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or
김이린

경북 문경의 브랜딩 회사 ‘리플레이스’로 시작해 전남의 콘텐츠를 한 곳에 모으는 프로젝트 회사 ‘광지주’까지 확장했다. ‘공간 재생’이라는 키워드로 묶은 것인가? 맞다. 리플레이스는 문경에서 오래된 공간을 되살리는 일을 해왔다. 2022년 문화체육관광부 공모전에 ‘전남의 콘텐츠를 광주에 모아 보여주는 공간’이라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이를 계기로 광주에 새로운 법인을 세우면서 이 도시와 인연이 시작됐다. 덕분에 살면서 처음으로 광주에 발을 디뎠다. 처음엔 낯설고 생소했지만, 도시를 이해하기 위해 무작정 발길 닿는 대로 다녔다. 외부인의 시선에서 광주는 어땠는지 궁금하다. 동명동으로 거점을 정한 이유는 무엇이었나? 처음엔 조심스러웠다. 말투나 분위기가 다르니 “어디서 오셨어요?” 같은 질문을 자주 들었다. 동네마다 분위기가 무척 다른 것도 신기했다. 동명동은 그중에서도 유난히 특이했다. 오래된 건물과 트렌디한 카페, 레스토랑이 혼재해 있다. 지금 이곳, 광지주의 거점인 ‘아우르’도 원래 100년 가까이 된 한옥이었다. 예전엔 동네 사람들이 자주 모이던, 말하자면 사랑방 같은 장소였다고 한다. 광지주가 광주의 로컬 콘텐츠를 모으는 곳이 되길 바랐는데, 장소와 의미가 딱 맞아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지리적 접근성이 좋고 동네 특유의 여유로운 분위기도 좋았다. 아우르에서 열리는 다양한 프로젝트 중에서도 ‘이머시브 다이닝’이 큰 주목을 끌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전남의 식재료를 새롭게 소개하는 방법에 집중했다. 단순한 맛의 경험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로컬을 체험하는 도구가 음식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공간과 음악, 퍼포먼스를 통해 확장되길 바랐다. 그래서 로컬 창작자들과 함께한 코스로 이어지는 몰입형 다이닝을 기획했다. 예컨대, ‘여름’이라는 주제로 바다 음식을 제공할 때 전남에서 활동 중인 국악팀이 여름과 관련된 연주를 하고, 로컬 영상 회사가 직접 촬영하고 제작한 바다 풍경이 미디어아트로 벽에 펼쳐지는 식이다. 광지주가 추구하는, 로컬 콘텐츠를 오감으로 풀어낸 대표 프로젝트다. 기획자로 자리 잡은 지금, 광주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인가? 두말할 것 없이 예술이다. 광주엔 1995년부터 아시아 최초의 현대미술 국제 비엔날레인 ‘광주비엔날레’가 열린다. 국내 최대 규모의 문화 예술 콤플렉스인 국립아시아문화전당도 있다. 광주를 두고 ‘한국의 예향’이라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주목할 점은 전통 산업과 예술이 자주 조우한다는 점이다. 양조장이 전시장이 되기도 하고, 술 투어가 미술 투어로 이어지기도 한다. 올여름, 광주를 찾는 여행자에게 추천할 만한 곳은? 전일빌딩245나 예술공간 집, 대인예술시장처럼 작지만 밀도 높은 곳들이다. 7월에 열리는 ‘스트릿컬처 페스타’도 꼭 와보길 바란다. 전 세계 스트리트 댄서가 모여 춤과 음악으로 물드는, 말 그대로 도시가 온통 무대가 되는 멋진 축제다.
Project
광지주

‘빛고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광지주는 소멸 위기에 처한 전남의 로컬 자원을 광주로 모으고, 미식과 예술, 디자인을 결합해 새로운 방식으로 보여주는 프로젝트 그룹이다. 레스토랑 아우르를 기반으로 지역 식재료로 만든 메뉴뿐 아니라 다양한 예술 프로그램과 전시, 팝업 스토어를 기획하며 외연을 넓혀가고 있다. 이머시브 다이닝은 몰입형 미식을 추구하는 광지주의 방향성을 선명히 드러낸다. 코스 요리마다 어울리는 음악과 영상이 연동되고, 조명과 분위기가 달라진다. 어떤 때는 DJ와 협업해 실시간 디제잉이 이어지고, 어떤 날은 청자 작가가 만든 식기에 음식을 담아낸다. 이런 실험은 예술가에게도 새로운 무대를 제공한다. 공연이나 전시가 끝난 뒤에도 예술은 식기와 조명, 영상으로 이곳에 남는다. 최근 큰 호응을 얻은 ‘토란스포머’도 광지주의 작품이다. 곡성 토란을 활용한 팝업 프로젝트였던 토란스포머는 포카치아부터 만주, 샐러드까지 다양한 토란 요리를 선보이고 캐릭터화한 토란 굿즈와 함께 전시·체험형 콘텐츠를 구성했다. 또 전남의 증류주 브랜드 보해와 협업해 보해소주를 활용한 칵테일을 개발하고 해양 플로깅을 연계한 캠페인을 벌였다. 굿즈부터 공간 구성까지 모두 자체 기획한 이 프로젝트는 ‘지방 브랜드와 도시 소비자 간의 접점을 모색’하는 기회였다. 여행자에게는 색다른 감각의 도시 경험을, 로컬 아티스트와 브랜드에는 실험적이고 지속 가능한 협업 기회를 제공하는 것. 광지주는 지역과 지역, 도시와 마을, 식재료와 감각, 예술과 일상 사이를 유연하게 아우르고 있다.



Taste
광주의 맛



광주엔 오래된 한옥과 낮은 골목 사이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맛’을 다루는 두 곳이 있다. 지역의 차를 소개하는 티 하우스 ‘티 에디트’와 전통 간식을 재해석한 디저트 숍 ‘갱소년’이다. 티 에디트는 1962년에 지은 한옥을 리노베이션했다. 과거 40년간 향토사학자 춘곡 강동원 선생이 ‘남도한약방’을 운영하던 자리로, 그 시절의 현판과 사랑채 구조가 그대로 남아 있다. “과거의 유산과 동시대 감각을 한 공간 안에 녹여내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조경 디자인은 무등산의 주상절리에서 영감을 얻었고, 내부의 주요 컬러는 오방색과 오간색을 차용했죠. 배경음악은 국창 임방울 선생의 소리로, 차를 마시는 감각을 끌어올려줄 거예요.” 남수연 티 에디트 대표의 말이다. 이곳에선 광주 무등산의 춘설차를 중심으로 곡성 사과, 구례 오미자 등 광주·전남에서 재배한 재료로 만든 다양한 차를 맛볼 수 있다.
광주송정역 인근에 자리한 갱소년은 양갱을 트렌디한 방식으로 제공해 젊은 세대에게 새로운 미식 경험을 제안한다. 선지혜 대표는 한 입 크기의 구슬양갱, 제철 생과일을 통째로 넣은 곤약젤리, 양갱을 얹은 토스트, 팥앙버터 모나카 등 양갱을 활용한 색다른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양갱을 먹은 게 언제인지 기억나세요? 얼마 전 비비의 노래 ‘밤양갱’ 붐이 불면서 주목받았지만, 여전히 젊은 세대가 양갱을 접할 기회는 매우 드물죠. 최대한 인근에서 나는 식재료를 이용해 먹기 쉽고 가볍게, 양갱의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목표입니다.” 곡물, 견과, 말차, 유자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한 12종 세트는 광주를 찾는 여행객들의 선물용으로 인기다. 본점 외에 지점을 늘리지 않고 지역적 희소성을 고집하는 덕분에 광주에서만 만날 수 있는 디저트 숍으로 성장하고 있다.



Platform
여행자의 집



도시를 좀 더 깊이 있고 동시에 편리하게 여행하고 싶다면, 동구 동계천로에 자리한 ‘여행자의 집’으로 향하자. 여행 안내소이자 광주 콘텐츠를 경험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1980년부터 45년간 전라남도 교육감 관사로 쓰던 주택을 리노베이션해 만들어졌다. 1층에는 여행 정보를 안내받거나 캐리어를 맡길 수 있는 데스크, 지역 작가들의 기념품과 소품을 만날 수 있는 지퍼샵, 여행 일정을 직접 설계해볼 수 있는 지퍼플래닛이 자리한다. 2층에는 간단한 음식과 커피를 즐기며 쉬어갈 수 있는 여유로운 장소가 마련돼 있다. 방문객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곳은 지퍼플래닛이다. 마치 MBTI 테스트처럼 성향에 따라 여행 취향을 알아보고, 그에 어울리는 인근 여행지를 추천받을 수 있다. 추천 여행지를 돌아다니며 스탬프를 모으면 이곳에서만 받을 수 있는 귀여운 굿즈를 얻는 방식이다. 지하에 자리한 ‘무등의 공간’도 들러볼 만하다. 무등산의 사계절을 테마로 한 시청각 전시 공간으로, 사진과 조명, 사운드를 결합해 몰입감 있는 풍경을 연출한다. “2022년 오픈 때부터 광주와 자연을 상징하는 콤팩트한 전시관으로 기획했습니다. 이곳을 찾는 여행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포토 스폿이기도 하고요. 여행자의 집은 여행 안내소를 넘어 도시 안의 골목과 상점, 문화공간을 자연스럽게 소개하는 플랫폼으로 성장 중입니다.” 여행자의 집을 지키는 최영우 디렉터의 말이다. 매주 열리는 워크숍과 클래스, 북 토크 등 다양한 프로그램 역시 이곳의 매력을 배가한다. 향기, 사진, 식문화 등 일상적인 주제를 중심으로 꾸며지며, 현지인과 여행자 모두 참여할 수 있으니 놓치지 말자.
Brand
광주의 브랜드


‘꿈브루어리’와 ‘역서사소’는 각각 술과 사투리를 광주를 상징하는 문화로 바꾸는 곳이다. 동명동에 자리한 꿈브루어리는 광주 상무지구에서 양조 클래스를 운영하던 어머니 오민하 대표와 서울에서 마케팅을 하던 딸 차원영 이사가 함께 운영하는 전통주 양조장이다. 2022년부터 모녀가 함께 전통주 만들기 체험과 시음회를 통해 전통주의 매력을 알리고 있다. 남도에서 나고 자란 쌀과 국내 최초로 벼누룩을 사용해 ‘꿈의 대화’라는 이름의 탁주와 약주도 생산한다. 술은 70리터짜리 항아리에 담아 전통 방식으로 발효하며, 매달 계절 제품도 한정 출시한다. 약주는 와인처럼 가벼우면서 과일 향이 톡 쏘는 반면, 가수하지 않는 탁주는 깊은 맛이 나면서도 밸런스가 뛰어나다. 특별하게 광주를 즐기고 싶은 여행자나 외국인 여행객이 늘고 있다.
광주송정역 인근 송정시장에 위치한 역서사소는 사투리를 활용한 굿즈 브랜드다. “여기서 사세요”를 사투리로 바꾼 네이밍처럼 전라도 말을 귀엽고 위트 있게 적용한 문구류와 일상용품을 제작·판매한다. 김효미 역서사소 대표는 굿즈 외에도 지역 출신 작가들과의 협업 프로젝트나 사투리 엽서 전시 등도 소규모로 이어가는 중이다. “여행자들이 광주의 말투, 감정, 억양을 통해 도시의 분위기를 먼저 느끼길 바랐어요. 송정역 인근에 자리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죠. ‘으드러지게’ ‘귄하네’ 같은 표현은 이곳 사람에게는 익숙하지만, 여행자에겐 다소 낯선 말입니다. 역서사소는 이런 언어의 간극을 즐거운 문화 상품으로 메우려고 노력해요.”



Stay


호랑가시나무 게스트하우스
양림동은 20세기 초 서구 선교사들이 광주 최초의 근대식 학교와 병원 등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근대화의 바람이 시작된 곳이다. 아직도 동네 곳곳엔 당시 지었던 서구식 건축물과 전통 한옥이 공존해 이국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곳은 주택가 끝에 자리한 ‘호랑가시나무 게스트하우스’다. 옛 선교사들의 흔적이 남은 곳에서 하루 묵으며 지역 작가들의 예술품까지 감상할 수 있기 때문. 숲속에 자리한 2층짜리 붉은 벽돌 주택은 1950년대 선교사 사택으로 지은 것이다. 이후 대대적으로 리노베이션하기보다 당시 사용하던 선교사들의 방 분위기를 최대한 살려 리모델링했다. 각 객실의 이름도 이곳에 묵던 선교사들의 세례명에서 따왔다. 조용하고 단정한 내부와 채광 좋은 소박한 객실이 머무는 이들에게 여유를 선물한다. 부지 안에 있는 다른 건물은 예술가들의 레지던시와 전시관으로 운영된다. 국내외 창작자들이 이곳에 일정 기간 머물며 작업하고, 결과물은 전시관에 선보이는 식이다. 사회적 기업 ‘아트주’ 정헌기 대표는 방치됐던 이곳을 2013년부터 운영해왔다. “처음 여기에 예술가를 위한 창작소와 게스트하우스를 만들자고 제안했을 땐 반대가 심했어요. 하지만 예술가에게는 실험의 공간이 되고, 여행자에게는 광주의 수준 높은 예술을 가까이서 보고 느낄 수 있는 장소가 되길 바랐죠. 10년이 훌쩍 지나 이제는 양림동을 대표하는 여행지가 되었고요.” 그는 워크숍, 오픈 스튜디오, 아티스트 토크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과 외부 작가 간 교류를 유도하고, 전시 이후에도 창작이 이어질 수 있는 환경을 고민한다. 숙박객은 언제든 전시관을 방문해 예술과 휴식을 동시에 누릴 수 있다.


Culture
광주의 문화 공간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자 예술가들의 실험정신이 깃든 광주에는 현대의 문화를 다시 읽고 새롭게 생산하는 세 곳이 있다. 오래된 공간을 이어받아 동시대 이야기를 담아내는 ‘동구인문학당’, 창작자와 시민을 연결하는 플랫폼 ‘충장22’, 그리고 전시와 창작을 통해 시각예술의 활로를 모색하는 ‘예술공간 집’이다. 동구인문학당은 광주 동구 예술의 거리 초입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이다. 1980년대 ‘예총회관’으로 쓰이던 건물로, 당시 광주 예술가들이 함께 활동하던 장소이기도 하다. 현재도 이곳에서 예술인, 문화 활동가, 시민이 머물고 토론하며 작업한다. 건물 안에는 전시실과 소규모 공연장이 있고, 오픈형 라운지에서는 누구나 자유롭게 책을 읽거나 머물 수 있다. 계절별로 워크숍과 강연이 열리며, 로컬 청년 기획자들을 위한 실험적인 프로젝트도 기획한다. 충장22는 광주 충장로 옛 간장 공장 건물을 리모델링한 공간이다. 1층은 라운지와 카페, 굿즈 숍이 있고 2층과 3층은 전시와 강연, 워크숍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열린다. 디자인, 출판, 공간 기획 등 도시 문화 전반을 주제로 한 콘텐츠가 꾸준히 소개되며, 로컬 브랜드와 협업한 팝업 스토어나 책 제작 프로젝트도 자주 열린다. 예술공간 집은 이름 그대로 예술가들이 작업하고, 전시하며, 집처럼 머물 수 있는 공간이다. 동구 장동의 오래된 한옥을 개조해 만든 이곳은 입주 작가들이 정기적으로 거주하며 작업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중심이다. 규모는 작지만 실험적인 시각예술에 관심이 있다면 놓치기 아까운 공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