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흐르는 부산 - 헤이트래블 - hey!Travel


  • written by LEE JIHYE
  • PHOTOGRAPHY BY JANG EUNJU

예술이 흐르는 부산

Art in Motion: Busan

오래된 도시의 기억을 지우지 않은 채 새로운 미술과 건축, 음악이 끊임없이 흘러들고 서로 부딪히며 또 다른 장면을 만들어내는 도시. 지금 부산의 예술은 계속 진화 중이다.
  • written by LEE JIHYE
  • PHOTOGRAPHY BY JANG EUNJU
2026년 09월 04일
경성대 인근에 자리한 공연장이자 음악 감상 공간, 문화공간 노가다.
전포동 카페거리 모퉁이에 있는 구프. 음료와 칵테일, 시그너처 디저트를 즐길 수 있다.
감각적인 숍과 카페, 상층부의 숙박 시설이 한 건물에 채워진 에케.
카페 도요 3층의 창 너머로 펼쳐지는 영도 바다.
나이브브류어스의 브루잉 커피.
밀락더마켓 앞 광안리 수변 길을 달리는 사람들.
유기체 무대에서 열정적인 공연을 펼치는 밴드 단감자.
2026 부산 광안리 국제여자 비치발리볼대회가 한창인 광안리해수욕장.
한바탕 비가 지나간 뒤의 F1963. 넓은 야외 공간은 전시와 휴식은 물론 동네 주민들의 산책로로도 이용된다.

“이번 주말엔 공연 보러 부산에 가.” 시작은 친구의 말이었다. 주말마다 서울 마포구 일대의 공연장을 누비며 인디 밴드를 찾아다니던 그에게 “부산까지 가서 공연을 봐?”라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요즘 부산 인디 공연이 제일 재밌거든.”
그동안 내게 부산의 예술은 대개 영화로 기억됐다. 1996년 시작된 부산국제영화제는 이제 아시아 영화와 세계를 연결하는 중요한 플랫폼으로 성장했고, 매년 가을이면 부산은 자연스럽게 ‘영화의 도시’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하지만 부산의 예술을 영화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지금 이 도시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은 훨씬 넓고 다층적이다.
미술과 건축, 음악으로 시선을 넓히자 전혀 다른 부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래된 공장은 전시장과 공연장이 되고, 한동안 닫혀 있던 건물은 시민을 위한 문화 공간으로 돌아왔다. 골목에는 작은 갤러리와 독립적인 취향을 가진 가게들이 들어섰고, 공연장에서는 해외 무대를 오가는 밴드와 이제 막 음악을 시작한 팀이 같은 도시의 밤을 채운다.
검색창에 몇 글자만 입력해보면 이 변화를 주목하는 해외 매체의 기사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부산은 어느새 영화제를 넘어 동시대 문화와 예술이 움직이는 도시로 진화하고 있었다. 그 변화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장면 하나가 부산비엔날레다. <프리즈(Frieze)>와 <아트리뷰(ArtReview)>는 각각 2022년과 2024년 부산비엔날레를 조명하며 지역성과 장소성을 깊이 파고드는 전시의 태도에 주목했다. “두 번의 비엔날레를 거치며 부산은 서울의 대안이 아니라, 자신의 장소성과 역사를 동시대 미술의 언어로 풀어내는 독립적인 미술 도시로 인식되기 시작했어요.” 영도에서 만난 부산비엔날레 홍보팀 최지현 팀장의 말이다. ‘부산이기 때문에 가능한 미술’. 부산의 미술 신을 이해하는 데 이보다 명확한 설명은 없었다.
건축과 공간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감지된다. 영국의 디자인·건축 전문지 <월페이퍼(Wallpaper)>는 2026 디자인 어워드의 ‘올해의 도시’ 후보에 부산을 포함시키며 디자인과 건축을 통해 변화하는 도시의 모습에 주목했다. 직접 걸어본 부산에서는 그 변화가 훨씬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개방된 옛 관사 도모헌, 광안리 앞바다와 맞닿은 밀락더마켓, 골목의 작은 모퉁이를 감각적으로 활용한 에케, 바다와 건축을 함께 경험하게 하는 칠암사계, 그리고 폐공장을 복합문화공간으로 되살린 F1963까지. 서로 규모도, 쓰임도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과거의 흔적을 지워버리는 대신 새로운 쓰임을 더한다는 것. 부산의 변화는 새것으로 도시를 덮기보다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는 쪽에 가까웠다. 음악의 움직임은 더욱 역동적이었다. 앤디 워홀이 창간한 미국 문화예술지 <인터뷰(Interview)> 역시 부산의 활발한 음악 신을 소개하며 화려한 K팝의 이면에서 성장해온 인디 록 문화에 주목한 바 있다. 실제로 부산에서 만난 음악 신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뜨거웠다. 해외 투어를 다니는 밴드부터 이제 막 팀을 꾸린 직장인 밴드까지 무대에 올랐다. 작은 공연장과 바, 클럽을 중심으로 음악가와 관객, 기획자와 DJ가 서로 연결되며 하나의 생태계를 만들고 있었다.
부산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2026부산비엔날레를 이끄는 전시감독, 2025년 세계건축상(World Architecture Community Awards)에서 세개의 작품으로 동시 수상한 부산의 건축가, 부산을 상징하는 인디 밴드, 그리고 부산 1세대 로컬 DJ까지. 사람을 따라가자 공간이 보였다. 오래된 공장을 되살린 문화 공간부터 작은 갤러리와 공연장, 독립적인 취향으로 채운 숍, 전포동과 망미동처럼 최근 몇 년 사이 새로운 문화적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는 동네도 걸었다. 서로 다른 장르와 세대가 각자의 속도로 움직이지만, 그 흐름은 도시 곳곳에서 교차하며 하나의 커다란 문화적 풍경을 만들어낸다.
서울로 돌아온 뒤에도 전포동에서 만난 한 DJ의 믹스테이프를 한동안 반복해서 들었다. 부산의 예술을 경험하고 오니, 친구의 말이 조금 다르게 해석됐다. “요즘 부산이 제일 재밌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