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강, 바닷가에 건축을 놓는 법
건축가 고성호

부산에서 산 지 50년이 넘었어요. 오래 살았지만 여전히 볼수록 재미있는 도시예요. 흔히 부산 하면 바다부터 떠올리지만 바다 하나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거든요. 바다는 여수에도 있고 강릉에도 있잖아요. 부산에는 바다와 함께 낙동강과 수영강 같은 강이 있고 그 뒤로 산이 이어집니다. 산 때문에 길이 갈라지고 터널을 지나면 다시 강을 만나고, 강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바다가 나와요. 그게 부산의 큰 매력입니다.
건축을 할 때도 건물보다 땅을 먼저 봅니다. 새로운 건물이 들어오기 훨씬 전부터 그곳에는 산이 있었고 강이 흘렀고 바람이 불었잖아요. 건축은 나중에 들어온 존재예요. 바람이 어느 방향에서 부는지, 땅은 어떻게 생겼는지, 주변 자연과 어떻게 이어지는지부터 살핍니다. 새로운 건물이 그 환경과 어떤 관계를 맺을지가 중요해요. 건축물이 주변보다 두드러지기보다는 원래 있던 풍경 속으로 스며드는 편이 좋습니다.
건축을 아주 늦게 시작했어요. 공업계 고등학교를 나와 그때부터 설계를 배웠지만 기계나 금속 분야의 설계는 잘 맞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20대 초반 우연히 단독주택 정원이나 아파트 베란다를 꾸미는 일을 접했는데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이후 인테리어와 정원 일을 20년 가까이 했고, 본격적으로 건축 일을 시작한 건 40대 후반이었습니다. 건축을 전공한 사람들이 보통 20대부터 일을 시작하니 상당히 늦은 셈이죠. 지금은 건축가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지만 오랫동안 스스로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고 불렀어요. 건물만 설계하는 게 아니라 이 공간이 왜 필요한지, 누가 사용할지, 안에 무엇이 들어갈지까지 함께 다루기 때문입니다. 식당이라면 어떤 음식을 내는 곳인지, 집이라면 누가 어떤 삶을 살아갈지부터 알아야 해요. 목적이 정해져야 그에 맞는 공간이 나올 수 있습니다.
부산에서는 이런 접근이 더 중요합니다. 이미 산과 강과 바다가 도시의 모습을 만들고 있으니까요. 그 위에 건축물이 지나치게 존재감을 드러내면 오히려 부산 고유의 풍경이 희미해져요. 누군가 영도 산꼭대기에 도서관을 지어달라고 한다면 저는 건물을 높이 세우기보다 땅에 묻는 방법부터 찾을 겁니다. 영도는 산 아래에서부터 집들이 비탈을 타고 올라가며 지금의 모습을 만들었어요. 정상에 거대한 건물을 하나 올리면 원래의 지형이 보이지 않게 되잖아요. 건물은 길어야 50년, 100년을 가지만 그 산은 수만 년 동안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무엇이 먼저여야 하는지는 분명하죠.
영도의 깡깡이마을을 보면 이 이야기가 조금 더 분명해져요. 오래된 선박과 바지선이 정박해 있고, 배에 슨 녹을 망치로 두드려 벗겨내던 작업의 흔적도 남아 있습니다. 그 풍경 자체가 부산의 역사예요. 원래 그곳에 자리 잡은 주인공이 있는데 새로 들어온 건축물이 주인공처럼 보여서는 안 된다는 거죠. 그 지역이 오랫동안 쌓아온 모습을 건축 때문에 놓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부산과 그 주변에서 해온 작업들도 각각 다른 풍경에서 시작했습니다. 칠암사계는 기장의 바닷가에 있고, 선유도원은 회동수원지를 마주하며, 성림목장은 산에 자리해요. 세 공간의 모습은 전혀 다르지만 먼저 그 자리에 무엇이 있었고 무엇을 남겨야 하는지를 본다는 점은 같습니다. 성림목장은 부산우유에 원유를 공급하던 오래된 축사를 그대로 남겼어요. 1971년에 만들어진 목장의 흔적을 지우지 않고 새로운 공간을 더했습니다. 칠암사계는 강한 바닷바람과 어촌이라는 환경이 중요한 조건이었고요. 이 세개의 작품은 2025년 세계건축상을 수상했습니다.
칠암사계는 공간이 들어선 뒤 주변의 변화를 가까이에서 본 곳이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문을 닫은 가게가 많았지만 사람들이 다시 찾아오기 시작하면서 가게가 문을 열고, 젊은 사람들이 돌아와 부모의 일을 잇는 모습도 볼 수 있죠. 건축 하나가 만든 변화라고 할 수는 없지만, 공간을 계기로 사람들이 마을을 다시 바라보기 시작한 건 분명합니다.
부산에는 그렇게 다시 바라볼 만한 곳이 정말 많아요. 바닷가에만 머물지 않고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집니다. 수영강을 따라 걷거나 금정산 쪽으로 올라가도 좋고요. 특히 금정산에는 오래된 편백나무 사이로 계곡을 따라 걷는 숲길이 있습니다. 여름에도 그늘이 깊고 바로 옆으로 물이 흘러 산책하기 아주 좋아요. 부산 사람들도 의외로 잘 모르는 곳이죠. 바다만 보고 돌아가면 놓치는 풍경이 많습니다. 강으로, 다시 산으로 들어가보면 부산이 얼마나 다채롭고 아름다운 도시인지 새삼 알게 돼요.
요즘 관심은 기후와 에너지, 환경으로도 이어지고 있어요. 이제 형태가 아름답다는 것만으로 좋은 건축을 말하기 어려운 시대니까요. 태양광이나 지열, 공기열처럼 자연에너지를 건축에 활용하는 방법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결국 제가 생각하는 좋은 건축은 장소가 묻히는 것이 아니라 그곳이 가진 아름다움을 더 잘 보이게 하는 일입니다. 부산에는 그렇게 다시 발견할 곳이 많아요. 제가 하는 건축이 부산의 모습을 더 잘 보이게 해주면 좋겠어요.
같은 곳에서, 오래
밴드 세이수미

흔히 저희를 ‘부산을 상징하는 밴드’로 평가합니다. “왜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하냐”고 묻는 사람도 많았죠. 답은 간단합니다. 우리가 사는 곳이 여기니까요. 음악을 하기 위해 서울로 가야 한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았어요. 이곳에 다른 도시에는 없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어서 선택했다기보다, 고향에서 마음 편하게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컸어요.
광안리 작업실과의 인연도 오래됐습니다. 2012년부터 이곳에서 음악을 만들었어요. 당시 광안리는 지금과는 꽤 다른 동네였어요. 지금처럼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곳이라기보다 마을 사람들이 주로 찾는 해변가에 가까웠죠. 바다 가까이에서 활동하다 보니 외부에서는 자연스럽게 광안리와 세이수미의 ‘서프 록’ 이미지를 연결했습니다. 그런 시선을 굳이 부정하진 않지만, 서프 록은 세이수미 음악의 여러 요소 가운데 하나예요.
더 큰 뿌리를 꼽는다면 1990년대 미국 인디 록입니다. 그 중심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초기에는 서프 록이라는 이미지가 많이 주목받았지만 어느 장르에서 다른 장르로 방향을 바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디 록 자체가 장르적으로 좁게 제한된 음악은 아니니까요. 그 안에서 그때그때 하고 싶은 것과 표현하고 싶은 것을 음악으로 만들어왔어요. 영어 가사가 많은 것도 영어권 음악을 오래 좋아해온 영향이 커요. 한글로도 써봤지만 오히려 뜻과 뉘앙스를 잘 알기 때문에 더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어느 한쪽을 의식적으로 선택했다기보다 저희 음악에 자연스럽게 붙는 방식으로 써온 셈이죠.
저희 음악을 들으면서 부산이나 광안리를 떠올리는 분이 많아요. 앨범 아트워크 역시 그런 이미지를 만드는 데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앨범 아트워크에는 남천동의 오래된 아파트 단지에 있던 폐수영장이 등장해요. 의식적으로 도시의 변화나 쇠퇴를 보여주려고 고른 장소는 아니었습니다. 작업을 맡은 작가가 저희가 부산에 있다는 점에서 주변을 살피다 발견한 곳이었죠. 그런데 완성된 이미지를 본 사람들은 그 풍경에서 부산의 변화와 시간을 읽어내기도 했어요. 부산을 적극적으로 설명하려 하지 않아도 이 도시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작업 안에 반영된 셈입니다.
부산에서 밴드를 하는 환경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서울과 비교하면 공연할 수 있는 공간부터 차이가 크고, 예전보다 환경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고 말하기도 어려워요. 그래도 새로운 밴드는 계속 등장합니다. 경성대 앞의 오방가르드처럼 꾸준히 공연을 이어가는 공간들이 인디 신을 지탱하고 있거든요. 문화와 산업이 서울에 집중돼 있는 현실은 여전하지만, 음악을 하기 위해 반드시 서울로 가야 한다는 생각은 이전보다 줄어든 것 같아요. 서울을 제외한 지역 가운데 부산은 여전히 밴드들이 비교적 활발하게 활동하는 도시라고 봅니다.
저희는 일찍부터 활동 범위를 넓혔습니다. 2017년 무렵 해외 투어를 시작해 유럽과 미국,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공연했고 코로나19로 이동이 멈췄던 시기를 지난 후에 다시 해외 무대에 오르고 있어요. 스코틀랜드 글래스고는 특히 기억에 남는 도시입니다. 세이수미 음악의 또 다른 뿌리인 쟁글 팝과 연결된 곳이고, 멤버들이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밴드들을 배출한 도시이기 때문이에요. 화려한 볼거리보다 좋아해온 음악이 태어난 곳에 직접 와 있다는 사실이 특별했습니다. 2019년 웨일스에서 열린 그린 맨 페스티벌(Green Man Festival)도 다시 가고 싶은 곳으로 남아 있어요. 자연 속에서 좋아하는 밴드의 공연을 함께 즐겼던 기억이 좋았습니다. 도시마다 관객의 연령대와 분위기는 조금씩 달랐지만 공연이 시작되면 모습은 비슷해요. 결국 모두 음악을 듣고 함께 즐기는 거죠. 서울에서 공연하고 해외 여러 도시를 돌다가도 다시 광안리 작업실에서 다음 음악을 준비해요.
좋아하는 부산의 모습이 특별하진 않아요. 오히려 소박하죠. 어린 시절을 보낸 평범한 골목을 가끔 떠올리기도 하고, 오래 살아온 금정구에서는 금정산과 범어사로 올라가는 길을 좋아해요. 범어사 쪽에서 밥을 먹고 온천장까지 천천히 돌아보는 것도 좋고요. 가끔 부산에 친구가 오면 광안리 바다는 꼭 보여주고 싶어요. “너희는 이런 거 없지?” 하고 조금은 자랑하면서요. 멤버들이 좋아하는 장소는 결국 오래 살았던 동네와 익숙한 길, 바다처럼 일상 가까이에 있는 곳들이에요. 음악도 비슷합니다. 특별한 이유를 찾기보다 우리가 사는 부산에서, 늘 그래 왔듯 광안리 작업실에 모여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거죠.
서로 다른 목소리가 만나는 도시
2026부산비엔날레 전시감독 에블린 사이먼스(Evelyn Simons) & 아말 칼라프(Amal Khalaf)

부산에 처음 온 건 2025년 여름이었어요. 한여름의 뙤약볕 아래 초량과 기장, 동래를 오가며 작가들의 스튜디오를 방문했고 전시를 준비하면서 여러 차례 다시 찾았습니다. 여름부터 가을과 겨울, 봄까지 계절이 바뀌는 부산을 볼 수 있었어요. 올 때마다 조금씩 다른 도시처럼 느껴졌죠. 새로운 곳에서 전시를 연다는 건 그곳의 역사와 문화뿐 아니라 지금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이번 비엔날레도 그렇게 부산을 배우는 데서 시작했어요.
먼저 강하게 다가온 건 항구도시라는 점이었습니다. 어디에 있어도 바다가 가까이 느껴져요. 처음에는 아름다운 풍경으로 보였지만 도시를 알아갈수록 그 바다와 항구에 노동과 이주의 시간이 겹쳐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부마민주항쟁을 비롯한 저항의 역사와 한진중공업 노동운동의 이야기도 만났고요.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서로에게 전해온 흔적이 도시 곳곳에 남아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어요. 한국 작가들의 작업에서 음악과 목소리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몸을 통해 전해지는 소리와 기억, 구전되는 지식은 저희가 원래 관심을 가져온 주제이기도 했거든요.
그래서 2026부산비엔날레의 주제를 ‘불협하는 합창(Dissident Chorus)’으로 정했습니다. 모두가 같은 목소리를 내는 합창보다 서로 다른 소리가 각자의 차이를 유지하면서 함께 울리는 모습을 떠올렸어요. 부산에서 발견한 노동과 저항의 역사도 하나의 목소리로 정리할 수 없었으니까요. 사운드와 음악, 퍼포먼스처럼 몸과 목소리로 경험하는 작업이 이번 전시에 많이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비엔날레는 결국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 같은 시간 동안 보고 듣는 일이잖아요. 완벽한 합의보다 그렇게 함께 존재하는 상태 자체에 관심이 있어요. 8월 29일부터 11월 1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부산현대미술관과 영도의 스페이스 원지, (구)부산남고등학교에서 열립니다. 서로 다른 역사와 성격을 지닌 세 장소를 하나의 전시장처럼 만들기보다, 각각 지닌 시간과 기억을 전시 안에 가져오고 싶었어요. 을숙도와 옛 선박 물류 창고, 바다를 마주한 오래된 학교라는 장소 자체가 이번 전시를 구성하는 중요한 배경이 되었죠.
부산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만난 작가들의 작업도 인상적이었어요. 사진작가 이동근은 탈북민 공연단을 10년 넘게 기록해온 <아리랑 예술단>을 통해 이주와 기억, 서로 다른 장소 사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속감을 들여다봅니다. 이번에는 부산 가덕도와 일본 오키나와, 대만 금문도를 연결한 신작 <세 개의 섬>을 선보여요. 부산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동아시아의 다른 장소로 확장된다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박현성 작가는 오랫동안 학교로 사용되다가 비어 있던 (구)부산남고등학교에서 새로운 작업을 준비했습니다. 바다를 마주한 학교라는 장소 자체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어요. 부산에서 태어난 백현주와 전소정 작가처럼 활동 무대를 다른 도시와 해외로 넓힌 예술가들도 눈여겨봤습니다. 어디에서 작업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건 아니었어요. 이 도시에서 보낸 시간과 경험이 각자의 작품 안에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가 더 흥미로웠죠. 부산을 하나의 이미지로 정의하기보다 여러 작가의 작업을 통해 서로 다른 부산이 보이기를 바랐습니다.
부산은 굉장히 큰 도시인데도 문화 예술계 안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가까이 연결돼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미술을 따라가다 보면 전자음악 신을 만나고, 독립적으로 공간을 운영하거나 자기 문화를 만들어가는 사람들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더라고요. 라디오 레볼루션이나 아웃풋 부산과 협업하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비엔날레라는 제도 안의 행사와 이미 부산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독립적인 문화가 따로 존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서로 유기적으로 섞일 때 새로운 관객과 또 다른 문화가 형성될 수 있으니까요.
일상적이면서도 인상 깊은 순간도 많았어요. 첫 방문 때 광안리에서 수영을 했는데, 큰 도시 한가운데서 일을 마친 뒤 바로 바다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에 굉장히 행복했어요. 영도에서 전시를 준비하면서는 근처에서 밥을 먹고 항구와 배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됐어요. 여러 번 오갈수록 관광지보다 사람들이 실제로 부산에서 살아가는 방식이 더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부산에는 젊은 세대의 인구 감소나 문화 예술의 기반에 대한 고민이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현대미술과 음악, 독립 문화가 각자의 자리에서 계속 만들어지는 것을 봤어요. 2026부산비엔날레가 끝난 뒤에도, 서로 다른 목소리로 시작된 이 합창이 곳곳의 예술 현장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계속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부산에서 시작되는 주파수
DJ 라디오 레볼루션

오랫동안 여러 도시를 돌아다녔는데 결국 부산에 자리를 잡았어요. 부산 출신도 아닌데 말이죠. 충청도의 작은 마을에서 자랐고, 1999년 DJ를 시작한 뒤 상하이와 유럽, 호주, 태국 등 여러 곳에서 10년 넘게 생활하며 공연했어요. 큰 도시에서 오래 살아보니 메가시티의 속도가 저에게는 너무 빠르더라고요. 음악을 오래 하려면 에너지를 쓰는 만큼 다시 채우는 시간도 필요했고요. 한국으로 돌아온 뒤 서울과 부산을 오가다가 결국 부산을 택했어요. 굳이 서울에 살지 않아도 여기서 음악을 하고, 필요할 때 해외로 나가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로컬하게 움직이고 글로벌하게 생각하는 것. 그게 지금 제 방식이에요.
본명은 황두기지만 DJ로 활동할 때는 라디오 레볼루션(Radio Revolution)이라는 이름을 씁니다. 바이닐을 주로 다루고 하우스와 미니멀, 테크노를 중심으로 음악을 틀어요. 짧은 시간에 큰 주목을 받기보다 오래 음악을 하는 쪽이 저에게 더 잘 맞아요. 일흔 살이 되어서도 DJ를 하고 싶거든요.
부산에 살기 시작하면서 이곳에 없는 것들도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어요. 음악을 잘하는 DJ는 많은데 자신의 음악을 기록하고 밖으로 알릴 통로가 많지 않았죠. 라디오나 스트리밍 세션 하나를 찍으려고 교통비를 들여 서울까지 가는 후배들도 있었어요. 돈을 받는 공연도 아닌데 하루를 통째로 써야 했죠. 처음에는 그저 아쉽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생각이 바뀌더라고요. ‘없으면 내가 하나 만들면 되잖아’라고요.
그래서 올봄 부산에 커뮤니티 라디오 스튜디오 ‘라레리룸(Radio Revolution’s Reading Room, RRRR)’을 열었어요. 그동안 공연장을 찾아다니는 사람이었다면 이제 부산에 작은 거점 하나가 생긴 셈이죠. DJ가 찾아오면 세션을 촬영하고 사운드와 영상을 정리해 온라인으로 내보냅니다. 대여료를 받는 상업 스튜디오는 아니에요. 많이 하지는 못하더라도 일주일에 DJ 한 명 정도는 꾸준히 소개하고 싶어요. 부산에서 활동하는 DJ도 오고 해외에서 온 DJ도 있습니다. 부산에서 만들어진 음악이 이곳에만 머물지 않고 다른 도시의 사람들에게 닿을 수 있는 통로를 만들고 싶은 거죠.
2026부산비엔날레의 공식 미디어 파트너로 활동하는 것도 그 연장선에 있어요. 비엔날레에 참여하는 DJ와 아티스트를 스튜디오로 초대해 스트리밍하고, 팟캐스트나 인터뷰 같은 콘텐츠도 만듭니다. 아티스트에 치우치지도 않으려고요. 이 도시엔 자기 방식으로 재미있는 일을 오래 해온 사람이 정말 많거든요. 꼭 유명한 사람일 필요도 없고요. 이곳에서 사람을 만나 충분히 이야기를 듣고 부산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다시 밖으로 보내고 싶어요.
지역에서 DJ로 활동하는 환경이 녹록한 건 아닙니다. 주로 다루는 미니멀, 하우스, 테크노를 전문적으로 들을 수 있는 곳도 서울만큼 많지 않고 잘하는 후배들이 서울로 떠나는 모습도 여러 번 봤어요. 그래도 부산에는 꾸준히 자기 음악을 하는 DJ가 있고, 광안리에는 바이닐과 DJ 문화를 중심에 둔 루츠 레코드 바 같은 공간도 존재합니다. 공연할 곳이 없으면 공간을 빌리고 장비를 가져와 직접 이벤트를 열어요. 음악만 틀고 돌아가는 것보다 훨씬 힘들어요. 그래도 끝나고 후배들이 좋았다고 하면 또 하게 되더라고요.
부산에서 음악을 오래 할 수 있는 생활의 균형을 찾았어요. 주말에는 밤을 새워 공연하고 다른 도시로 이동하지만, 공연이 없는 날에는 조금 여유롭게 지내며 다시 힘을 채웁니다. 지인들을 불러 제가 사는 모습을 보여주면 “그래서 여기 있는 거구나”라고 하더라고요. 저에게 부산은 느린 도시라기보다 에너지를 쓰고 다시 채우는 곳이에요.
개인적으론 달맞이길을 정말 좋아해요. 한동안 송정과 달맞이 쪽에서 살았고, 처음 부산에 계속 머물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 가운데 하나도 그곳이었어요. 큰길 뒤로 들어가면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산책로가 나오고, 오래된 주택을 고쳐 만든 공간이나 로컬 작가들의 작업실도 만날 수 있어요. 몇 년을 살아도 “여기에 이런 길이 있었어?” 싶은 곳이 나타나더라고요. 해외를 많이 다니기 전에는 하와이나 샌프란시스코 같은 곳에서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여러 도시에서 살아보고 돌아오니 오히려 부산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가까이 있어서 몰랐던 거죠.
예전에는 공연이 있는 곳을 따라 계속 밖으로 나가는 사람이었어요. 지금도 공연을 멈출 생각은 없습니다. 달라진 게 있다면 돌아와 할 일이 생겼다는 거예요. 여기에서 후배 DJ들의 음악을 기록하고 사람을 만나고, 부산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를 밖으로 보내고 싶어요.