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웨이가 된 여행지 - 헤이트래블 - hey!Travel


  • written by Parc jinmyoung

런웨이가 된 여행지

Vacation on the Catwalk

세계적인 패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에게 영감을 준 풍경과 문화는 곧 런웨이 무대가 된다.
  • written by Parc jinmyoung
2026년 09월 07일

언젠가 인스타그램 피드를 뜨겁게 달궜던 장면. 우아한 블랙 드레스를 입은 가수 제니가 짙푸른 바다를 등진 채 걸어 나오는 영상 말이다. 바로 제니의 런웨이 데뷔 무대이자 자크뮈스 창립 15주년 기념 컬렉션 2024 F/W ‘라 카사(La Casa)’의 피날레 장면이다. 당시 사람들의 시선은 제니보다도 뒷배경에 쏠렸다. 자크뮈스의 런웨이 무대가 된 곳은 이탈리아 카프리섬(Isola di Capri)에 자리한 말라파르테 저택(Casa Malaparte). 자크뮈스의 창립자 시몽 포르테 자크뮈스(Simon Porte Jacquemus)는 전통적인 런웨이에서 벗어나 자연과 여행지를 무대로 삼으며 거대한 온라인 팬층을 갖게 됐다. 패션 피플뿐 아니라 일반 대중들도 매 시즌이 시작될 무렵이면 그의 무대 배경에 대한 기대감으로 술렁이곤 한다.
자크뮈스는 설립 초기부터 자신이 나고 자란 남프랑스 시골에서 쇼를 열었다. 파리의 화려한 살롱만이 럭셔리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시골의 소박한 풍경 속에서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음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더불어 이는 철저하게 감각적인 ‘바이럴’ 전략이기도 하다. 라벤더밭, 소금 산, 하와이 해변처럼 인공 세트를 배제한 광활한 자연은 패션을 잘 모르는 이들조차 단숨에 매료시킨다. “내 컬렉션이 인스타그램에서 수백만 명에게 공유되는 것을 사랑한다”는 그의 말처럼, 여행지는 거대한 세트이자 미디어로 변모한다.
사실 자크뮈스 이전에도 여러 패션 브랜드 하우스는 자연이나 낯선 여행지, 이색적인 야외 로케이션을 무대로 삼아 컬렉션을 선보여왔다. 매년 시즌 사이 휴양지를 찾아 나서는 샤넬의 크루즈 컬렉션과 역사와 문화의 깊이가 있는 도시를 무대로 삼는 막스마라 리조트 컬렉션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막스마라는 상하이 롱 뮤지엄 웨스트 번드(Long Museum West Bund)에서 창립 75주년을 기념하는 2027 리조트 컬렉션 ‘키네틱 시크(Kinetic Chic)’를 선보였다. 막스마라가 이러한 컬렉션을 전개하는 이유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지역의 매력과 문화를 브랜드에 담고 새로운 장소에서 얻은 영감으로 더 다채로운 이야기를 펼쳐내기 위함이다. 브랜드의 발자취를 좇기 위해 역사적 명소를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스코틀랜드의 드러먼드 성(Drummond Castle)에서 열린 디올의 2025 크루즈 패션쇼가 그렇다. 디올은 1955년 케이프 코트, 스커트, 니트 등 스코틀랜드의 유산을 담아냈던 컬렉션을 복기하며 브랜드의 정체성을 공고히 했다.
흥미로운 점은 여행지를 활용한 브랜드 전략이 런웨이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이 꿈꾸는 휴양지에 매장 혹은 팝업 스토어를 열고 직접 만나러 간다. 디올이 카프리섬에 고풍스러운 부티크를 열고, 구찌가 몬테카를로(Monte Carlo) 비치를 시그너처 패턴으로 물들이듯 말이다. 쇼를 넘어 쇼핑의 경험까지 여행지로 확장하는 것, 요즘 패션계가 주목하는 데스티네이션 리테일(Destination Retail)의 본질이다.
이들의 다음 목적지는 어디일까. 사막의 모래바람 위가 될지 고대 유적의 테라스가 될지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그들이 향하는 곳 어디든 우리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 카프리섬
Italy, Isola di Capri

©JACQUEMUS

지중해의 관능미와 휴양지의 낭만, 그리고 독특한 건축 미학이 집약된 이탈리아 남부의 섬. 자크뮈스는 브랜드 창립 15주년 컬렉션의 무대로 주저 않고 이곳을 택했다. 무대가 된 곳은 카프리섬 절벽 끝자락, 전설적인 아방가르드 건축물인 말라파르테 저택. 붉은 벽돌집과 지중해의 푸른 바다, 지붕으로 이어지는 야외 계단이 어우러진 풍경은 강렬한 런웨이로 치환됐다.

프랑스 | 파리
France, Paris

©CELINE

파리를 빼놓고 어찌 패션을 논할 수 있을까. 샤넬과 그랑 팔레, 루이 비통과 루브르 박물관, 생 로랑과 에펠탑, 디올과 로댕 미술관 그리고 자크뮈스와 베르사유 궁전까지. 브랜드는 각자의 미학에 어울리는 파리의 역사적 스펙트럼을 선택해 런웨이 장소로 사용해왔다. 셀린느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열람실과 회랑, 중정을 런웨이로 변신시켰는데, 지성의 공간인 도서관을 가장 트렌디하고 반항적인 무대로 바꿨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탈리아 | 로마
Italy, Rome

©Ryan Klaus / Unsplash

로마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뮤지엄인 만큼 패션 하우스에는 매력적인 지역일 수밖에 없다. 펜디, 구찌, 샤넬 등의 디자이너들은 트레비 분수, 카피톨리니 미술관, 치네치타 스튜디오, 팔라티노 언덕 등 역사적 명소에서 자신들의 영감을 풀어냈다. 특히 스페인 광장은 발렌티노에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데, 이 광장이 브랜드의 시작점이었기 때문이다. 하우스의 뿌리이자 영감의 원천이었던 이 광장은 런웨이 무대로 다시 태어났다.

미국 | 하와이
USA, Hawai‘i

©Brester Irina / Shutterstock
©JACQUEMUS

남프랑스를 고집하던 자크뮈스가 첫 글로벌 런웨이 무대로 하와이를 택한 이유는 명확했다. 그의 컬렉션 이름처럼 완벽한 도피와 낙천적 기쁨을 선사하기 위해서였다. 인공 세트장을 거부하고 라벤더밭과 소금 산을 누비던 그는 고대 하와이 사람들이 신성히 여겼던 쿠알로아 랜치에서 자신이 좇던 가장 날것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장엄한 산세, 태평양의 바람, 짙푸른 정글 등 자크뮈스가 원하는 모든 자연 요소가 바로 이곳에 있었던 것.

프랑스 | 생트로페
France, Saint-Tropez

©Christopher Politano / Unsplash
©CELINE

프랑스 남동부 지역에 있는 해안 도시 생트로페는 세계적인 셀러브리티들의 초호화 별장이 모여 있는 곳이다. 항구에는 요트들이 줄지어 있고, 골목에는 럭셔리 브랜드 매장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칼 라거펠트가 이끌었던 샤넬과 프랑스 패션 하우스 쟈딕앤볼테르, 셀린느 등의 럭셔리 브랜드들은 이곳을 컬렉션 무대로 삼아 눈부신 햇살과 관능적인 지중해 바람을 완벽한 미학으로 승화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