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세미, 골드코스트를 달리다 - 헤이트래블 - hey!Travel


  • written by YEO HAYEON
  • PHOTOGRAPHY BY JEON JAEHO
  • Supported by Experience Gold Coast, gold coast marathon tourism & events Queensland, korean air

임세미, 골드코스트를 달리다

Run To Remember, the 2026 Gold Coast Marathon

마라톤은 스포츠이면서 한 도시를 가장 직감적으로 경험하는 방법이다. 배우 임세미의 2026 아식스 골드코스트 마라톤 참전기.
  • written by YEO HAYEON
  • PHOTOGRAPHY BY JEON JAEHO
  • Supported by Experience Gold Coast, gold coast marathon tourism & events Queensland, korean air
2026년 09월 04일

‘러닝 트립’이 유행이다. 달리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국경을 넘는다. 세계 각지에서 열리는 국제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는 일이 러너들 사이에서는 하나의 버킷 리스트가 됐다. 한낮에는 뛰기 힘들 것 같은 동남아시아에서는 뜨거운 시간을 피해 새벽이나 밤에 대회가 열린다. 여행의 목적이 유명 관광지를 보는 것에서 한 도시를 직접 달려보는 것으로 확장된 셈이다.
마라톤은커녕 한강 달리기도 하지 않는 내게 국제 마라톤 대회를 취재할 기회가 생겼다. 배우 임세미와 함께 2026년 7월 4~5일 열린 ‘2026 아식스(ASICS) 골드코스트 마라톤’을 찾게 된 것이다. 퀸즐랜드주 관광청과 지난해 12월부터 준비해온 프로젝트였다.
임세미는 꾸준히 풀코스 마라톤에 도전해온 러너다. 도쿄와 시드니에 이어 이번에는 골드코스트에서 42.195km에 도전했다. 내가 직접 뛰는 것은 아니었지만 처음 경험하는 국제 마라톤인 만큼 대회의 역사와 코스, 문화에 대해 공부했다. 골드코스트로 떠나기 전, 임세미를 만나 훈련 루틴과 해외 마라톤의 매력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마라톤 대회는 대부분 봄이나 가을처럼 달리기 좋은 계절에 열려요. 여름에는 너무 덥고 겨울에는 너무 추우니까요.” 마라톤에 대한 기초 지식이 거의 없는 내게 임세미가 조곤조곤 설명했다.
올해로 46회를 맞은 골드코스트 마라톤은 호주를 대표하는 국제 로드 마라톤이다. 낮은 습도와 달리기 좋은 겨울 날씨, 고도 변화가 크지 않은 평탄한 해안 코스 덕분에 초보 러너에게는 완주에 도전하기 좋은 대회로, 기록을 노리는 러너에게는 빠른 기록을 기대할 수 있는 대회로 꼽힌다.

배번표를 받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마라톤
레이스에 참가하는 러너들은 대회에 앞서 골드코스트 컨벤션&엑시비션 센터에서 열리는 ‘아식스 스포츠&레저 엑스포(ASICS Sport & Leisure Expo)’를 찾아 배번표를 수령한다. “엑스포는 꼭 한번 가보세요. 각종 스포츠 브랜드의 스페셜 에디션과 러닝 관련 제품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즐겁거든요.” 퀸즐랜드주 관광청 담당자의 말대로 엑스포장은 마라톤 대회의 전야제처럼 러너들뿐 아니라 마라톤 대회를 즐기기 위한 사람들의 열기로 꽉 찼다. 러닝화와 운동복 차림의 사람들이 끊임없이 오갔고, 참가자들은 자신의 배번표를 들고 기념 촬영을 했다. 대회가 시작되기도 전인데 이미 축제 분위기였다.
임세미와 함께 배번표를 받았다. ‘SUSEMEE 2830’. 자신의 이름(인스타그램 아이디)과 번호가 적힌 배번표를 손에 들자 임세미는 며칠 동안 이야기하던 ‘42.195km’라는 숫자가 비로소 현실이 된 듯하다고 했다. 마라톤은 출발 총성이 울리는 순간 시작되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이름이 적힌 배번표를 손에 쥐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엑스포 한쪽에는 이번 대회 참가자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힌 커다란 패널이 설치돼 있었다. 임세미도 벽 앞에 서서 수많은 알파벳 사이에서 자신의 이름을 찾기 시작했다. 한참을 훑다가 마침내 ‘SEMI LIM’를 발견했고, 자신의 이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웃었다. 러닝화와 의류, 선글라스, 러닝 벨트, 에너지 젤부터 러닝 후 회복을 돕는 용품까지 러너들을 위한 부스를 돌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임세미의 발길을 붙든 것은 휴대용 폼롤러. “지방으로 촬영을 다니다 보면 폼롤러를 왜 안 갖고 왔을까 항상 후회했는데, 휴대하기 좋은 사이즈라 유용할 것 같아요.”

도시가 거대한 응원석이 되는 날
7월 4일, 하프마라톤이 열리는 날. 다음 날 풀코스를 달릴 임세미는 함께 온 러닝 크루를 응원하기 위해 현장으로 향했다. 나 역시 분위기를 미리 익히고 촬영 동선을 살펴볼 겸 그를 따라 새벽 4시에 호텔을 나섰다. 출발선과 결승선이 마련된 사우스포트의 브로드워터 파크랜즈(Broadwater Parklands)에 가까워질수록 러닝복 차림의 사람들이 하나둘 눈에 띄기 시작했다. 새벽 4시 30분, 브로드워터 파크랜즈로 향하는 트램은 이미 러너들로 가득했다. 순간 묘한 설렘이 밀려왔다.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새벽 시간, 도시에는 이미 달리기의 에너지가 꿈틀대고 있었다. 평소라면 고요했을 거리에서 수많은 사람이 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미디어 패스를 목에 걸고 출발선으로 향했다. 레이스를 앞두고 서로를 안아주는 연인과 가족, 어깨를 두드려주는 친구들이 보였다. 세계 곳곳에서 이 대회를 위해 날아온 사람들의 긴장과 기대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출발 신호가 울리자 수천 명의 러너가 한꺼번에 앞으로 쏟아져 나왔다. 순간 도시 전체가 함께 움직이는 듯했다.
마라톤대회는 달리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든 축제다. 달리는 사람도, 응원하는 사람도, 도시의 주민도 모두 하나가 된다. 마라톤 대회를 위해 도시 곳곳의 도로가 통제되고, 평소 자동차로 가득했던 길은 오롯이 달리는 사람들의 것이 된다. 마라톤이 열리는 이틀 동안 도시 전체는 ‘마라톤’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시민들은 길이 막힌다고 불평하기보다 거리로 나와 축제의 일부가 된다. 임세미는 해외 마라톤을 뛰며 도시마다 전혀 다른 마라톤 문화를 경험했다.
“도시마다 특징이 있어요. 시드니에서는 단독주택이 있는 동네 사이를 달리는 구간이 있었어요. 마라톤 때문에 차가 다닐 수 없으니까 아예 캠핑 의자와 돗자리를 펴놓고 온 가족이 나와 있어요. 테라스에서 구경하는 사람도 있고, 러너들에게 물을 뿌려주는 사람도 있고요. 집에 있는 바나나나 과일, 초콜릿 우유 같은 걸 테이블에 차려놓고 먹고 가라고 해요. 스피커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춤을 추며 힘을 북돋는 사람도 있었죠. 일본 사람들은 조용한 편인데 음식점 가게 주인이 직접 만든 주먹밥이나 간식을 나눠줘서 정겨웠고요.”
그날 아침 임세미는 달리는 대신 응원하는 사람이 됐다. 이른 새벽부터 거리로 나와 함께 온 러닝 크루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목청껏 불렀다.
그동안 마라톤을 철저한 ‘자기와의 싸움’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체력과 정신력의 한계를 견디며 혼자 달리는 운동이라고. 하지만 현장에서 마주한 마라톤은 응원의 스포츠였다. 42.195km를 달리는 것은 한 사람이지만, 그 긴 거리를 온전히 혼자 힘으로 달리는 것은 아니다. 길가에서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목소리, 처음 보는 사람이 보내는 박수, 스쳐 지나가며 손바닥을 마주 치는 짧은 하이파이브가 지친 몸을 다시 앞으로 밀어낸다. 응원은 러너에게 또 하나의 연료가 된다.

풀코스 도전의 날!
7월 5일. 임세미가 풀코스에 도전하는 날이었다. 짐을 맡기고, 하프 코스 응원 때 만난 권은주 감독이 챙겨준 에너지 젤도 먹었다. 직접 갖고 온 플라스크에 물도 채웠다. 그녀는 출발 장소로 이동하고, 나와 포토그래퍼, 영상감독은 출발하는 임세미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 미디어 존에서 긴장한 채 기다렸다. “왼쪽에서 달릴게요.” 임세미와 미리 약속은 했지만 출발 신호와 함께 수천 명의 러너가 한꺼번에 달리기 시작하자 혹시 놓치지 않을까 마음이 급해졌다. 그러다 두 번째 출발 그룹의 앞쪽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그를 발견했다. 안도감과 기쁨이 퍼졌다.
골드코스트 마라톤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바다를 곁에 두고 달린다는 것이다. 도쿄가 빌딩과 랜드마크 사이를 통과하는 도시의 마라톤이었다면 골드코스트에서는 야자수가 늘어선 해변과 낮은 주택가를 오가며 달린다. 촬영을 위해 10km, 25km, 33km 지점으로 계속 이동하며 임세미를 기다렸다. 멀리서 익숙한 모습이 보일 때마다 가슴이 뛰었다. 그를 볼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몇 초였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임세미 파이팅!” 하고 목청껏 외쳤다. 이름을 크게 부르고 카메라 셔터를 몇 번 누르면 그는 다시 수천 명의 러너 사이로 사라졌다. 그러면 또 다른 지점으로 이동해 같은 일을 반복했다. 처음에는 임세미를 촬영하기 위해 기다렸지만 어느 순간부터 눈앞을 지나가는 모든 러너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배번표에 이름이 보이면 그 이름을 직접 불러주었다.
주택가를 지나는 코스에서는 집 앞과 테라스로 나온 주민들이 러너들을 환대했다. 이른 아침, 잠옷을 입은 채 테라스에 서서 손을 흔들고, 러너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온 가족이 피크닉을 즐기며 응원을 하기도 했다.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자신의 집 앞을 달리는 날, 골드코스트 사람들은 일상의 공간을 자연스럽게 응원석으로 내어주었다.
임세미가 해외 마라톤 대회를 좋아하는 이유도 도시를 경험하는 이 특별한 방식에 있었다.
“마라톤 코스는 그 도시의 시그너처 스폿을 지나가잖아요. 평소 여행할 때 보던 장소를 직접 뛰어서 지나가는 거죠. 40km 넘게 달린 뒤 그런 풍경을 만나면 느낌이 완전히 달라요. 뛰면서 도시를 정복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보통의 여행에서는 지하철이나 자동차를 타고 장소와 장소 사이를 이동한다. 하지만 마라톤은 그곳까지 자신의 두 발로 달린다. 유명한 랜드마크뿐 아니라 평범한 주택가와 상점, 공원과 해안도로를 달려서 통과한다. 관광객이라면 쉽게 건너뛰었을 도시의 일상이 42.195km라는 하나의 선으로 이어진다. 마라톤은 한 도시를 가장 직감적으로 경험하는 방법이다. 아스팔트의 경사와 바람의 방향, 그 지역 특유의 냄새와 길가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목소리까지 몸으로 기억하게 되기 때문이다. 완주한 뒤에는 지도 위의 도시가 아니라 자신의 몸으로 기억하는 도시가 남는다.

나만의 역사를 기록하는 마라톤
2026 아식스 골드코스트 마라톤에는 역대 최대 규모인 약 4만3000명이 참가했다. 그중 한국인 참가자는 174명으로, 2025년 62명과 비교하면 약 2.8배 늘었다.
결승선에서는 수많은 표정이 교차했다. 다리를 절뚝이며 마지막 몇 걸음을 내딛는 러너, 남아 있는 힘을 모두 짜내 결승선을 통과하는 러너, 완주 직후 서로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휠체어를 타고 레이스를 완주한 참가자가 결승선을 통과하는 모습을 바라볼 때는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은 뛰면서 어느 정도 자신의 ‘코어’를 드러낼 때가 많아요. 비건인 사람은 비건에 대한 메시지가 담긴 옷을 입고 뛰기도 하고, 환경보호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뛰기도 하죠. 마라톤을 시작하게 된 사연도 사람마다 달라요. 어떤 이는 암 투병 중인 엄마를 위해, 중요한 시험을 앞둔 아들을 위해 달리고, 한쪽 눈을 실명한 뒤 달리기를 시작한 사람도 있죠.”
임세미의 이야기를 듣자 문득 마라톤이 순례길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 위에 선 이유는 모두 다르다. 그리고 긴 거리를 자신의 두 발로 통과하는 동안 결국 자기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4만3000명이 참가했다는 것은 4만3000개의 서로 다른 이야기가 있다는 것. 누군가는 기록을 단축하기 위해, 누군가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누군가는 삶의 어떤 시간을 통과하기 위해 달렸을 것이다. 처음으로 42.195km에 도전한 사람도, 수십 번째 풀코스를 완주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달리는 속도도, 결승선에 도착하는 시간도 다르다. 그러나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 그들이 마음속으로 떠올린 한마디는 모두 같지 않았을까. ‘해냈다.’

TRAVEL GUIDE
가는 법 골드코스트로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항공편으로 브리즈번까지 간 뒤 자동차로 이동하는 것이다. 대한항공은 월·수·금·토·일요일 주 5회 브리즈번으로 출발하는 직항편을 운행한다. 사전 기내식 프레스티지석 이용 승객은 국제선 전 노선(1시간 30분 이내 단거리 노선 제외) 항공기 출발 21일~24시간 전까지 홈페이지 모바일 앱으로 사전 기내식 신청이 가능하다. 골드코스트 마라톤 2027 골드코스트 마라톤은 2027년 7월 3~4일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