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르투 중심부에서 차로 20분 거리, 마이아(Maia)시에 있는 로사(Rosa) 할머니의 집. 초인종을 누르자 할머니가 직접 나와 일행을 반겼다. 오래된 나무 바닥 위로 햇살이 가득 내려앉은 집 안은 따스하고 아늑한 분위기였다.
“포르투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아파트죠? 주방도 다른 집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그래도 채광이 좋아서 주방에서 요리하는 시간을 좋아해요. 날이 좋을 때는 테라스에서 식사를 하기도 하고요.”
로사 할머니는 올해 여든여섯이다. 포르투갈 북부 마이아에서 태어나 평생을 이 도시에서 살아왔다. “어제 에르메진드(Ermesinde) 재래시장을 다녀왔어요. 집에서 차로 10분 정도 걸려요. 매주 시장에 가서 과일이랑 채소, 고기를 사 오죠. 과일이랑 채소는 마누엘 집에서 사고, 고기는 카를라의 정육점에서 주로 사요.” 로사 할머니에게 ‘포르투갈 스타일의 집밥’을 부탁했을 때, 당연히 해산물 요리가 나올 거라 생각했다. 짭조름한 염장 대구 요리 바칼랴우, 올리브 오일을 넉넉히 두른 문어 샐러드, 혹은 그날 잡아 올린 해산물로 지은 해물밥. 포르투갈 요리의 심장은 바다에 있다고들 하지 않는가. 그런데 로사 할머니는 부엌 찬장에서 흰콩 한 봉지를 꺼냈다. 그리고 돼지고기와 소고기, 소시지까지.

목장의 막내딸, 부엌을 배우다
1930년대 후반, 마이아는 지금과 달리 넓은 들판과 목초지가 펼쳐진 시골이었다. 로사 할머니의 집은 목장을 운영했다. 양, 돼지, 염소 등 가축을 키워 팔아, 당시에는 꽤 넉넉한 살림이었다. “남매가 열한 명이었어요. 저는 막내였고요.”
할머니는 잠시 웃었다. “막내는 항상 엄마 곁에 있잖아요. 저도 그랬어요. 부엌에서 엄마 옆에 붙어 있었어요.” 11남매의 막내였던 어린 로사는 부엌에 있는 시간이 좋았다. 오빠와 언니들이 목장 일을 돕는 동안, 로사는 어머니 치맛자락을 붙잡고 부엌을 들락날락했다. 고기를 손질하는 손놀림, 콩을 솥에 붓는 소리, 그리고 부엌에 퍼지던 냄새. 그 기억들이 지금도 몸 어딘가에 새겨져 있다고 할머니는 말했다. “이 나라는 원래 바다 요리가 유명하잖아요. 바칼랴우, 문어, 해물밥… 다 맛있죠. 하지만 우리 집은 달랐어요. 목장이 있었으니까요. 엄마는 고기 요리를 더 잘하셨어요.” 해산물 왕국으로 불리는 포르투갈에서 고기와 콩으로 만든 가정식을 만난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로사 할머니의 부엌은 충분히 기대를 품게 했다.

카니발이 오면, 마을이 끓었다
페이조아다(feijoada)는 포르투갈식 콩 스튜다. 흰콩과 여러 부위의 돼지고기, 초리소와 베이컨을 넣고 천천히 끓여내는 요리다. 재료만 보면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손이 꽤 많이 간다. 하루 전날 밤부터 콩을 물에 불려야 하고, 여러 부위의 고기를 각각 손질해야 한다. 그리고 불 앞에서 오랜 시간을 견뎌야 비로소 완성된다. 페이조아다는 원래 카니발 시즌의 음식이다. 매년 2월, 포르투갈에 카니발이 다가오면 마을에서 돼지를 여러 마리 잡았다. 베이컨을 만들고 초리소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준비된 재료들을 한데 모아 큰 솥에 끓인 것이 페이조아다의 시작이다. 한 번 끓이면 오래 두고 먹을 수 있었다. 냉동해 두었다가 꺼내 먹어도 맛있고, 다음 날 다시 한번 끓이면 오히려 맛이 더 깊어졌다. 우리네 찌개가 이튿날 더 맛있어지는 것처럼.
그런데 오늘 로사 할머니의 솥에는 돼지고기만 들어간 것이 아니었다. “소고기도 넣었어요. 이건 어머니에게 배운 방식이에요.” 돼지고기의 기름진 맛에 소고기의 묵직한 육향이 더해지자 국물의 결이 달라졌다. 전통적인 페이조아다보다 훨씬 풍부하고 복합적인 풍미였다. 할머니의 어머니가 왜 이 방식을 선택했는지, 한 숟갈 떠본 뒤에야 고개가 끄덕여졌다. 요리를 시작하기 전, 할머니가 앞치마를 두르는 모습을 보고 잠시 말을 잃었다. 천이 여러 번 덧대어져 있었고, 색이 바랜 자리마다 정갈한 바느질 자국이 남아 있었다. 30년 된 앞치마였다. “해지면 제가 꿰매요. 그러면 또 새것 같아지거든요.” 로사 할머니는 젊은 시절 오랫동안 바느질 일을 했다. 포르투갈 북부는 한때 직물과 의류 산업이 번성했던 지역이다. 수십 년 동안 그 일을 하며, 앞치마가 닳을 때마다 직접 꿰매 다시 사용했다. 오래된 앞치마 한 장에 할머니의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남편 때문에 바뀐 레시피
결혼 후에도 로사 할머니는 종종 페이조아다를 만들었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남편이 콩을 잘 먹지 못했다는 것. “그래서 한동안은 만들지 못했어요. 그러다 생각날 때마다 레시피를 조금씩 바꿔봤죠.” 콩이 중심인 요리에서 콩을 줄인다는 것은 요리의 균형을 다시 맞춰야 한다는 뜻이었다. 로사 할머니는 그 과정에서 감자를 추가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콩이 주는 묵직한 포만감을 감자가 대신했고, 국물은 조금 더 맑고 담백해졌다. 남편 덕분에 로사 할머니만의 페이조아다가 탄생한 셈이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할머니는 다시 어머니에게 배운 방식으로 콩을 넉넉히 넣어 끓이기 시작했다. 오늘의 페이조아다는 어린 시절 부엌, 목장의 냄새가 배어 있던 솥에서 시작된 맛이었다. “오늘은 엄마 방식으로 만들었어요. 그게 제 입맛에는 제일 잘 맞고, 가장 맛있어요.”

엄마의 엄마에게서, 그리고 딸에게로
“이 요리를 처음 가르쳐준 사람은 어머니예요. 그리고 어머니는 외할머니에게 배우셨죠. 지금은 제 딸이 이걸 해줘요.”
4세대가 하나의 레시피로 이어진다. 그 안에서 재료가 조금씩 달라지고 손맛이 조금씩 변하며 이야기가 하나씩 더해진다. 로사 할머니에게 페이조아다는 단순한 요리가 아니라 집안의 기억이 담긴 그릇이다. “딸이 만들면 맛이 달라요.” 할머니는 웃었다. “그래도 괜찮아요. 딸에게는 딸의 방식이 있으니까요. 그 나름의 맛이 있으니 그것도 좋아요.”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포르투갈 전통 도기인 황톳빛 그릇에 페이조아다를 담아내었다. 군데군데 유약이 벗겨진 자리에서 오랜 세월의 온기가 느껴졌다. 세대를 이어온 레시피가 단단한 그릇에 담기자, 마치 집안의 역사가 완성된 듯 보였다. 포르투갈 요리의 특징을 묻자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포르투갈에는 오래 끓이는 요리가 많아요. 시간이 곧 맛이죠. 빨리 만들 수 있는 음식은 빨리 잊히거든요.” 늘 한 박자 느린 포르투갈 사람들의 여유는 어쩌면 음식에서부터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페이조아다의 뚜껑을 덮어두고 할머니는 다시 찬장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사과를 꺼냈다. “어릴 때 목장에 사과나무가 많았어요. 사과가 너무 많이 열리면 엄마가 이걸 만드셨어요.” 애플 타르트. 포르투갈 전통 디저트라기보다는 로사 할머니 집안의 레시피에 가깝다. 재료를 낭비하지 않으려던 어머니의 지혜에서 시작된 디저트다. 놀랍게도 만드는 방법은 매우 간단했다. 예열된 오븐에서 단 20분 만에 타르트가 완성됐다. “이게 다예요?”라고 묻자 할머니가 웃었다. “네, 이게 다예요.”
한 입 베어 물었을 때의 맛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복잡하지 않지만 자꾸 손이 갔다. 할머니는 잔을 하나 꺼냈다. 20년 숙성 포트와인이었다. 포르투갈 북부 도루강에서 태어난 이 와인은 달콤하고 묵직하며, 오래 숙성될수록 말린 과일과 캐러멜 향이 깊어진다. 할머니는 아무 설명 없이 타르트 옆에 잔을 내려놓았다. 애플 타르트를 한 입 먹고 포트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시나몬의 따뜻한 향과 포트와인의 달콤한 여운이 입 안에서 천천히 만났다. 타르트의 소박함과 와인의 깊이가 서로를 완성시키는 조합이었다. 포르투갈다운 식사의 마무리였다. 마지막으로 물었다. “할머니에게 집밥이란 무엇인가요?” 할머니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마이아의 오후 햇살이 부엌 창을 비추고 있었다. “오랫동안 공들여 만들면, 그걸 누군가 순식간에 비워버리죠. 그걸 보면 또 만들고 싶어져요. 그게 집밥이에요.”
잠시 후 할머니는 덧붙였다. “내 사람들에게 자꾸 해주고 싶은 것. 저에게는 그게 힘이고, 또 추억이에요.”
부엌 한쪽에는 30년 된 앞치마가 걸려 있었다. 낡고 덧대어진 자리마다 누군가를 먹이기 위해 반복했던 날들이 담겨 있었다. 사람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불 앞을 지키는 인내. 세월에 닳은 부분을 기꺼이 꿰매어 쓰는 마음. 로사 할머니의 부엌에서 요리는 레시피 이상의 것이었다.
애플 타르트 Tarte de Maçã da Rosa

재료
사과 4~5개(단단한 품종 추천), 레몬즙 1큰술, 시나몬 가루 1~2작은술, 버터 100g(녹인 것), 밀가루 1컵, 베이킹소다 1/2작은술, 설탕 1큰술, 달걀 6개
만드는 법
1 오븐을 180℃로 예열한다.
2 사과를 껍질째, 또는 벗겨서 작은 큐브 모양으로 썬다.
3 썬 사과에 레몬즙을 뿌려 갈변을 막고, 시나몬 가루를 넣어 골고루 버무린다.
4 오븐용 타르트 틀에 버터를 가볍게 바르고, 사과를 고르게 담는다.
5 밀가루, 베이킹소다, 설탕을 한데 섞어 사과 위에 골고루 뿌린다.
6 녹인 버터를 전체에 고루 붓는다.
7 달걀 6개를 잘 풀어 그 위에 뿌린다.
8 예열된 오븐에 넣고 20분가량 굽는다. 표면이 노릇하게 익으면 완성.1
할머니의 팁
“재료 순서를 꼭 지켜야 해요. 달걀은 꼭 마지막에.”
페이조아다 Feijoada à Moda da Rosa

재료
흰콩(전날 밤 찬물에 불린 카넬리니 또는 흰강낭콩) 400g, 돼지고기(목살 또는 삼겹살) 300g, 소고기(양지 또는 사태) 200g, 베이컨 150g, 초리소(포르투갈식) 2줄, 모르셀라 (선지 소시지, 생략 가능) 1줄, 양파 1개, 마늘 4쪽, 당근 1개, 토마토 2개(또는 토마토 페이스트 2큰술), 올리브 오일 3큰술, 월계수잎 2장, 파프리카 가루 1작은술, 소금·후추 적당량, 파슬리
만드는 법
1 (하루 전날) 찬물을 넉넉히 부은 용기에 흰콩을 담가 8시간 이상 불린다.
2 불린 콩에 새 물을 넣고 한 번 삶은 후 물을 버려 잡내를 제거한다.
3 돼지고기와 소고기는 한 입 크기로, 베이컨은 굵직하게, 초리소는 동그랗게 썬다.
4 냄비에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양파와 마늘을 볶다가,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넣어 겉면을 익힌다.
5 베이컨, 초리소를 넣고 함께 볶은 뒤, 토마토와 파프리카 가루를 넣는다.
6 불린 콩, 당근, 월계수잎을 넣고 콩이 잠길 만큼 물을 부어 중불에서 끓인다.
7 콩이 완전히 부드러워질 때까지 1시간~1시간 30분 뭉근히 끓인다.
8 소금, 후추로 간을 맞추고, 모르셀라를 넣어 마지막으로 10분 더 익힌다.
9 그릇에 담고 파슬리를 뿌려 마무리.
할머니의 팁
“다음 날 다시 끓이면 훨씬 더 맛있어요. 넉넉하게 만들어두세요. 그리고 흰쌀밥과 함께 먹어도 맛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