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기록하는 색다른 방법 - 헤이트래블 - hey!Travel


  • written by LEE JIHYE
  • PHOTOGRAPHY BY Bong Jaeseok

시간을 기록하는 색다른 방법

Capture Time in Analog

선명한 디지털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때로 기다림이 주는 설렘, 인화된 사진이 전하는 촉감, 그리고 필름 특유의 거친 질감을 그리워한다. 서울 곳곳에서 아날로그 감성을 큐레이션하고 문화를 만들어가는 특별한 공간을 찾아 나섰다.
  • written by LEE JIHYE
  • PHOTOGRAPHY BY Bong Jaeseok
2026년 01월 06일

엘리카메라

필름 카메라를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이름이다. 2013년 온라인 쇼핑몰로 오픈한 엘리카메라는 10여 년 동안 단순한 빈티지 카메라 판매점을 넘어 아날로그 감성을 큐레이션하고 문화를 만들어가는 곳으로 성장했다. 시작은 강혜원 대표가 10년 넘게 필름 카메라를 수집하며 비롯됐다. “필름 사진의 가장 큰 매력은 결과를 얻기까지의 과정 그 자체”라는 그는 “사진 한 장을 얻기 위해 초점을 맞추고 빛을 조절하는 일련의 시간 속에서 깊은 감성이 피어난다”고 믿는다. 이곳의 운영 철학은 필름 카메라가 일시적인 유행으로 끝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담론을 생성하는 문화의 매개체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것. 이는 다양한 빈티지 카메라를 직접 만져볼 수 있는 쇼룸, 필름 본연의 느낌을 살린 고품질 현상 및 스캔 서비스를 제공하는 필름 현상소 등 엘리카메라의 공간 구성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중 주목할 만한 공간은 엘리브러리(Ellibrary). 사진책뿐 아니라 인문·철학·사회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구비해 누구나 볼 수 있고, 이를 통해 사진과 삶에 대한 폭넓은 이야기를 나누고자 마련했다. 카메라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며 직접 35mm 카메라를 조립하는 필름 카메라 제작 클래스 ‘컨스트럭터’도 인기다.
주소 서울 마포구 성암로 28 1동 103호
인스타그램 allycameras

녹화버튼

스마트폰 갤러리에 수천 장의 사진이 쌓여가는 시대다. 하지만 가끔 너무 선명해서 차가운 디지털 이미지 대신 지직거리는 노이즈 속에 담긴 흐릿한 온기가 그립기도 하다. 망원동 골목 어귀에 자리한 녹화버튼은 바로 그 결핍을 파고든다. 이곳의 문을 열면 시대를 역행하는 풍경이 펼쳐진다. 소니가 생산을 중단해 이제는 구하기조차 어려운 6mm 미니 DV 테이프, 그리고 2000년대 초반의 감성을 그대로 간직한 30여 대의 캠코더가 손님을 맞는다. 원하는 시간만큼 캠코더를 대여할 수 있지만, 주어지는 테이프 하나에 담을 수 있는 촬영 시간은 60분뿐이다. 촬영을 마치고 캠코더를 반납하면 녹화버튼만의 진짜 의식이 시작된다. 바로 ‘상영회’다. 찍어온 영상을 디지털 파일로 변환하는 동안 작은 상영관에 앉아 직접 기록한 1시간을 꼬박 지켜봐야 한다. 변환 시간과 재생 시간이 동시에 흐르는 아날로그 방식 덕분이다. 이 시간에는 헤드셋을 끼고 영상을 보기 때문에 말 대신 필담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디지털 변환이 끝나면 영상은 클라우드로 전송되지만, 손에 쥐여지는 ‘물성’ 또한 놓치지 않았다. 직접 찍은 영상의 스틸 컷을 인화해 테이프 케이스를 꾸미는 패키징 서비스는 그날의 공기를 손바닥 안에 박제해준다. 이제는 생산되지 않는 희귀한 테이프를 소장한다는 것만으로도 아날로그 마니아들에게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
주소 서울 마포구 희우정로20길 22-13 1층 101호
인스타그램 nokhwa.button

고래사진관 현상소

을지로의 낡은 건물 2층에 자리한 고래사진관은 필름 유저들의 놀이터이자 아지트다. 국내에서 보기 드물게 컬러필름은 물론 영화용, 슬라이드, 흑백필름까지 모두 다루는 종합 현상소. 고래사진관 현상소를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사람들의 콘텐츠를 좀 더 가치 있게 만들자”는 모토 아래 탄생한 ‘셀프 스캔’ 문화다. 이곳에 사진을 맡긴 이들은 결과물만 수동적으로 받아들지 않는다. 컬러필름 기준 15분이면 완료되는 현상을 기다린 후, 직접 스캐너 앞에 앉아 색감과 감도를 맞추는 작업을 할 수 있다. 노리츠, 후지, 코닥 등 10여 대의 스캐너가 준비되어 있어 취향에 따라 기기를 선택하는 재미도 있다. 따뜻하고 조작하기 쉬운 노리츠, 청량한 느낌의 후지, 그리고 깊은 색감의 코닥까지 각기 개성이 다르다. “고객이 직접 색감을 조절하며 자신만의 톤을 완성하거나, 남들에게 보여주기 부끄러운 사진을 프라이빗하게 간직할 수도 있어요. 이 과정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과 에너지는 직원과 손님 모두에게 활기를 불어넣죠.” 윤진아 대표의 말이다. 실제로 머무는 내내 처음 보는 손님들끼리 카메라 정보를 공유하고, 장롱 속에서 발견한 오래된 부모님의 필름을 현상하러 오는 손님도 있었다. 이러한 독특한 체험형 공간은 입소문을 타 해외여행객들까지 찾아오는 명소가 됐다. 1월까지 ‘겨울은 흑백이다’라는 콘셉트로 흑백사진 공모전을 열고 있다.
주소 서울 중구 마른내로2길 31 3층
인스타그램 gorae_studio

광각도시

간판조차 무심한 듯 걸려 있는 광각도시는 묘한 공간이다. 2021년 7월 문을 연 이곳은 단순한 사진관이라고 정의하기엔 너무나 다채롭다. 35년 차 현역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백승철 대표가 작업실이자 놀이터로 꾸민 이곳은 사진과 술, 그리고 디자인이 공존한다. 백 대표는 이곳을 “사심이 가득 채워진 공간”이라고 소개한다. 20년 넘게 취미로 즐겨온 사진과 애주가로서의 면모, 본업인 디자인 감각을 한데 비벼 넣었기 때문이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바(bar)를 이용하면 고퀄리티 포토 부스 촬영이 무료라는 사실이다. 시중의 네 컷 사진기와 달리 풀 프레임 카메라와 전문가용 조명을 세팅해 압도적인 화질을 자랑한다. 술 한잔 기울이고 촬영한 뒤 인원수대로 인화까지 해주는 서비스는 광각도시에서만 누리는 즐거움. 위스키와 칵테일 또한 백 대표가 직접 연구해 대중의 입맛에 맞춰 진하게 제조한다. 증명사진 촬영 시에는 포토샵 1세대인 대표가 AI가 아닌 수작업으로 정성스럽게 결점을 보완해 준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국에 영업 제한을 피해 데이트할 곳을 찾던 연인들의 안식처로 시작된 광각도시는 이제 알음알음 찾아오는 이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좋아하는 것에 몰두하는 어른의 취향이 궁금하다면, 광각도시의 문을 두드려보자.
주소 서울 중구 을지로20길 20 3층
인스타그램 9wang9ak_official

이터널로그

코끝을 스치는 묘한 약품 냄새가 먼저 마중을 나오는 이곳은 성수동에 자리한 이터널로그. 1960년대 생산돼 현재 전 세계에 300대도 채 남지 않은 빈티지 아날로그 포토 부스다. 영화와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김담비, 박은우 공동 대표가 스웨덴의 기술자들과 협업해 어렵게 한국으로 들여온 이 기계는 셀프 카메라처럼 화면을 볼 수도 없고 준비할 시간도 많지 않다. 눈부신 플래시가 5초 간격으로 네 번 터지면 끝이다. 이후 3분간 사진이 인화되는데, 아날로그 포토 부스의 매력이 여기서 발산된다. 디지털 프린팅이 아닌, 기계 내부의 14개 통을 오가며 현상액에 담갔다 빼는 ‘딥 앤 덩크(Dip and Dunk)’ 방식으로 인화된다. 덜컹거리는 기계음과 함께 툭 하고 떨어지는 사진은 채 마르지 않아 축축하고, 표면에는 물기가 어려 있다. 하지만 이 불편이야말로 이터널로그가 추구하는 진짜 매력이다. 두 대표는 매일 아침 직접 화학약품을 배합하고 기계를 점검한다. 그날의 온도와 습도, 약품 상태에 따라 사진은 흑백의 농도도, 세피아 톤의 깊이도 매번 달라지는데, 매장 입구에 붙어 있는 ‘오늘의 사진’은 그날 기계 상태를 보여주는 지표가 된다. 성수점만의 독특한 공간 구성도 매력적이다. 1950년대 독일제 진공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배경으로 벽면을 가득 메운 빈티지 사진을 구경하다 보면 시간은 금세 흐른다. 방문객들은 준비된 종이에 서로의 얼굴을 그려주거나 소원을 적어 걸어두며 온기를 나눈다.
주소 서울 성동구 연무장5가길 14 1층 101호
인스타그램 eternalog_offic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