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골동 - 헤이트래블 - hey!Travel


  • written by parc jinmyoung
  • PHOTOGRAPHY BY JANG EUNJU

날마다 골동

A Time Traveler Hunting for Antiques

SNS에서 ‘향운재’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며 “골동붐은 온다”를 외치는 불교학 연구자이자 책 <골동골동한 나날>의 저자 박영빈. 한복과 갓 차림으로 시간 여행 하는 1990년대생의 엉뚱하고도 진지한 골동품 수집기를 따라가본다.
  • written by parc jinmyoung
  • PHOTOGRAPHY BY JANG EUNJU
2026년 07월 02일

1990년대생과 골동품 수집가. 두 용어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1990년대생이라 함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전환을 몸소 겪으며 변화에 가장 빠르게 적응하고 최첨단 기술을 효율적으로 향유한 세대가 아니던가. 골동품, 그중에서도 불교문화와 관련된 옛날 물건을 수집한다는 건 언뜻 비효율적인 세계로 회귀한다는 뜻으로 들리기도 한다. 불교문화 연구가가 본업인 박영빈 작가가 약속 장소에 도착해 의자에 엉덩이를 대기도 전에 대뜸 “역사가 먼저였냐, 수집이 먼저였냐” 물었다. “정확하게는 불교문화가 가장 먼저였죠.” 어렸을 때부터 유달리 한복을 즐겨 입고 맑은 차와 향을 좋아한 박 작가의 최대 관심사는 불교문화 예술. 불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는 인류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라는 사실에 모두가 긍정할 것이다. “종교가 인간의 정신에 미치는 영향이 호기심을 자극했어요. 그중에서도 불교 사상에 관심이 많았죠.” 박 작가가 대학에서 불교 철학을 공부하며 골동품 수집가의 길로 들어선 건 어쩌면 이미 그려진 지도나 다름없었다.
“첫 수집품은 국보로 지정된 청자 칠보투각 향로였어요. 골동이 아니라 재현품이었죠.” 당시 대학교 1학년이었던 그에게 15만원짜리 향로는 꽤 비싼 물건이었다. 며칠 밤낮을 골몰하다 구입했는데, 그땐 그냥 보고만 있어도 기뻤다고 한다. 뚜껑 구멍으로 향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모습을 바라보며 고려 시대 선조들도 같은 광경을 즐겼겠거니 상상하는 일도 퍽 재미있었다. “첫 골동품은 깨진 고려청자 사발이었어요. 향로와 사발 모두 지인에게 양도해 이제는 제 것이 아니지만, 이 경험을 통해 일상에서 공예를 향유하는 기쁨을 알게 됐죠.” 그때부터였다. 박영빈 작가가 ‘실생활에 사용하지 않는 것은 들이지 않는다’는 수집 원칙을 고수하기 시작한 것은. 향로에는 향을 피우고, 찻잔에는 차를 마시며, 사발에는 음식을 담아 먹는다. 인터뷰 장소에 착용하고 온 안경은 조선 시대의 것. 대나무 껍질을 얇게 깎아 맞붙이고 종이를 바른 합죽선(부채)은 일제시대 골동품으로, 여름철 필수품이다. “귀한 물건이라 잘 사용하지 않는 부채가 하나 있어요”라며 그가 비밀 얘기를 하듯 입을 뗐다. 조선 시대 말기에 생산된 그 부채를 손에 쥐는 순간 어떤 울림이 전해졌다고. “금속이나 도자도 아닌 이 연약한 물건이 숱한 전란과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을 거쳐 21세기에 사는 제 손에 온전한 모양과 기능으로 쥐어져 있다는 게 새삼 놀라웠어요.”

세상에 가치 없는 물건은 없다. 단지 그 물건의 진가가 드러나야 할 시점과 장소가 맞지 않을 뿐이다. 쓰임의 성패는 타이밍과 환경이라는 변수에 달렸다는 박영빈 작가의 지론에도 예외는 있다. 바로 향로. 불교에서 향로는 중요한 법구 중 하나인데,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마음의 번뇌를 씻어낸다는 의미가 담겼다. “보기만 해도 향이 풍기는 느낌이 들어요. 향로라는 기물 자체가 고요함과 경건함, 청정함을 상징하거든요.” 일부러 가품을 구입하기도 한다는 그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다가왔다. 보통은 갖고 싶거나 필요한 물건의 원본이 없을 때 들이곤 하지만, 가품을 찾는 또 다른 이유는 그 자체가 지닌 시간의 무게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 고미술의 ‘방고(倣古)’는 그러한 맥락에서 탄생한 하나의 장르예요. 선대의 형식을 모방하되 새로운 미감을 더하는 방식이죠.” 박 작가는 방고의 사례에서 보듯 원본의 모방을 넘어 그 사물만이 가질 수 있는 독자적인 가치와 생명력에 기대를 건다. “이건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소장품인데, 조선 시대 디자인의 복제품이에요.” 박 작가는 손에 낀 반지를 보이며 말했다. 임진왜란 전에는 남자가 여자보다 귀고리, 반지 등의 장신구를 화려하게 착용했다는 것이 박 작가의 설명이다. 기록에 따르면, 임진왜란에서 죽은 사람의 국적을 구분할 때 귓불에 구멍이 있으면 조선 사람이라 특정했다고 한다. 전쟁 후 절제와 검소가 강조된 유교사상이 확산하면서 장신구 문화 역시 간소화됐다.
그는 여행지에서도 골동품 가게를 찾아다닌다. 이역만리 타국에서도 우리 것을 골라내는 눈썰미가 매섭다.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리는 골동품 시장에 간 적이 있어요. 매대 위를 둘러보는데, 아무리 봐도 우리나라 나전칠기 같은 물건이 있는 거예요. 그릇을 뒤집어보니 ‘서울’이라고 한글로 새겨져 있더라고요.” 추정하건대, 1980년대에 만든 서울 관광 기념품 같았다. 고려 시대, 조선 시대를 넘나들며 옛날 이야기를 하던 터라 1980년대 물건이라니 어쩐지 최신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 고유의 미학은 소박함 속 숨어 있는 화려함과 섬세함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것 자체가 가진 위엄이 따로 있는 것 같아요.” 그의 말을 들으니, 독자적인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던 이유는 격변하는 시대와 사상의 변화를 수용하는 동시에 우리 것의 본질을 정교하게 지켜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의 아름다움을 사랑했던 일본인 아사카와 다쿠미의 “공예의 완성자는 공예의 사용자”라는 말처럼, 박영빈 작가에게 골동품은 진열장에 전시하는 보물이 아니라 생활 기물이다. “실제 물건을 사용하고 나서야 슬며시 드러내는 그만의 얼굴이 있어요. 그런 걸 볼 때 수집의 재미를 느끼죠.” 최근 자질구레한 액세서리류나 향을 담기 위해 나무로 만든 향합을 구입했다는 박 작가. 그 향합이 날마다 어떤 새로운 면모를 보여줄지 기대하며 설레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