관 30주년이었고, 올해는 작가 타계 30주년입니다. 이를 기념해 문신에게 영감을 얻은 지역 작가들의 작품을 모으고 있어요. 누구나 참여할 수 있게끔 예술의 문턱을 낮춰 문신 작가가 생전에 이루고자 했던 대중적 예술에 힘쓸 예정이에요.”
Brand
마사나이
창원, 그중에서도 마산이 감도 깊게 드러난 브랜드를 찾는다면 315의거탑과 몽고정, 문신미술관, 신신예식장 같은 상징적인 장소들에 둘러싸인 ‘마사나이’의 오프라인 매장으로 가자. 마사나이는 마산이 가진 무형의 가치를 기반으로 하는 브랜드다. “동갑내기 친구 세 명이 시작했습니다. 저희는 어릴 적 같은 추억을 공유했지만 성인이 되면서 전 세계로 흩어졌죠. 타지에서도 늘 고향을 그리워했어요. 우연히 다시 모여 과거 스트리트 문화와 각종 서브컬처의 중심지였던 마산을 우리만의 기억으로 재해석하기로 했죠.” 박승규 대표를 포함한 세 친구는 3·15의거부터 프로야구팀 NC다이노스까지 마산의 역사를 연구했고 SNS에 옛날 사진이나 뉴스, 이야기를 업로드하며 사람들의 공감을 샀다. 이후 티셔츠, 모자, 컵 등을 판매하기 시작했고 2022년 성수동에 팝업 스토어를 열며 본격적인 로컬 브랜드로 성장했다. 마사나이의 강점은 마산을 이용한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확실하다는 것과 한 번 보면 눈을 떼기 힘든 재치 있는 디자인이다. ‘끄지라’가 적힌 소화기, 손가락을 은근히 들어올린 것 같은 한자 ‘마산(馬山)’이 적힌 모자, 아귀찜을 열정적으로 요리하는 아주머니가 그려진 티셔츠 등이 그것이다. 그중에서도 괭이갈매기를 타고 깃발을 흔드는 여공은 마산의 부흥기, 시조, 정신을 한데 모은 마사나이의 시그너처 프린팅. 이 프린팅이 들어간 마사나이의 굿즈는 여행을 기념하거나 마산을 기억하고 싶은 손님들에게 추천하는 아이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