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onpo, Shaped by Small Shops
작은 곳들의 선명한 취향, 전포동




2017년 〈뉴욕 타임스〉가 선정한 ‘52 Places to Go’에 부산이 선정됐다. 당시 부산을 “저평가됐던 한국의 제2도시가 핫 스폿으로 변하고 있다”고 소개하면서, 그 변화를 보여주는 장소 중 하나로 전포카페거리를 꼽았다. 인근 서면의 번화가와 달리 낮은 건물과 좁은 골목이 남아 있던 전포동이 새로운 분위기를 찾아 들어온 젊은이들의 활기로 가득 차던 시기였다. 전포커피축제도 그해에 처음 열렸다. 10년이 지난 지금, 그때 〈뉴욕 타임스〉가 바라본 전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카페거리에서는 드물게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이브브류어스였다. 세월이 묻은 벽과 오래된 가구 사이에서 주인장은 묵묵히 커피를 내리며 말했다. “지금도 손님이 꽤 많지만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되죠. 2017년을 기점으로 동네가 유명해지면서 임대료와 권리금이 빠르게 올랐고, 젠트리피케이션이 시작됐어요. 이 동네에서 디저트 없이 커피만 파는 건 정말 무모한 결정이었죠. 99%는 문을 닫았거든요.” 그 무모한 선택을 10년 넘게 이어온 그는 말을 덧붙였다. “결국 취향이 확실한 곳만 살아남았어요.”
나이브브류어스를 나와 카페거리 끝자락에 있는 구프로 향했다. 구프는 음악을 들으며 커피와 술, 디저트를 즐기는 공간이다. 선곡에 장르의 경계는 없지만 요즘은 아프리카 음악을 자주 튼다는 대표의 말을 들으며 일본인 셰프가 개발한 오키나와식 푸딩을 맛봤다. 농도 짙은 단맛이 먼저 퍼지고 탱글하면서도 부드러운 질감이 입안에 오래 남았다. 또 다른 시그너처인 말차 칵테일을 마시며 음악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 내가 있는 곳이 서울에서 400km 가까이 떨어진 부산의 작은 동네라는 사실을 잠시 잊는다. 구프의 대표는 지금의 전포를 이렇게 설명했다. “저는 전포동의 상권이 쇠퇴한 게 아니라 오히려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다고 느껴요. 전포대로를 건너가 보세요. 재미있는 브랜드도 많고 분위기가 또 다르거든요.” 실제로 10년 새 전포의 변화는 좁은 골목에서 동네 전체로 퍼졌다. 처음 전포카페거리라고 불리던 곳은 놀이마루와 전포성당 주변의 비교적 좁은 구역이었다. 이 일대가 포화 상태에 접어들자 가게들은 철물상과 공구상이 모여 있던 부산진소방서 주변으로 옮겨갔고, 다시 전포대로를 건너 전포1동의 주택가까지 넘어갔다. 이곳에는 ‘전포사잇길’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붙었다. 전포커피축제 역시 2022년부터 행사 범위를 기존 카페거리에서 전포사잇길까지 넓혔다. 상권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전포동을 찾는 이유도 조금씩 달라졌다. 초기의 전포가 주로 ‘커피와 예쁜 디저트를 즐기러 가는 곳’이었다면, 지금은 음식과 패션, 빈티지와 음악, 소규모 브랜드까지 다양한 취향을 찾아가는 동네가 됐다. 보노비스타는 이런 변화를 잘 보여주는 곳이다. 이곳은 온라인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세컨드핸드 숍으로, 2018년 전포사잇길에 오프라인 쇼룸을 마련했다. 매장 안에는 실제 화단이 조성돼 있고 식물은 계절과 콘셉트에 따라 3~4개월마다 바꾼다. 식물이 달라질 때마다 그 분위기와 어울리도록 빈티지 의류도 새롭게 선별한다.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있는 발란사 역시 전포의 변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기 어렵다. 2008년 경성대 앞 작은 매장에서 수입 의류를 판매하는 셀렉트숍으로 출발해 2018년 무렵 이곳에 자리 잡았다. 이후 리복과 푸마, 파리 생제르맹 같은 글로벌 브랜드와 협업할 만큼 영향력을 넓혔다. 글로벌 패션 플랫폼 HBX가 “오늘날 부산의 서브컬처를 이야기할 때 발란사는 그 중심에 있다”고 평가했을 정도다.
최근 전포에 등장하는 공간은 더 다양하다. 2026년 4월 문을 연 라디오 레볼루션리딩룸은 음악을 듣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직접 방송하고, DJ를 교육하며, 지역 음악인들이 만나는 커뮤니티 공간이다. 1997년 부산에서 시작한 국내 1세대 스트리트 패션 편집숍 카시나도 전포점을 열었다. 서울 망원동과 서촌, 성수동 등에서 공간을 운영해온 셀프 포토 브랜드 영카이브는 서울 밖 첫 지점을 부산 전포에 냈다.
10년이 흐른 지금의 전포는 더 이상 ‘카페거리’라는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곳이 됐다. 올해 10월에도 전포커피축제가 열릴 예정이다. 이름에는 여전히 ‘커피’가 남아 있지만, 축제가 펼쳐지는 거리와 주변의 풍경은 초반과 크게 달라졌다. 하나의 업종이 거리를 대표했던 시기를 지나, 좁고 깊은 공간들이 모여 동네를 이루고 있다.
Mangmi, Where Books and Art Linger
책과 예술이 머무는 골목, 망미동





한동안 망미동은 부산에서도 일부러 찾아가는 동네는 아니었다. 재래시장과 오래된 주택가, 낮은 상가가 이어지는 조용한 생활권에 가까웠다. 망미동이 부산의 문화 동네로 알려지기 시작한 결정적인 계기는 2016년 문을 연 F1963이었다. 1963년 세워진 고려제강 수영 공장이 45년간 와이어를 생산하다가 2008년 가동을 멈춘 뒤, 2016년 부산비엔날레를 열면서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했다. 조병수 건축가는 공장의 높은 천장과 철골 구조를 남겼고, 그 안에는 전시와 공연, 책과 정원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들어섰다. 현재 F1963에는 테라로사 카페와 예스24 서점, 현대 모터스튜디오를 비롯해 전시와 공연이 열리는 석천홀, GMC 금난새 뮤직센터, 식물과 가드닝을 테마로 한 화수목, 소리길과 달빛가든, 유리온실 등이 자리한다. 커피를 마시고 책을 고르다가 전시를 보고 정원을 걷는 일이 한 공간 안에서 가능하다. F1963이 문을 연 뒤 사람들의 발길이 늘어났고, 인근 망미동의 조용한 골목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F1963을 지나 비콘그라운드가 자리한 고가도로 너머 서쪽으로 향하면, 본격적인 망미동의 변화가 눈에 들어온다. 주택가 곳곳에 숨어 있는 작은 독립서점과 갤러리, 책을 읽을 수 있는 카페들이 그 주인공이다. 최근 이 일대를 ‘망미단길’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여느 ‘~리단길’처럼 하나의 중심 거리를 따라 가게가 줄지어 있는 모습과는 다르다. 낮은 주택과 오래된 상가, 시장 사이로 문화 공간이 드문드문 흩어져 있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걷다가 뜻밖의 공간 하나를 발견하곤 한다. 그런 망미동의 현재를 잘 보여주는 곳이 현대미술회관이다. 이름만 들으면 규모가 큰 공공 미술관 같지만 실제로는 작은 골목에 자리한 독립 전시 공간이다. 부산의 젊은 작가를 비롯해 다양한 현대미술가의 개인전과 프로젝트를 꾸준히 선보여왔다. 내가 찾은 날에는 소설 〈짝수의 지배자〉에 등장하는 오브제를 실제 작품으로 제작한 박상호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었다. 망미동엔 작지만 알찬 갤러리가 많다. 현대미술회관과 인접한 아트랩은 미디어 아트와 실험적인 프로젝트를 보여주는 곳이다. 부산의 지역 작가와 청년 작가를 꾸준히 소개하는 이웰 갤러리도 있다. 카페이자 서점인 비온후 책방은 서점 안에 전시 공간을 만들어 주기적으로 전시를 연다. 동네에 포진된 작은 갤러리들이 저마다의 색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야트막한 오르막을 넘으면 모퉁이의 빨간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독립서점 ‘낙수의 언덕’이다. 한국문학과 시를 중심으로 예술과 철학, 영화에 관한 책을 다룬다. 이곳에서 단골들은 서로 안부를 묻고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한다. 초등학생 손님이 그린 그림이 벽에 붙어 있고, 동네 할아버지가 접어준 종이 작품도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 서점이 동네에 들어온 뒤 사람과 사람이 조금씩 연결되고, 그 흔적이 공간 안에 쌓여왔다. 낙수의 언덕 주인장이 추천한 가배향화 역시 망미동의 분위기를 닮았다. 노부부가 오래된 주택을 고쳐 만든 브루잉 카페이자 독서 공간이다. 책장이 놓인 실내와 나무가 자라는 마당이 있어 커피를 마시며 오래 머물기 좋다. “모든 커피는 남편이 내려요. 점드립으로 내리는데 주말이면 아무리 줄이 길어도 커피 한 잔에 얼마나 정성을 쏟는지. 가끔 ‘좀 빨리 내리지’ 하는 마음이 들 정도죠.” 가배향화 여주인의 말이다. 디저트는 딸이 직접 만든다. 블루베리 잼을 넣은 에그타르트가 인기이고, 여름이면 마당의 비파나무와 살구나무에서 딴 열매로 잼을 만들기도 한다. 가을에는 금목서 향이 마당을 채운다. 계절이 바뀌는 모습을 바라보며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로 주말이면 작은 주택이 제법 북적인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망미동은 한국사에서 무척 중요하게 평가되는 고려가요 ‘정과정곡’이 태어난 곳이다. 문인 정서(鄭敍)가 유배지에서 임금을 그리며 지은 노래다. “내 님믈 그리사와 우니다니, 산졉동새 난 이슷하요이다.” 고려 시대 문인은 망미동에서 노래를 남겼고, 지금은 사람들이 책을 읽고 그림을 건다. 시대와 형태는 달라졌지만 무언가를 쓰고 감상하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 묘하게 겹쳐 보인다. 커다란 복합문화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고, 시장과 주택가를 지나 책방에 들렀다 다시 몇 블록을 걸으면 작은 전시장을 만난다. 수백 년 전 문인이 한 편의 노래를 남긴 망미동에는 이제 수많은 사람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