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tecture
땅을 읽는 도시의 건축





부산의 건축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땅이었다. 산에서 바다로 급하게 떨어지는 경사, 오래된 어촌과 수원지, 바다를 메워 만든 땅과 도심 한가운데 남겨진 오래된 건물까지. 평평하고 반듯한 대지보다 굴곡진 땅이 훨씬 많았다.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건축물을 ‘어떻게 새로 지었는지’보다 ‘이 땅을 어떻게 해석했는지’가 더 궁금해졌다.
시작은 ‘도모헌’에서였다. 황령산 자락에 자리한 이곳은 1984년 대통령의 지방 숙소로 지어져 이후 오랫동안 부산시장 관사로 사용됐다. 건축가는 한국 현대건축 1세대로 꼽히는 김중업이다. 한때 ‘지방 청와대’라 불릴 만큼 일반인의 접근이 쉽지 않았던 공간은 2024년 누구나 방문할 수 있는 곳으로 바뀌었다. 리노베이션을 맡은 건축가 최욱은 원형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내부와 정원을 다시 설계했다. 그 결과 라운지와 강연장, 공유 오피스, 어린이 공간 등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 과거 권력에 의해 닫혔던 건물이 지금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문화공간으로 변모했다.
도모헌에서 재생된 건축물의 모습을 보았다면, 건축가 고성호의 작업에서는 땅을 해석하는 방식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오래된 어촌 마을의 풍경과 어우러진 ‘칠암사계’를 완성했고, ‘선유도원’은 경사진 땅을 따라 공간을 배치했다. 부산과 인접한 양산의 ‘성림목장’은 50여 년 된 폐목장의 축사를 살려 새로운 공간으로 바꿨다. 기장의 ‘물푸레 오시리아’는 담백한 ㅁ자 건물 가운데 중정이 있고 그 중심에 물푸레나무 한 그루를 두었다. 내부의 큰 창 너머로는 기장의 바다가 펼쳐진다. 용도나 목적은 다르지만, 이미 그곳에 있던 것을 설계의 출발점으로 삼았다는 점은 같다. 지금 부산에서 가장 명망 있는 건축가의 작품에서 반복되는 것은 건축보다 자연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었다.
경사가 심한 부산의 지형을 이용한 인상적인 건축물을 보고 싶다면 달맞이길의 ‘에케’로 향하면 된다. 독일어로 ‘모퉁이(Ecke)’를 뜻하는 이름처럼 대지는 경사진 삼각형의 모퉁이에 놓여 있다. 설계를 맡은 조호제 건축가는 땅을 평평하게 만드는 대신 경사를 이용해 공간을 배치했다. 저층에는 작은 상점들이 모여 있고, 위층에는 숙박 공간이 자리한다. 1층과 2층의 상점은 높이가 다른 각각의 도로에서 곧장 들어갈 수 있고, 가운데 중정과 외부 계단은 위쪽 길과 아래쪽 길을 연결한다. 건물 안을 통과하는 것이 곧 달맞이언덕의 경사를 오르내리는 일이 되는 셈이다. 건축물의 재료도 주변에서 찾았다. “근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빨간 벽돌 집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왔어요. 같은 계열의 색을 저층부 벽돌에 반영해 건축물이 동네에 스며들게 했어요.” 조호제 건축가의 설명을 들으며 에케를 둘러본다. 삼각형 경사지라는 까다로운 조건을 건축의 특징으로 바꾸고, 여러 방향에서 사람들이 들어오고 지나갈 수 있도록 만든 점이 흥미로웠다.
광안리 끝자락에 자리한 ‘밀락더마켓’은 또 다른 건축 방식을 보여준다. 고층 아파트가 빽빽하게 둘러싼 수변의 매립지에 2022년 들어선 건물은 주변과 달리 낮고 길게 뻗어 있다. 2층 규모의 건물은 붉은 벽돌과 거대한 철골 지붕으로 이루어져 있다. 높이 경쟁에 합류하는 대신 의도적으로 몸을 낮춘 것처럼 느껴졌다. 건물 안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은 광안대교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커다란 계단과 유리창이다. 음식을 사고, 공연을 보고, 사람을 만나는 복합문화공간이지만 결국 사람들을 한곳에 붙잡아두는 것은 그 너머로 펼쳐진 바다다. 건축이 새로운 풍경을 만드는 대신 이미 존재하는 부산의 풍경을 가장 잘 바라볼 수 있는 자리를 만든 것이다.
산과 바다 사이에 놓인 부산에서 평평하지 않은 땅과 오래된 흔적은 오히려 건축을 특별하게 만드는 조건이 됐다. 결국 건축을 따라 걷는 일은 새로운 건물을 구경하는 것보다 도시가 가진 땅의 모양과 그 위에 쌓인 이야기를 읽는 일이었다.
Music
성장하는 부산 인디신




부산에 도착한 날 밤, 부리나케 달려간 공연장 ‘유기체’에서 밴드 단감자의 무대를 즐겼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그들은 좀처럼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듯했다. “오늘따라 관객들 반응이 좋아 더 신나게 연주했어요.” 리더이자 보컬과 기타를 맡은 김태현이 말했다. 마지막 곡에서 기타 한 대를 부숴버린 직후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단감자 멤버들은 평일이면 각자의 일터로 돌아간다. 유아용품 판매원부터 대학 연구원까지 직업도 다양하다. 목요일이면 모여 합주하고, 주말이면 다시 악기를 든다. 결성된 지 이제 1년 남짓. 첫 공연도 유기체에서 했고 지금까지 가장 자주 오른 무대 역시 이곳이다. 김태현은 웃으며 “우리는 유기체가 낳은 밴드”라고 덧붙였다.
부산에 도착한 첫날부터 인디 신에 제대로 빠져버렸다. 가벼운 호기심은 오히려 더 깊은 궁금증으로 바뀌었다. 광안리에 자리한 유기체에서는 신인 밴드부터 싱어송라이터, 어쿠스틱 공연까지 크고 작은 무대가 계속 열린다. 무대와 객석의 높낮이를 없애 몰입감을 높였다. ‘루키 스테이지’, ‘유기체 라이브’, ‘연결과 흐름’ 등 프로젝트 공연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단감자를 비롯해 912B, 동방재활용, 비제로 같은 부산의 신생 팀들도 여러 차례 무대에 올랐다.
부산 인디 신의 발전을 말할 때 경성대 앞 ‘오방가르드’도 빼놓을 수 없다. 2018년 문을 연 이곳은 출발부터 인디 신과 맞닿아 있다. 정아윤·이승철 공동대표는 직접 밴드 활동을 했고 라이브 클럽에서도 오랫동안 일했다. “당시 부산에서는 밴드 수가 줄고 공연장도 하나둘 문을 닫고 있었어요. 갈 데가 없으니 우리가 한번 만들어보자고 시작한 거예요.” 정아윤 대표의 말이다. 지금 오방가르드의 무대는 어느 한 장르에 머물지 않는다. 인디 록과 펑크, 메탈은 물론 실험 음악과 모듈러 신스까지 다양하다. 이승철 대표는 이를 ‘올카인드’라고 표현했다. “서울처럼 공연장이 많지 않은 지역에서 한 장르만으로 공간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죠. 하지만 덕분에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한 공간에서 연주돼요. 올봄에 열린 8주년 공연에만 39팀이 참여했습니다.” 오방가르드의 무대를 거쳐간 이름들을 따라가다 보면 부산 인디 신의 현재도 알 수 있다. 보수동쿨러, 소음발광, 해서웨이 같은 부산 밴드들이 오방가르드에서 공연했고, 서울과 해외 뮤지션들도 부산 공연을 위해 이곳을 찾는다. “코로나19 이후 새로운 부산 밴드가 늘고 서울과 해외를 오가는 공연도 훨씬 활발해졌어요. SNS를 보고 부산 공연을 보기 위해 서울에서 내려오는 이도 많죠.” 정아윤 대표는 이런 흐름을 보여주는 밴드로 세이수미를 꼽았다. 2012년 부산에서 결성해 광안리를 기반으로 활동해온 이들은 해외 투어와 국제 페스티벌을 오가면서도 지금까지 부산을 활동의 중심으로 두고 있다.
조금 더 오래된 음악 공간을 만나고 싶다면 ‘문화공간 노가다’로 향하면 된다. 노가다는 2008년 경성대 인근 문화골목에 자리를 잡았다. 공간을 설계하고 처음 운영한 최시훈 대표의 아버지는 대학에 들어간 1977년부터 LP를 모았고, 그 수집은 아들에게 이어졌다. 지금 이곳에는 LP 약 1만2000장과 CD 1만 장이 쌓여 있다. 재즈와 레게부터 최신 인디 음악까지 장르도 다양하다. 오래된 주택을 이어 붙인 내부에는 폐선박에서 가져온 앵커와 펌프 손잡이, 구명 튜브와 둥근 선창까지 남아 있다. 부산이라는 도시의 시간이 음악과 함께 켜켜이 쌓인 공간처럼 느껴진다. 흥미로운 것은 오랫동안 음악을 듣는 장소였던 노가다가 최근에는 음악을 연주하는 장소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원래 청음 중심으로 운영됐지만 젊은 관객들을 위해 지난해부터 공연 장비를 들였어요. 어쿠스틱과 소프트 록, 직장인 밴드 등의 공연을 열었죠.” 최시훈 대표의 말이다.
부산의 인디 신은 몇몇 유명 밴드의 이름만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다. 연주할 곳을 만들고, 관객을 모으고, 다음 밴드에게 다시 무대를 내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부산의 음악은 작은 무대와 그 무대를 지켜온 사람들 사이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Visual Art
부산에 미술이 머무는 방식




부산의 미술을 알고 싶다고 무턱대고 큰 미술관부터 찾고 싶진 않았다. 오히려 한 도시에서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온 화랑과 한 분야를 집요하게 파고든 사립 미술관, 한 작가를 위해 지어진 공간, 혹은 뒤늦게 부산을 새로운 거점으로 선택한 갤러리가 흥미로울 것 같았다.
그 시작점으로 ‘조현화랑’을 택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1989년 부산 광안리에서 ‘갤러리 월드’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조현화랑은 정창섭, 박서보, 이우환, 윤형근, 김기린 등 한국 현대미술의 주요 작가들을 꾸준히 소개해왔다. 지금처럼 전시를 보기 위해 부산과 서울을 오가는 일이 자연스럽지 않은 시절이었다. 조현화랑이 선택한 작가와 전시는 당시 부산 관객이 동시대 미술을 접하는 중요한 통로였다. 광안리에서 문을 연 화랑은 1999년 해운대를 거쳐 2007년 달맞이언덕으로 자리를 옮겼다. 장소는 달라졌지만 30년 넘게 부산에서 전시를 이어오며 새로운 작가를 소개하고 지역에서 활동한 작가들을 꾸준히 조명해왔다.
조현화랑이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부산으로 가져왔다면, 2007년 문을 연 고은사진미술관은 사진이란 한 장르만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국내외 사진가의 전시뿐 아니라 작품 수집과 아카이빙, 신진 작가 발굴, 출판과 연구를 이어오고 있다. “사진은 찍히는 순간보다 그 이후의 과정이 긴 매체입니다. 수집하고 분류하고 보존하고 다시 들여다봐야 비로소 한 시대의 기록이 되죠.” 고은사진미술관 곽보송 학예사의 말처럼 이 미술관은 사진을 보여주는 장소를 넘어 거대한 아카이브가 되어가고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두 공간이 모두 민간의 힘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조현화랑은 부산을 대표하는 민간 화랑으로 긴 시간을 버텼고, 고은사진미술관은 동일고무벨트 창업주 김도근 회장의 장학 사업에서 출발한 고은문화재단이 만들었다. 부산의 미술은 그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그 흐름에 공공기관이 합류한 대표적인 사례가 2015년 문을 연 ‘이우환 공간’이다. 부산시는 2011년부터 이우환의 개인 미술관 건립을 추진하며 여러 차례 작가를 찾아갔다. 처음에는 고사했던 이우환도 부산시의 지속적인 제안과 중학교 시절을 부산에서 보낸 인연 등을 계기로 2013년 건립 협약을 맺었다. 부산시립미술관 앞에 낮게 자리한 이 건물은 이름부터 미술관이 아니라 ‘공간’이다. 이우환은 입지 선정부터 건축 기본 설계와 디자인에 참여했고, 건물의 높이와 공간 구성은 물론 마감재와 조명, 집기, 작품 한 점 한 점의 위치까지 직접 신경 썼다. 공간 안으로 들어서면 그의 작업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된다. 1층에서 눈여겨볼 작품은 2015년 작 〈관계항-좁은 문〉이다. 커다란 철판과 자연석을 한 공간 안에 배치한 조각으로, 작품을 멀리서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관객이 작품 사이를 직접 지나게 한다. 2층에는 1970년대부터 이어진 대표적인 회화 연작이 펼쳐진다. 그중 1974년 작 〈점으로부터〉는 붓에 묻힌 안료가 반복되는 점을 따라 서서히 옅어지는 이우환의 초기 회화를 대표한다. 조각에서 회화까지, 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한 건물 안에서 차례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이 공간의 가장 큰 매력이다. 2018년에는 부산 미술의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또 하나의 공간이 생겼다. 한국 현대미술과 국제 미술시장의 주요 작가들을 소개해온 국제갤러리가 설립 이후 처음으로 서울 밖인 부산에 문을 열었다. 조현화랑이 부산에서 출발해 바깥으로 영역을 넓혔다면, 국제갤러리는 이미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한 뒤 부산으로 들어왔다. 구본창을 시작으로 하종현, 슈퍼플렉스, 다니엘 보이드, 칸디다 회퍼 등 국내외 작가들의 전시가 이어졌다. 무엇보다 국제갤러리가 자리 잡은 곳이 F1963이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와이어를 생산하던 고려제강의 옛 공장은 지금 공연장과 서점, 전시장과 갤러리가 모인 문화공간이 됐다. 오래된 산업공간에 동시대 미술이 자리 잡은 풍경 역시 부산 미술의 변화를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부산에서의 미술 탐험은 달맞이언덕에서 해운대를 지나 망미동의 오래된 공장까지 이어졌다. 그 공간들과 작품 너머로 부산의 시간이 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