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0~12:00
Taste



사물에 고인 시간을 불러오는 법
예명당
답십리가 고미술의 성지가 된 건 1980년대, 청계천 주변에서 장사하던 상인들이 임대료가 비교적 저렴한 이곳으로 와 상가를 이루면서다. 2·3·5·6동 네 개의 동에는 140여 개의 상점이 들어서 있다. 메인 상가는 2동으로, 고복희·오브(of) 같은 2세대 숍도 이 동에 자리한다. 이곳을 드나드는 젊은 층이 많아지면서 1세대 숍의 풍경도 사뭇 달라졌다. 25년째 둥지를 틀고 있는 예명당은 변화의 중심에 있다. “1년 전부터 손님들에게 차를 내어주기 시작했어요. 젊은이들이 물건을 만지고 사용하며 색다른 경험을 해보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죠.”라며 정영섭 대표가 고려 시대 찻잔에 담긴 말차를 건넨다. 조선 시대 가죽신을 신고 갓을 쓴 프란체스카는 1000년의 세월을 담은 찻잔을 조심스레 든다. “독일에선 오래된 물건을 쓰는 게 참 흔한 일이라, 이 풍경이 전혀 낯설지 않아요. 저희 가족도 증조부님의 가구를 쉽게 버리지 않을뿐 아니라 지금도 사용하거든요.” 대물림해서 쓰는 가구처럼 시간이 깃든 물건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어쩌면 사람들은 물건 자체가 아니라 이러한 태도를 동경하며 이곳을 찾는 게 아닐까.
주소 서울시 동대문구 고미술로 21 2동 164호
영업시간 월~토 09:00~18:00(일 휴무)
문의 010-5234-6593
12:00~13:00
See



함부로 소유할 수 없는 시간
라온
“우리 집에 오는 젊은 친구들에게 하는 첫 질문은 ‘여기 몇 번 왔느냐’예요. 처음이라고 하면 뭐든 절대 사지 말라고, 골동품은 한 번 보고 쉽게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고, 여러 번 바라보고 만져본 다음 내 것처럼 느껴지면 그제야 사는 거라고 조언하곤 하죠.” 한평생 고가구와 민속품을 다뤄온 라온 김성숙 대표가 말했다. 라온에는 소반, 떡판, 수저, 그릇, 벼루 같은 소소한 생활 기물부터 옷장, 수납장, 그릇장 등 고가구까지 희귀하고 멋스러운 골동품으로 가득 차 있다. 소반을 발견한 프란체스카의 푸른 눈이 반짝인다. “독일에는 나무로 만들거나 바닥에 앉아 사용하는 물건이 거의 없거든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문화권에서만 볼 수 있어 특별한 것 같아요.” 오래된 물건에는 과거의 생활 방식과 이야기가 담겨 있다. “떡살 만드는 기술은 경북 예천이 으뜸이에요. 유교 문화가 발달한 지역이라 집안 경사나 제례에 자주 사용했기 때문에 그렇죠.” 김 대표의 친절한 설명 덕분에 프란체스카는 이 땅의 지난 세월을 차곡차곡 몸에 익힌다. 떡살의 나무 질감과 문양을 손끝으로 느끼는 이 순간, 한국에서의 시간이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선명해졌으리라.
주소 서울시 동대문구 고미술로 21 2동 1103호
영업시간 월~토 09:00~18:00(일 휴무)
문의 010-5336-0764
13:00~14:00
ENJOY


답십리 속 오래된 미래
호박 포크 아트 갤러리
“어, 이건 저희 할머니 댁에서 자주 봤던 패브릭이에요!” 프란체스카가 반가운 얼굴로 호박 포크 아트 갤러리에 들어선다. 패브릭뿐 아니라 그릇과 액자 등 그녀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익숙한 물건이 자리하고 있다. “맞아요! 독일에서 온 물건들입니다. 현재 아트 디렉터 소니아를 중심으로 네 명의 작가가 수집하거나 작업한 것들을 전시·판매하고 있어요.” 김재윤 매니저가 불쑥 화답한다. 2세대 숍 중 하나인 호박 포크 아트 갤러리는 유명한 빈티지 의류 숍 ‘수박빈티지’의 김정열 대표가 운영하는 곳이다. 옷 사이에 골동품을 한 점씩 섞어 팔던 감각은 어느덧 번듯한 미술품 상점으로 결실을 거뒀다. 이곳은 골동품을 현대적으로 바라보는 방식을 제안한다. 포스트모던 작가 제프 쿤스(Jeff Koons)의 작품 옆에 100년의 세월을 견딘 투박한 농기구를 걸고, 미드센추리 스타일의 수납장 위에 가야 시대의 토기를 올려놓은 식이다. 분기별로 현대 작가나 브랜드의 전시를 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가야의 토기와 유럽의 빈티지 패브릭이 공명하는 이 공간에서 프란체스카는 한국과 독일,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잇는 자신만의 새로운 지도를 그려본다.
주소 서울시 동대문구 고미술로 21 2동 118호
영업시간 화~토 12:00~18:00(일·월 휴무)
인스타그램 hobakfolkartgallery
15:00~17:00
Eat


건강한 에너지로 가득한 한 상
제비민속손국시
해산물 알레르기가 있고 육류를 멀리하는 프란체스카에게 제비민속손국시는 적절한 선택지다. 답십리 고미술 상가 2동 바로 앞에 자리한 데다 비빔칼국수, 도토리묵, 파전 등 채식주의자도 즐길 수 있는 식당이기 때문이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보다 채식 메뉴가 훨씬 많아졌어요. 이제 한국은 채식주의자들이 살기 좋은 나라라고 생각해요.” 동네 시장에서 장 본 식자재로 김밥 만들어 먹는 것을 한국살이의 즐거움 중 하나로 꼽은 프란체스카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오후 3시, 늦은 점심시간임에도 ‘로컬 맛집’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식당 안은 ‘혼밥’하는 동네 주민들로 북적인다. 멸치로 육수를 내 깔끔하고 담백한 맛을 자랑하는 항아리 수제비가 대부분의 테이블을 채우고 있다. 그녀의 식탁 위로는 윤기 흐르는 도토리묵이 먼저 고소한 향을 풍기며 식욕을 돋운다. “참기름은 동양 음식의 풍미를 완성하는 마법 같아요. 저도 샐러드에 두부를 넣을 때 드레싱으로 자주 애용해요.” 이어 수제 초장 소스에 골고루 버무린 면을 크게 한입 넣자, 탱글탱글한 면발의 식감과 달짝지근한 매콤함이 입안 가득 미각을 깨운다.
주소 서울시 동대문구 고미술로 16
영업시간 월~토 11:00~20:00(월 휴무)
문의 02-2249-7878


골동품의 또 다른 형태
삼호바게트
1976년에 문을 연 이래 답십리의 굴곡진 세월과 함께한 곳이다.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이곳이 사랑받을 수 있었던 건, 건강한 식자재로 빵의 본질을 지켜온 정직함 덕분이다. 대표 메뉴는 버터, 달걀, 우유, 설탕을 쓰지 않고 100% 통밀로 만든 식빵. 뒤이어 담백한 맛을 자랑하는 천연 발효종 삼호바게트, 쫄깃하고 고소한 찰호두식빵 등이 인기 있다. 쫄깃한 감자빵부터 속을 든든하게 하는 소시지빵까지 군더더기 없는 담백함에 집중한 메뉴들은 이곳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테이블이 없는 매장이라 빵을 포장해 갔던 프란체스카가 시식 후기를 보내왔다. 그녀가 첫손에 꼽은 건 호두 타르트. “저는 견과류, 곡물이 들어간 빵이나 디저트를 정말 좋아해요. 이 호두 타르트는 어릴 때 할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맛을 떠오르게 하네요.” 프란체스카는 할머니가 정성껏 구운 호두파이에 차나 커피를 곁들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그때가 생각난다고 덧붙였다. 어쩌면 음식은 우리를 그리운 과거로 데려다 준다는 점에서 골동품과 닮았는지도 모른다.
주소 서울시 동대문구 전농로 70
영업시간 07:30~23:30
문의 02-2214-7476
17:00~18:00
Drink



시간이 멈춘 자리에 퍼지는 산미
커피그라운즈
스페셜티 커피의 도시 베를린에서 온 프란체스카의 커피 취향을 사로잡은 곳은 다름 아닌 커피그라운즈. 번잡한 대로변 뒷골목, 오래된 건물 사이로 정갈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이다. 문을 지키는 영험한 돌사자상부터 창 너머 바를 공유하는 야외 테이블까지, 로스터리 브랜드 하루코빈스에서 운영하는 커피그라운즈는 일상에서 벗어난 묘한 해방감을 선사한다. 주문한 라테 한 모금을 들이켠 프란체스카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어째서 크림치즈 맛이 나는 것 같죠?”라고 묻자, 브루잉을 하던 안지혜 공동대표가 답한다. “원두의 개성을 살리기 위해 가볍고 섬세하게 볶는 편이에요. 덕분에 커피가 입안에 머물 때 깔끔하고 뒷맛이 경쾌하죠.” 커피 맛뿐 아니라 서양화를 전공한 변시유 공동대표가 생산지별 특징을 그림으로 그린 패키지는 답십리를 다시 찾게 될 이유로 충분하다. “네덜란드 친구 야닉을 이 동네에 꼭 데려오고 싶어요. 한국에 10년 넘게 살고 있는데 문화와 역사에 호기심이 많거든요.” 프란체스카는 과거가 건네는 다정한 대화에 귀 기울이며 벌써 다음을 기약하고 있다.
주소 서울시 동대문구 답십리로48길 57 1층
영업시간 월~금 17:00~21:00, 일 13:30~17:00(토 휴무)
인스타그램 coffee_grounds_by_harucobeans
Francesca Bujdák | 프란체스카 부이다크 | 일러스트 작가
한국 이름은 가람. 이 이름으로 불리는 걸 좋아한다. 독일 베를린에서 나고 자랐으며,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했다. 2020년 우연한 계기로 한국에 정착한 뒤 뮤지컬 의상팀에서 일하거나 성우로 활동하는 등 늘 예술을 가까이했다. 현재는 그림 그리기에 몰두하며 일러스트 작가로 활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