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하이의 중심을 관통하는 난징루(南京路)에서 서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인파를 따라 아치형 육교에 오르자 초현대적 마천루 사이로 황금빛 지붕을 인 징안사(静安寺)가 모습을 드러냈다. “삼국시대 오나라에서 시작돼 1700여 년간 상하이의 영험한 기운을 지켜온 고찰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전 세계에서 단위면적당 임대료가 가장 비싼 상업지구 중 한가운데 서 있다는 사실이죠.” 가이드의 설명이 이어진다. 사진으로 수없이 접했던 풍경임에도 거대한 빌딩 숲과 고풍스러운 사원의 기묘한 공존을 마주하니 이질감이 느껴져 잠시 말을 잃었다.
징안사에서 난징시루(南京西路)로 향했다. 본격적인 징안구(靜安區)의 활기 속으로 접어들었다. 19세기 말 조계지 시절부터 ‘상하이의 샹젤리제’라 불리며 서구 문물이 가장 먼저 당도한 상업의 중심지다. 어느새 최근 가장 뜨거운 곳으로 떠오르는 장위안으로 들어섰다. 독특한 주거 양식 건축인 시쿠먼(石庫門) 지구였던 이곳은 이제 루이비통, 디올, 구찌, 셀린느, 모엣&샹동, 불가리 등 세계적인 럭셔리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로 옷을 갈아입었다. 상하이 로컬부터 전 세계 여행자까지 시쿠먼 양식의 저택과 럭셔리 브랜드의 콜라보를 즐기러 줄지어 서 있다.
이러한 변화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1990년대 대대적인 경제 개혁과 함께 징안은 단순한 쇼핑가를 넘어 금융과 상업, 디지털을 아우르는 핵심 거점으로 설계됐다. 중국 정부는 징안에 네 개 노선을 교차시키는 한편, 낡은 저택의 소유권을 기업에 부여했다. 덕분에 건물 한 채에 입주한 기업이 내는 세금만 합쳐도 1년에 1억 위안(약 190억원)이 넘는 빌딩을 일컫는 ‘백억루(百億樓)’들이 무수히 자리했다. 명품 브랜드들은 100년 된 옛 저택을 허물지 않고 오히려 큰돈을 들여 세련된 매장으로 고쳐 사용했고, 이 과정에서 낡은 골목은 명품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특별한 장소로 탈바꿈했다. 그 진면목은 화려한 외벽 뒤편, 실핏줄처럼 얽힌 전통 골목을 일컫는 ‘룽탕(弄堂)’ 안에 숨어 있다. 어느 룽탕 초입에서 자전거 복장을 갖춰 입고 에스프레소에 몰두하던 청년과 인사를 나눴다. 로컬 사이클링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그는 상하이 라이더들의 성지인 ‘라파 상하이 클럽하우스(Rapha Shanghai Clubhouse)’의 바리스타다. “징안은 상하이에서 가장 밀도 높은 에너지가 모이는 곳입니다. 중국 내에서도 트렌드에 가장 민감하죠. 젊은 셰프와 바리스타들이 오래된 건물의 골조를 살려 실험적인 공간을 열고 있어요. 과거의 뼈대 위에 트렌디한 감각을 이식하는 실험이 매일같이 벌어지는 셈입니다.”
징안 일대는 중국 현대문학의 거장이자 소설 <색, 계>의 작가 장아이링(張愛玲)이 머물며 집필에 몰두했던 문학적 성지이기도 하다. 그녀가 거닐던 낡은 아파트 근처에는 이제 고해상도 모니터를 켠 디지털 크리에이터와 패션 디자이너의 작업실이 공존한다. 빛바랜 벽돌 건물은 고유의 미감을 간직한 채 미니멀한 갤러리로 변모했고, 1000년 된 사찰의 향불 너머로 세련된 젤라토 가게가 불쑥 나타났다. 곳곳에서 마주하는 공사 현장은 파괴가 아닌 재생의 신호였다. 주말이면 한층 더 활기를 띤다. 사찰에서 예불을 올리는 노인과 그 앞마당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거나 팝업 스토어에서 쇼핑을 즐기는 젊은 세대가 한 프레임에 담긴다. “징안은 상하이의 과거와 미래가 가장 역동적으로 만나는 구역입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오리지널의 확장’이 이루어지는 곳이죠.” 편집숍 도에(DEO)의 대표이자 상하이에서 나고 자란 테리 주의 말은 이곳을 거니는 며칠간 내내 정답처럼 다가왔다. 로컬의 뿌리와 외래의 감각이 경계 없이 섞여 새로운 연대기를 써 내려가는 지역. 징안은 아시아에서 가장 힘차게 역동하는 상하이의 맥박 그 자체였다.
트렌디한 여행자를 위한 징안의 스폿
붉은 벽돌을 복원한 장위안의 화려함부터, 골목 깊숙이 숨어 있는 로컬의 투박한 맛까지. 지금 상하이에서 가장 뜨겁게 교차하는 10곳의 좌표.


취루 (Zui Lu)
전통 상하이 본토 요리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한 취루는 상하이 미식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다이닝 공간이다. 고전적인 레시피의 묵직한 틀은 유지하되, 정제된 플레이팅과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깔끔한 풍미로 미식가들 사이에서 높은 평판을 얻는 중. 특히 상하이식 삼겹살조림인 홍소육(红烧肉)은 테이블마다 놓이는 인기 메뉴. 징안의 화려한 풍경과 어우러지는 세련된 인테리어는 1930년대 상하이의 살롱을 현대적으로 복원한 듯한 우아함을 자아낸다. 자본이 모이는 지역답게 비즈니스 미팅은 물론, 격조 있는 한 끼를 원하는 현지인들의 예약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주소 301-302, 3rd Floor, No. 269 Wujiang Road
영업시간 10:30~14:30, 16:00~21:00


장위안 (Zhangyuan)
과거 ‘상하이 제일의 명원(名園)’이라 불리던 장위안은 현재 상하이에서 가장 정교하고 화려하게 복원된 시쿠먼 건축 단지다. 1882년 조성된 이래 상하이 근대 문화의 발상지 역할을 했던 이곳은 수년간 리노베이션을 거쳐 최근 글로벌 하이엔드 브랜드들의 플래그십 스토어로 거듭났다. 층고 높은 근대건축의 골조를 그대로 살린 내부는 과거의 유산과 현대의 자본이 기묘하게 공존하며 야외 박물관 같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단순히 쇼핑을 위한 장소를 넘어 상하이의 고유한 룽탕 문화를 세련된 방식으로 표현한, 상하이 도시 재생의 상징이다.
주소 6FH6+625, Taixing Road
영업시간 10:00~22:00(매장마다 상이함)


홍저이라오 훠궈 (Hong Jie Lao Huoguo)
상하이의 세련된 골목 안에서 정통 충칭식 훠궈의 진수를 선보이는 홍저이라오. 시간이 멈춘 듯한 거친 노포의 정취를 실내에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인테리어가 압권인 식당이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이들과 힙한 청년들이 낡은 나무 탁자에 둘러앉아 얼얼한 마라를 즐기는 모습이 묘하게 조화롭다. 코끝을 찌르는 진한 육수와 깊은 맛으로 유명해 주말에는 대기가 필수지만,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기다림의 수고를 금세 잊게 할 만큼 강렬한 중독성을 자랑하는 로컬들의 성지다.
주소 Building 4, Donghai Plaza, No. 20 Yuyuan East Road
영업시간 11:00~04:00

라파 상하이 클럽하우스 (Rapha Shanghai Clubhouse)
글로벌 사이클링 브랜드 라파의 아시아 최대 클럽하우스 매장. 단순한 자전거용품 매장을 넘어, 새벽 라이딩을 마친 자출족(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과 전문 라이더들이 모여 에스프레소를 즐기며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사랑방 역할을 한다. 세련된 사이클링 의류 사이로 바리스타의 손길이 바쁘게 움직이는 풍경을 통해 자유로운 상하이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행정구역상 쉬후이구(徐滙區)에 속하지만 징안구 경계에 맞닿아 있는 둥후루에 자리해 징안 여행과 함께 즐기는 것도 좋다.
주소 No. 20 Donghu Road, Xuhui District
영업시간 10:00~21:00


예런 미스터 젤라토 (Yeren Mr. Gelato)
자연주의 재료를 사용해 식재료 본연의 맛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수제 젤라토를 선보이는 곳으로 라파 상하이 클럽하우스에 인접해 있다. 계절별로 출시되는 독창적인 로컬 메뉴로 유명한데, 은은한 계화꽃 향과 발효된 쌀 음료가 섞인 오스만투스 라이스 와인(Osmanthus Rice Wine)이나 푸젠성(福建省)의 차를 베이스로 하는 랍상소우총(正山小種)이 인기. 전통 중식 디저트 식재료인 검은깨와 대추를 젤라토로 즐겨보는 것도 추천한다.
주소 No. 12 Donghu Road, Xuhui District
영업시간 10:00~21:30


쿠치나 디 다리오 (Cucina di Dario)
징안의 세련된 라이프스타일과 이탈리아의 클래식한 미학이 결합된 비스트로. 현지의 신선한 식재료와 정통 조리법이 만나 탄생한 요리와 섬세한 와인 리스트는 미식에 까다로운 상하이 사람들의 입맛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다리오 셰프의 독창성이 돋보이는 메뉴 ‘서클(Circle)’이 가장 인기인데, 관자와 갑오징어에 숙성된 화이트 발사믹으로 매리네이트한 청사과를 곁들여 산뜻한 단맛과 산미가 어우러진다. 봄 시즌에는 제철 갈치를 손으로 곱게 다져 부드러운 식감을 구현한 갈치 두부(Hairtail Tofu)도 추천 메뉴다. 징안에서 가장 뜨거운 레스토랑인 만큼 예약은 필수다.
주소 A101, Jingyue Plaza, No. 1101 Wuding Road
영업시간 18:30~24:00


도에 (DOE)
상하이를 대표하는 스트리트 문화의 발상지이자 로컬 편집숍인 도에는 이 도시 청년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대표하는 거점이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다’는 브랜드 철학처럼, 심플한 인테리어의 매장 안에는 깔끔한 로고가 들어간 자체 레이블 의류가 가득하다. 이 외에도 나이키, 아디다스, 뉴발란스의 신발이나 스투시, 에메 레온 도르의 의류 등을 큐레이션했는데 일반 매장에서는 보기 힘든 한정판 제품이 많다. 매장 가운데 자리한 카페와 한쪽 벽의 테이블, 길가의 노천 테이블은 상하이의 젊은 에너지가 모이는 커뮤니티 공간이기도 하다. 감각적인 패션 아이템은 물론 한국어에 능통한 직원도 있으니 빼놓지 말고 방문해보자.
주소 L102, No. 88 Tongren Road
영업시간 10:00~22:00


소프 가든 (Sof Garden)
동화처럼 아름답게 꾸민 정원을 따라 들어가면 ‘부드럽고 평온한 정원’을 지향하는 브런치 카페 소프 가든을 마주한다. 아이돌 스타 장원영이 방문해 더욱 유명해진 이곳은 마천루가 빽빽한 상하이 도심에서 만나는 뜻밖의 녹색 안식처 같은 레스토랑이다. 이탤리언 요리에 한국적인 맛을 가미한 브런치를 맛볼 수 있는 곳으로, 한국인은 물론 K-푸드에 관심이 많은 로컬 인플루언서들도 자주 찾는다. 김치를 가미한 파스타나 말린 돼지고기 파우더를 올린 상하이식 피자도 인기 메뉴. 실내외 모두 정성스레 꾸며 있어 어디서든 인생 사진을 남길 수 있다.
주소 No. 851 Julu Road
영업시간 10:00~24:00


위안 이즈 히어 (Yuan is Here)
빕 구르망에 선정됐던 유명한 대만 음식점의 상하이 지점. 장위안의 화려함 속에서 소박한 대만식 고기덮밥을 즐기기 좋은 곳이다. 잘게 다진 돼지고기를 간장 베이스의 비법 소스에 뭉근하게 졸여 밥 위에 얹어 낸다. 입안에서 녹는 비계의 고소함과 살코기의 짭조름함이 무척 조화롭다. 바삭한 튀김옷과 촉촉한 속살을 맛볼 수 있는 대만식 닭튀김 ‘옌수지’도 함께 맛볼 것. 빈티지한 홍콩 포장마차 감성을 그대로 재현한 노란 인테리어가 장위안의 붉은 벽돌과 어울리는데, 저렴한 가격 대비 뛰어난 맛과 독특한 분위기 덕분에 늘 젊은 층으로 북적인다.
주소 W7-1A, Zhangyuan, No. 188 Taixing Road
영업시간 11:00~23:00



징안사 (Jing’an Temple)
눈이 시릴 정도로 찬란한 황금빛 지붕을 머금은 징안사는 이 도시의 영적인 중심지다. 사찰 안으로 들어서서 가장 먼저 시선을 압도하는 것은 대웅보전에 안치된 은불(銀佛). 순은 15톤을 녹여 만든 이 거대한 불상은 종교적 숭고함을 뿜어낸다. 못을 사용하지 않고 나무를 짜 맞추는 목조 공법인 두공(斗栱) 양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지은 전각들은 지진에도 견딜 수 있는 견고함을 갖췄다. 내부 중정에는 소원을 빌며 동전을 던지는 커다란 향로가 놓여 있어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짙은 연기가 초고층 빌딩의 유리벽을 타고 흐르는 독특한 풍경을 감상해보자.
주소 No. 1686 Nanjing West Road
관람시간 07:30~1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