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안동 촌캉스 - 헤이트래블 - hey!Travel


  • written by Parc Jinmyoung
  • PHOTOGRAPHY BY Lee Hyunjin

이방인의 안동 촌캉스

A City-Dwelle’s Countryside Escape

자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한국 전통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튀니지 청년 라드혼. 그와 함께 경북 안동 임하면 금소마을에서 1박 2일을 보내며 두 문화가 맞닿는 순간을 발견했다.
  • written by Parc Jinmyoung
  • PHOTOGRAPHY BY Lee Hyunjin
2025년 11월 11일

Day 1

15:00~16:00

안동 금소마을 체크인
지난 3월, 경북 의성군에서 발생한 산불은 안동까지 확산됐다. 현재까지도 주민들은 화재로 소실된 개인 재산은 물론 지역의 유산을 복원하기 위해 인고의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안동역에서 차로 약 20분 거리에 있는 금소마을도 예외는 아니다. 마을을 둘러싼 주변 산에는 화마가 할퀴고 간 흔적이선명하게 남아 있다. 하지만 자연의 생명력은 질기고 강하다. 검게 그을린 틈 사이로 희미하게나마 초록빛을 띤 산자락이 여행자를 반긴다. 아름다운 시골 풍경 속에서 안동포의 전통을 이어온 금소마을은 150여 년 동안 합법적으로 대마를 재배해온 지역이다. 현재 200명 남짓한 주민이 살고 있지만, 오랜 세월 이어온 직조 문화가 여전히 마을의 숨결을 지탱하고 있다. 금소마을이 간직한 한국의 전통과 옛 정취를 느끼며 라드혼이 기대감을 드러낸다. “안동이 문화유산이 풍부한 도시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여행은 처음이에요. 한국 문화와 정체성을 더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될 것 같아요.”

오랜 기억을 품은 공간의 재탄생, 고고창고
금소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마을의 역사와 여행 일정을 소개하고 숙소 배정을 돕는 커뮤니티 센터, 고고창고로 향한다. 안동포짜기마을보존회 권용숙 국장이 60여 년 전에 지어졌지만 15년간 방치돼 있던 창고를 여행자를 위한 웰컴 공간이자 무인 카페로 재탄생시킨 곳. 이곳은 안동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인테리어 소품이나 마을에 거주하는 공예가가 만든 작품 등을 전시하는 갤러리로도 기능한다. 대마 껍질을 이용해 만든 바, 대마 줄기로 완성한 커튼 등 금소마을의 정체성을 담으려 노력한 흔적이 구석구석에서 느껴진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커뮤니티 센터와 카페 공간을 분리하는 파티션이다. 벽으로 나누는 대신 근현대식 가정집의 문을 놓아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구성했다. 라드혼이 흥미로운 눈초리로 문을 바라보고 있으니, 권 국장이 이 문이 이곳까지 오게 된 역사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전국을 뒤져 문을 구했는데, 마지막 퍼즐은 이 창고 뒤에 있던 빈집에서 찾았어요. 3월 화재 당시 불에 탄 집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거예요.” 불에 타 사라질 뻔한 문이 이제는 사람들을 맞이하는 곳의 일부가 됐다. 잿빛 기억이 새로운 시작을 알리고 있다.

16:00~17:00

오늘날 다시 숨 쉬는 전통의 현장, 마을 산책
“이게 진짜 대마라고요?” 마을에 전시용으로 심어놓은 대마밭 앞에서 휘둥그레진 눈으로 라드혼이 재차 묻는다. 본격적인 일정을 시작하기 전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안동찜닭 쿠킹 클래스가 열리는 연화단지 방앗간을 지나 3·1만세운동 당시 독립운동 모의 장소였던 예천 임씨 금양파 종택을 만나고, 안동 시내에서도 일부러 물을 길러 온다는 샘터를 돌아 오던 길목에서 대마밭을 만난 것이다. 금소마을의 대마 재배 역사는 약 150년 전, 조선 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금소마을이 자리한 임하면 일대는 배수가 잘되는 모래 섞인 사질토로 이뤄져 있어 대마를 재배하기에 최적의 지역이었다. 대마로 지은 안동포는 조선시대에는 조세용 포로, 근대에는 일상 의복용으로 널리 쓰이면서 마을의 생업이자 전통 기술이 되었다. 1976년 대마가 마약류로 분류되며 재배가 금지됐지만 금소마을만은 예외였다. 수백 년간 이어온 전통을 지키기 위해 ‘문화재 보존 목적’으로 한정 재배 허가를 받아 전수자들만이 안동포 생산용으로 재배할 수 있었다. 2020년 7월, 마침내 안동이 국내 최초로 산업용 헴프 규제자유특구로 선정되면서 마약 성분이 있는 품종과는 다른 섬유용 대마를 합법적으로 재배할 수 있게 됐다. 3월 말에 파종한 대마는 6월 말경 수확한다. “튀니지에서도 북아프리카 자생 식물 할파(Halfa)로 수공예품을 만들어요. 그런데 대마를 산업용으로 활용하는 것은 정말 혁신적이네요.” 대마 줄기가 빨랫줄에 널려 있는 안동포 전수관 앞에서 마을 산책이 끝나고 나니, 라드혼에게 마을 자체가 살아 숨 쉬는 유산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18:00~19:30

절제의 미학이 담긴 안동찜닭, 연화단지 방앗간
닭갈비를 유난히 좋아하는 라드혼에게 찜닭의 고장 안동은 더없이 매력적인 여행지다. 예로부터 마을의 여성들을 위한 공간이었던 연화단지 방앗간에서 진행하는 쿠킹 클래스에서 안동찜닭을 직접 요리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니 금소마을은 더 기나긴 여행의 여운을 남길 것이다. 안동 전통 고택 리조트 ‘구름에’ 김점희 셰프의 레시피로 지역 식자재를 활용해 안동찜닭을 만들기 시작한다. 김 셰프의 말에 따르면, 안동찜닭의 핵심은 소량의 캐러멜 소스에 있다. 서양 요리의 루(roux)처럼 설탕을 약불에 서서히 녹여 색을 낸 뒤 간장과 물을 부어 만든다. 이 소스는 찜닭 양념의 단맛과 윤기, 진한 색감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튀니지 사람들도 매운 음식을 좋아해요. 김치처럼 식탁에 빠지지 않는 고추 양념 ‘하리사(Harissa)’가 있죠. 하지만 한국의 다른 전통 음식과 달리 안동찜닭은 맵거나 자극적이지 않은 게 특징인 것 같네요.” 라드혼이 느낀 그대로 안동 음식은 간이 세지 않고 담백하다. 양반 문화를 기반으로 한 안동에서는 절제되고 깔끔한 맛,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조리법을 중시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동찜닭을 포함해 간고등어, 안동국시처럼 간장을 기본으로 한 담백한 양념의 음식이 발달하게 된 것. 각자 완성한 안동찜닭에 별도로 제공되는 멸치볶음, 돼지감자장아찌, 파김치가 더해져 든든한 저녁 한 상이 차려진다.

19:30~20:10

‘비단 길’ 수로에 띄운 소원, 만세공원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울려 퍼진 ‘대한 독립 만세’의 함성은 2주도 채 지나지 않아 안동에 닿았다. 3월 13일 이상동 선생의 1인 시위를 계기로 3월 말까지 안동 곳곳에서 만세운동이 이어졌다. 당시 금소마을은 유림들의 독립운동 모의 장소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예천 임씨 금양파 종택을 중심으로 학문과 예절을 중시하던 유림의 고장에서, 그들은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금소마을의 유생과 주민은 밤마다 종택 사랑방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필사하며 낭독 연습을 했다고 전해진다. 마을에는 이러한 조상의 역사적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만세공원을 조성했다. 이곳에서 매년 3월 만세 재현 행사를 열어 그날의 함성을 다시 떠올리곤 한다고.
만세공원은 소원을 비는 공간으로도 활용된다. 해가 완전히 지고 나면, 소원을 적은 안동한지를 대마 줄기를 엮은 작은 배 위에 올려 골목을 따라 난 수로에 띄우는 ‘등화연’ 행사를 진행한다. 200m가량 이어지는 수로 끝에 다다르면, 한지를 다시 수거해 소원 나무에 걸어놓는다. 금소마을은 본래 ‘금수(錦水)’로 불렸다. 산 정상에서 바라본 마을의 수로가 비단을 펼친 것 같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수로 덕분에 금소마을 고유의 풍경이 완성됐다. 자신이 적은 소원이 물 위를 천천히 흘러가는 걸 보던 라드혼이 어둠 속에서 속삭인다. “이런 경험은 무슬림인 저에게 더욱 색다르게 다가와요. 신앙에도 조화와 선의, 이해가 존재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이런 작은 행동 하나가 서로 다른 문화에 다리를 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Day 2

10:00~11:00

안동포로 짜내는 삶과 예술, 금곡재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안동포 시연을 감상하기 위해 금곡재에 도착했다. 금곡재는 예천 임씨 가문의 서당으로, 학문을 가르치고 유생을 교육하던 곳이었다. 1810년 금수서당으로 설립해 1928년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됐다. 현재는 전시, 공연 등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며, 마을의 전통과 역사를 보여주는 문화유산으로 거듭났다. 이곳에서는 정기적으로 전승자들이 안동포 제조 과정을 시연하는 행사가 펼쳐진다. 안동포 국가무형문화재 임능부 선생은 길게 뽑아낸 실에 침을 바른 후 무릎에 삼을 올려 비빈다. 직조용 실을 뽑아내는 ‘삼삼기’를 시연 중인 것이다. 그 옆에는 안동포짜기 전수자 남귀숙 선생, 안동포 국가무형문화재이자 전수교육강사인 박순자 선생이 나란히 앉아 길게 뽑아낸 실을 일정하게 정리하고 있다. 이를 베날기라 부른다. 수확 후 햇볕에 건조한 대마 줄기를 직조하기 전까지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 속껍질만 골라내는 삼째기, 일정한 실 형태로 뽑아내는 삼삼기, 날실을 조직하고 실을 정돈해 베틀에 걸 준비를 하는 베날기, 실에 풀을 먹이는 베매기를 거치면 직조 준비가 끝나는 것.
금소마을에서 태어났거나 이곳으로 시집 온 여자들은 제주 해녀처럼 필연적으로 길쌈을 해야만 했다. 스물두 살의 젊은 나이에 강원도에서 안동으로 시집 온 박순자 선생은 대마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매일같이 길쌈을 했다. 안동포 제작까지 모든 과정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지기에 더욱 고된 나날이었다. 안동포는 여전히 여름 한복이나 수의로 쓰이며 생의 결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 속에서 그 수요와 생산은 예전만큼 활기를 띠지 못하고 있다. 폭 38cm, 길이 22m에 달하는 안동포 한 필을 완성하기까지 장인의 손끝은 한 해 동안 고작 두세 필의 베를 짜낼 뿐이다. 정성과 시간이 응축된 결과물이다. “튀니지 여성들이 할파나 양모를 베틀로 다루는 장면이 떠올라요. 서로 다른 문화를 갖고 있지만, 전통과 지속가능성, 수공예라는 공통된 언어로 이어져 있다는 걸 느껴요.” 라드혼이 안동포 장인들의 손놀림을 가만히 지켜보며 말한다. 삼을 삼거나 베를 짜는 동안 부르던 장인들의 구슬픈 노동요가 끝나자 박수가 터져 나온다. 추출된 실처럼 가늘게 가을비가 내리는 오전, 여인들의 오래된 노랫가락이 오늘의 촉촉한 공기 속에 잔잔히 흩어진다.

tip 라드혼의 안동 여행 꿀팁 라드혼이 금소마을에서 보낸 1박 2일을 그대로 경험하고 싶다면, 로컬 여행사 길과마을이 기획하고 안동포짜기마을보존회가 진행하는 여행 프로그램 ‘금양연화’에 참여해보자. 보존회의 일원들이 직접 가이드로 나서는 1박 2일 여행 상품으로, 전통 막걸리 만들기 체험, 쿠킹 클래스, 안동포 시연 등이 포함돼 있다.

Radhouen | 라드혼 대학원생.

한국국제협력단(KOICA) 연수에 참여하고 있는 튀니지 공무원으로, 현재 인천대학교에서 기후변화와 국제 협력에 관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언젠가 튀니지에 있는 형과 함께 한국에서 여행사를 열겠다는 꿈이 있다. 그 목표에는 한국인에게 자국 문화를 소개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 있으며, 이를 위해선 한국의 문화를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