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바이를 담은 프레임
새벽 3시 30분, 에미리트항공 편으로 두바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도시는 잠들어 있고, 환하게 켜진 공항의 불빛만이 현실감을 부여했다. 호텔에 짐을 내려놓고 잠시 몸을 눕혔다가 눈을 뜨자마자 두바이 프레임으로 향했다. 여행을 시작할 때 도시 전체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높은 장소부터 가면 도시의 아우트라인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2018년에 완공된 두바이 프레임은 이름 그대로 도시를 ‘보는 방식’을 건축으로 구현한 구조물이다. 평행하게 솟은 두 개의 타워를 93m 길이의 투명 유리 다리가 연결하며, 전체 높이는 약 150m에 이른다. 최고, 최대라는 수식어를 반복적으로 갱신해온 두바이의 서사와 정확히 맞물리는 상징물이다.
입구의 하층부는 두바이의 과거로 시작된다. 몇 세기 전 데이라(Deira)와 버 두바이(Bur Dubai) 일대의 골목 풍경이 미디어아트와 사진, 실물 크기의 세트로 재현되어 있다. 향신료 상점, 수공예품 가게, 낮은 흙빛 건물들이 석유 시대 이전의 두바이를 조용히 상기시킨다.
엘리베이터는 짧은 시간 안에 48층 전망대로 올라선다. 문이 열리자 시야는 즉각적으로 분할된다. 북쪽으로는 올드 두바이의 낮은 건물들과 데이라 구시가지, 아라비아만의 수평선이 펼쳐진다. 남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분위기는 완전히 바뀐다. 마천루가 밀집한 신도시, 두바이 마리나의 고층 빌딩군, 그리고 그 너머로 사막의 모래언덕이 이어진다. 한 도시 안에 공존하는 시간대가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전망대의 핵심은 중앙을 가로지르는 투명 유리 다리다. 크리스털처럼 맑은 바닥 아래로 도시가 그대로 드러난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하늘 위를 걷는 듯 아찔하다. 이 아찔함은 도시 위에 서 있다는 물리적 사실을 체감하게 만든다. 반대편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 전시는 미래로 이동한다. 우주선을 닮은 이동 수단, 하늘을 나는 자동차, 유기적으로 연결된 초고층 건물들이 빠른 템포의 영상으로 이어진다. SF적 상상력에 기반하지만, 두바이의 현재를 떠올리면 완전히 허구로만 여겨지지 않는다. 두바이 프레임은 단순히 높은 구조물이 아니다. 과거, 현재, 미래를 하나의 시선 축 위에 배열한 건축물이다. 도시를 프레임에 넣어 보여주겠다는 발상은 두바이의 가능성을 증명한다.

두바이에서 만나는 미래
사이키델릭한 둥근 모양의 외계 생명체 같은 건물, 현시점 두바이에서 가장 핫한 곳을 꼽으라고 하면 바로 ‘미래박물관(Museum of the Future)’일 것이다. 2022년 2월 22일 개관한 미래박물관은 독특한 외관이 먼저 눈길을 끈다.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활동하는 건축가 숀 킬라가 디자인한 박물관은 높이 77m의 둥근 고리 모양, 외벽은 1024개의 스테인리스스틸 패널을 이어 붙여 완성했다. 이 건물에서 단연코 눈에 띄는 건 바로 이색적인 아랍어 캘리그래피다. 외벽에 새겨진 글귀는 셰이크 모하메드 빈 라시드 알막툼(Sheikh Mohammed bin Rashid Al Maktoum)의 시 구절로, 두바이 국왕이 전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트러스형 구조는 인류를, 그 위의 녹색 언덕은 지구, 가운데 빈 공간은 알려지지 않은 미래를 상징한다. 총 7층으로 된 박물관은 전시실, 몰입형 극장, 연구실, 어린이 전용 공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둥 없이 설계된 도넛형 구조의 건물에 들어선 후 캡슐처럼 생긴 엘리베이터에 타면 그때부터 시간 여행이 시작된다. 가이드는 지금이 2071년이라고 말하고, 우주선(실상은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으면 지구에서 600km 떨어진 우주정거장(실상은 5층)에 도착한다. 미래 도시, 우주정거장, 증강현실 등 차세대 솔루션이 어떻게 삶을 바꿀지 보여주는 몰입형 전시와 인터랙티브 체험을 할 수 있다. 우주복을 입고 우주를 유영하는 가상 체험도 가능하다.
미래박물관에서 가장 흥미로운 공간은 식물, 동물, 미생물 등 2400여 종의 다양한 유전 정보를 저장해놓은 ‘생명의 도서관(Vault of Life)’이다. 과거에 존재했지만 멸종한 생물과 현존하는 종의 표본이 유리병에 담겨 천장부터 바닥까지 전시돼 있다. 어떤 종인지 궁금하면 인터랙티브 터치스크린을 통해 종들의 유전적 구성과 생태학적 역할까지 상세한 정보를 탐색할 수 있다. 단순 전시가 아닌 과학, 예술, 기술을 융합해 ‘생명의 다양성’과 ‘미래의 생태 보존 가능성’을 시각적, 체험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박물관을 둘러보다 휴식이 필요하면 디지털 휴식 공간이자 미래형 명상 룸인 ‘알 와하(Al Waha)’로 가면 된다. ‘알 와하’는 아랍어로 ‘오아시스’라는 뜻으로 자연의 소리와 빛만으로 스트레스가 완화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3층 우주 존 입구에서 연결되는 외부 공간에서 건물과 함께 인증샷 남기는 것도 잊지 말 것. 2026년 5~8월엔 리노베이션 공사로 휴관할 예정이니 방문 계획이 있다면 참고하자.

세계 최고층 건물의 위용
높이 828m, 2010년 완공된 이후 지금까지 세계 최고층 건물이라는 기록을 유지하고 있는 부르즈 할리파는 명실공히 두바이 최대의 랜드마크다. 두바이에 와서 부르즈 할리파의 전망대를 오르지 않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세계에서 가장 빠른 엘리베이터는 35초 만에 나를 125층에 올려놓는다. 124층과 125층, 148층에는 전망대 ‘앳더톱’ 이 자리한다. 124층은 야외 전망대가 있어 바깥 공기를 쐬며 시원하게 두바이의 풍광을 감상할 수 있고, 148층은 라운지 형태로 운영된다.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싶다면 해가 지기 직전 타임을 노리는 것이 좋다. 해가 지기 전, 광활한 사막과 초고층 빌딩 숲, 바다까지 이어지는 장면을 한눈에 담아둔다. 자리를 옮겨가며 사진 촬영을 하다 보면 어느새 밖은 어두워진다. 금속성 광선을 그리며 뻗은 도로와 화려한 빛으로 채워진 고층 건물이 시야를 채운다. 가까이에서는 두바이 몰을 감싸는 분수 쇼의 물기둥이 치솟고, 멀리서는 페르시아 항만의 불빛이 점처럼 흩어진다. 사막 위에 세워진 메트로폴리스는 밤이 될수록 선명해진다.


두바이의 시간을 걷다
두바이 현지 가이드 무함마드 라비브(Muhammad Labeeb)가 버스 안에서 웃으며 말을 건넨다. “왜 두바이라고 부르는지 아세요? ‘Do buy.’ 살 게 너무 많아서요.” 농담처럼 던진 말이지만, 초고층 빌딩과 거대한 쇼핑몰로 대표되는 두바이를 떠올리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렇다면 화려함 뒤편, 평범한 두바이 로컬의 일상과 시간을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요? 올드 두바이로 가세요.”
자본과 첨단기술이 만들어낸 미래적인 도심을 지나, 올드 두바이로 불리는 알 파히디(Al Fahidi) 지구에 들어서는 순간 풍경은 급격히 바뀐다. 마치 시간의 층위를 통과한 듯 산호석과 회반죽으로 쌓은 낮은 건물들이 좁은 골목을 따라 늘어서 있다. 낯설지만 동시에 영화 속에서 수없이 보아온 장면이라 그런가. 내가 막연히 떠올렸던 ‘아라비아’의 이미지와 정확히 겹쳐지는 풍경에 안도감이 든다.
알 파히디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페르시아 상인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주거 지역으로, 현재는 역사·문화 지구로 보존되고 있다. 골목을 걷다 보면 지붕 위로 나무 막대기가 삐죽삐죽 솟은 탑 같은 구조물을 자주 마주치게 된다. 무함마드 라비브가 설명한다. “‘바르질(barjeel)’이라 불리는 전통 바람탑이에요. 뜨거운 공기는 위로 배출하고, 시원한 바람은 아래로 끌어들이는 자연 환기 장치라고 할 수 있죠.” 이는 에어컨이 없던 시절 사막 기후에 적응한 두바이인들의 지혜를 보여준다. 바르질과 중정(courtyard)을 중심으로 한 건축은 공동체적 삶과 기후 순응형 생활방식을 그대로 담고 있다. 골목 사이사이에는 향신료와 수공예품, 전통 의상을 파는 상점과 작은 갤러리, 카페가 자리 잡고 있다. ‘아라비아 티 하우스’에서 전통차와 케이크로 한낮의 더위를 식힌 뒤, 근처의 ‘커피 뮤지엄’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입구에서 전통 의상을 입은 남성이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건네며 말한다. “‘입장료 10디르함을 내면 커피 두 잔을 마실 수 있어요.” 커피를 받아 마신 후 한 잔 더 마시고 싶어 안으로 들어간다. 전통 가옥을 개조한 공간에는 빈티지 로스터와 커피 포트 등 커피 문화의 역사를 보여주는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커피의 기원과 아라비아 커피 문화에 대해 살펴보며, 향긋한 커피 한 잔을 천천히 음미한다.
골목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친 XVA 호텔 & 갤러리는 2003년 문을 연 부티크 호텔이자 현대미술 갤러리다. 전통 양식의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모랫빛 벽과 커다란 나무로 둘러싸인 중정이 펼쳐진다. 이 건물 역시 바르질 구조로 설계되어 있어 에어컨 없이도 비교적 쾌적하다. 갤러리 옆 소품 숍을 둘러본 뒤, 언젠가 다시 두바이에 온다면 이곳에 머물러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해 질 무렵, 올드 두바이는 한층 더 운치 있어진다. 전통 목선 아브라에 몸을 싣고, 시간의 흔적이 내려앉은 건물과 잔잔한 물 위로 내려앉는 황혼을 바라본다.

두바이 전통문화를 체험하다
두바이 전통문화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면 셰이크 모하메드 문화이해센터(Sheikh Mohammed Centre for Cultural Understanding, SMCCU)가 좋은 선택지가 될 것이다. 알 파히디 역사 지구에 위치한 이 비영리단체는 에미리트의 문화, 관습, 종교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문화적 장벽을 낮추는 것을 목표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문화 해설가 사라 유세프(Sara Yousef)의 안내로 전통 식사를 즐기는 ‘문화 식사’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유세프는 아랍식 커피 가와(qahwa)와 대추야자로 손님을 맞이한다. “아랍에미리트에서 커피는 환대의 상징으로, 손님을 만나면 가장 먼저 대접하는 것이 예법입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자, 향신료 시장에서 맡았던 익숙한 향이 떠오른다. 사프란과 카다멈이 어우러진 쌉쌀한 풍미다. 식사는 테이블이 아닌 붉은 카펫 위에서 이루어진다. 닭고기와 채소, 향신료를 넣고 끓인 국물에 얇은 반죽을 더한 치킨 마르구가(chicken margoga), 통밀과 고기를 오래 끓여 만든 죽 형태의 하리스(harees), 닭고기와 향신료를 쌀과 함께 조리한 치킨 비리야니(chicken biryani)가 차례로 놓여 있다. 음식을 나누어 담은 뒤, 유세프의 설명을 듣는다. 두바이를 처음 찾은 여행객들의 ‘두바이 여성들이 40℃를 넘나드는 더위 속에서도 전통 의상 아바야를 입는 이유, 그리고 아바야가 왜 검은색인가’에 대한 질문에 유셰프가 답한다. “아바야는 외출용 겉옷이에요. 장 보러 갈 때는 티셔츠 위에 아바야를 입고, 파티에 갈 때는 화려한 파티용 드레스 위에 걸치죠. 역사적으로 두바이의 주요 수입원은 진주 채취였는데, 1920~1930년대 일본의 양식 진주 등장으로 경제가 급격히 침체되었어요. 그 과정에서 옷을 자주 새로 마련하기 어려워졌고, 수선 자국을 가리기 위해 얇고 저렴한 검은 천을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검은색은 비침을 막는 실용적인 선택이기도 하고요.”
프로그램의 끝자락, 유세프가 향로 마브카라(mabkhara)에 향을 피운다. 축복을 기원하며 작별을 알리는 전통 의식이다. 백단향과 머스크의 은은한 향이 공간을 채운다. 여행자가 아닌, 누군가의 집에 초대받은 손님이 된 듯한 환대 속에서 이 낯선 도시가 더 가깝게 느껴졌다.


사막 사파리 투어
두바이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것 중 하나는 바로 사막 사파리 투어다. 사륜구동차를 타고 사막 위를 질주하는 ‘듄 배싱’은 투어의 핵심 액티비티다. 도심에서 벗어나자마자 차창 밖의 풍광이 순식간에 변했다. 한 시간 정도 달린 후 사륜구동차로 갈아탔다. 모래바람에 시야가 흐려지더니 붉은 사구가 눈앞에 나타난다. 한 시간 전만 해도 거대한 쇼핑몰에서 넋을 놓고 있었는데 지금은 낙타들이 내 앞을 질주한다.
“안전벨트를 하고, 손잡이를 꼭 붙잡으세요. 바람이 불면 모래가 입으로 들어갈 수도 있으니 스카프로 입을 가리는 게 좋아요.” 가이드의 말에 알 파히디에서 산 천으로 얼굴을 둘렀다. 가파른 언덕을 묘기라도 부리듯 지나갈 때마다 엉덩이가 공중부양하듯 붕 떠오른다. 모래의 파도를 타고 달리는 기분은 썰매를 타고 달리는 것보다 몇 배는 짜릿하다. “앞으로 두 시간가량 화장실에 못 갑니다. 볼일이 있으신 분은 지금 해결하세요.” 가이드가 세워준 곳은 사막 한가운데, 천연 화장실. 듄 뒤에서 용무를 해결한 후 아무 일 없었던 듯 차에 오른다. 잠시 멈추고 차에서 내리니 사막의 능선 뒤로 붉게 타오르는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조련사의 지시에 매가 석양으로 물든 사막 위로 용맹스럽게 날갯짓을 한다. 베두인에게 매는 중요한 의미다. 사막에서 물이나 먹이를 찾을 때, 위치를 찾거나 길을 잃지 않도록 돕는 데 사용된다.
다시 차에 올라 베두인 캠프로 이동한다. 캠프에서는 낙타 타기, 모래 썰매, 헤나 핸드페인팅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태어나 처음으로 낙타 위에 올랐다. 낙타는 천연덕스럽게 눈을 끔뻑이며 느릿느릿 모래 위를 거닌다. 바비큐와 풍성하게 차린 현지 음식으로 배를 채운 후, 두바이 전통 춤과 불 쇼를 관람한다. 모래 위 카펫에 누워 머리 위로 쏟아지는 별빛을 바라본다. 겨우 몇 시간 전에 떠나온 도시의 기억은 사라졌다. 사막에서 ‘지니’는 발견하지 못했지만 소원 하나쯤은 이루어진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